야구

[야구는 구라다] 5회에만 볼 28개..버티고, 참고, 골라냈다

백종인 입력 2019.11.16. 07:19 수정 2019.11.16.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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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5천명(정확하게는 5121명)이었다. 도쿄돔 관중 치고는 보잘 것 없다. 하지만 긴장감은 수백배였다. 말 한마디, 손짓 하나도 천근만근이다. 숨소리조차 짓눌린다. 피/아 뿐만이 아니다. 이해 당사자들도 복잡하다. 모두의 눈과 귀가 온통 그곳에 쏠렸다.

한번 밀리면 끝이다. 살 떨리는 초반 겨루기다. 4회까지 일진일퇴. 숫자는 '0'이다. 하지만 차츰 기울기가가 생긴다. 아즈텍 전사들의 예공이 만만치않다. 반대편은 막아내느라 급급하다. 결국 5회에 균열이 생겼다.

1사 후. 하비에르 살라자르의 타구가 3루로 발사됐다. 최정이 멋지게 막았다. 그러나 송구가 빗나갔다. 엉뚱하게 관중석으로 들어갔다. 2루 진루권이 주어졌다. 다음은 조나단 요네스다. 카운트 1-0에서 2구째에 반응했다. 가운데 몰린 121㎞ 슬라이더다. '빡'. 강렬한 파열음이 터졌다.

엄청난 출구 속도였다. 박종훈은 그 순간 주저앉았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타구는 관중석으로 사라졌다. 3루쪽 덕아웃이 뒤집어졌다. 한 길 높이에서 하이 파이브가 작렬했다. 미친듯한 환호가 끓어올랐다.

본부석 분위기도 복잡하다. 일본은 코칭스태프가 총출동했다. 이나바 아쓰노리 (감독) 일행의 표정이 미묘했다. 대만 취재진은 갑자기 부산스럽다. 숨길 수 없는 기쁨이 어수선함에 묻어난다. (한국계 미국 투수) 노아 송에게 미안해서 어쩌나. "이젠 한국이 미국을 도와줄 차례죠." 그 말이 귓가를 맴돈다.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최정)

까짓 2점이다. 공격도 많이 남았다. 그런데 가볍지 않다. 큼직한 바윗덩이다. 꿈쩍도 못할 무게다. 4회까지 철저히 막혔다. 안타, 볼넷 1개씩이 전부다. 2루는 구경도 못했다. 허둥거린다. 갈팡질팡이다. 삼진만 5개였다.

그리고 시작된 5회 말이었다. 첫 타자는 김현수다. 타석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선취점을 내준 다음이죠. 꼭 살아나가야한다는 마음으로 타석에 섰어요. 그럼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었죠." 카운트 싸움이 처절했다. 2-2에서 어렵게 2개를 골랐다. 마지막 119㎞짜리는 손을 들어도 할 말 없었다. 아슬아슬했지만 볼넷이 됐다.

멕시코 벤치가 움직였다. 호투하던 브레난 베르나르도를 내렸다. 한국은 쾌재를 불렀다. 눈에 가시가 사라졌다. 뉴 페이스는 펠리페 곤잘레스다. 거듭된 슬라이더로 타자를 유혹했다. 그러나 양의지는 견뎌냈다. 꿈쩍하지 않았다. 스트레이트 볼넷, 또다시 진루권 1개가 생겼다.

이어서 최정이다. 실책 탓에 심란하다. 설상가상. 카운트도 불리하다. 초구 스트라이크, 2구째는 파울이었다. 0-2에서 눈물겨운 버티기가 시작됐다. 연이은 유인구를 참아냈다. 병살을 유도하려는 몸쪽 공은 (커트) 잘라냈다. 실랑이는 3-2까지 이어졌다. 7구째. 먼쪽 직구(147㎞)를 좌익수 앞으로 뽑아냈다.

"긴장이 많이 됐어요. 수비 연습을 많이 했는데, 실전은 오랜만이라서 걱정이 됐죠. 우려했던 실책이 나왔고, 그게 실점으로 연결됐으니 (오죽했겠어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웃으며 농담으로) 다른 팀 투수였으면 더 미안했을텐데, 박종훈이라서 그나마 좀 덜했죠. 타석에서 기회가 왔고, 다행히 좋은 결과가 나왔네요." (최정)

"필사적으로 커트했어요" (민병헌)

무사 만루다. 책임은 8번 타자 몫이 됐다. 민병헌의 차례다. 파울, 스트라이크. 그 역시 카운트를 0-2에서 시작했다. "굉장히 부담스러웠어요. 투 스트라이크에 몰린 뒤 어떻게든 맞혀야했어요. 땅볼이든 플라이든 해결해야했죠. 만약 (못 쳐서) 그냥 1사 만루가 되면 다음 타자가 너무 부담스럽게 되니까, 신경이 많이 쓰였죠."

이를 악문 싸움이었다. 필사적으로 막아야했다. 2개의 결정적인 파울이 나왔다. 역시 풀 카운트까지 끌고갔다. 8구째. 몸쪽 높은 코스였다. 스윙은 완전히 먹혔다. 타구는 삐리리~. 내야 플라이가 마땅했다. 하지만 혼신이 실렸다. 덕분에 몇 미터 더 날았다. 2루수와 중견수 사이에 떨어졌다.

"정말 필사적으로 커트했어요. 내가 가진 모든 집중력을 발휘한 것 같아요. 상대도 몸쪽은 못 던질 거라고 생각하고 바깥쪽만 노렸어요.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쳤는지도 모르겠어요. 벤치를 보니 선수들이 모두 난리가 났더라구요." (민병헌)

얼마만의 1점인가. 드디어 혈이 뚫렸다. 1-2가 됐다. 게다가 아직도 무사 만루다. 멕시코는 또다시 투수 교체다. 박민우의 상대는 좌완 저스틴 켈리다. (상대가 느끼기에) 징글징글한 볼/스트라이크 싸움이 계속됐다. 또다시 풀 카운트다. 7구째는 볼. 밀어내기로 동점이 됐다.

한 번 터지기 시작했다. 이젠 멈출 수 없다. 이정후의 유효타, 김하성의 적시타가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4-2가 됐다. 끊어질뻔한 고비가 있었다. 박병호 타석이었다. 하지만 카운트 0-2에서 유니폼이 살렸다. 스치는 공으로 또다시 만루가 됐다.

한 바퀴가 돌았다. 다시 김현수 차례다. 타석에 들어오는 찰라다. (대기 타석의) 양의지가 한마디 한다. "네가 쳐야 좋은 볼배합 할 수 있다. 꼭 쳐라."

3구째였다. 148㎞가 어중간했다. 가운데와 몸쪽 사이 쯤이다. '국제용' 타자가 용서할 리 없다. 묵직한 타구가 좌중간에 떴다. 좌익수 후안 페레스가 전력으로 쫓았다. 몸까지 날렸지만 소용없었다. 글러브를 스친 공은 도쿄돔 펜스까지 굴렀다.

최강 불펜을 무너트린 건 불리함을 견딘 집중력이다

말 그대로 빅이닝이었다. 멕시코전 5회는 화려한 불꽃이었다. 기나긴 침묵을 깨는 기지개였다.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빅뱅이었다.

아즈텍 전사들은 대단했다. 대회 내내 최강의 투수력이었다. 현란한 불펜진에 모두가 무릎꿇었다. 도미니카, 미국, 네델란드, 대만, 호주. 하나같이 꼬리를 내렸다. 주최국 일본마저도 진땀 흘렸다(3-1 승).

어제(15일)의 역전승은 그래서 놀랍다. 우리 대표팀 공격력은 걱정거리였다. 대만전을 거치며 심각성이 깊어졌다. 중심 타선이 침묵했고, 하위 타선은 무기력했다. 이렇다할 돌파구도 없었다. 점점 돌이키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렸다. 4회까지는 그랬다. 희미한 빛조차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이 살아난 건 어둠의 끝에서였다. 비관적인 0-2의 열세를 딛고서였다. 기대도 없던 하위 타선에서 출발했다. 불리한 볼카운트를 견디면서 시작됐다. 혼신의 생명력, 절실한 집중력이었다.

5회 말에만 그랬다. 카운트 0-2의 절대 불리를 이겨냈다(최정, 민병헌). 그래서 결과를 만들어냈다. 3-2, 풀카운드를 물고 늘어졌다(김현수, 최정, 민병헌, 박민우, 김하성, 양의지). 무려 28개의 볼을 골라냈다. 참고, 견디고, 버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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