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항의는 전략이다

조회수 2019. 10. 23. 08: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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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이다. 조쉬 린드블럼을 내렸다. 겨우 5회까지였다. 투구수 탓이리라. 90개였다. 굳이 무리시킬 이유는 없었다. 6-1이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완벽한 홈 팀의 주도권이었다. 뒤에 이용찬도 대기중이다.

그런데 웬걸. 오산이었다. 도전자는 만만치 않았다. 윤명준-이현승으로는 버티기 힘겨웠다. 6회 3점을 헤프게 줬다. 안타-볼넷, 그리고 제리 샌즈의 적시타가 터졌다. 내야 땅볼과 희생플라이가 보태졌다. 어느 틈에 2점차가 됐다.

불이 붙자 맹렬해졌다. 7회도 그냥 넘기지 않았다. 매서운 반격이 몰아쳤다. 빌미가 있었다. 실책이었다. 김하성의 팝 플라이를 놓쳤다. 포수(박세혁)와 1루수(오재일)가 미루다 떨궜다. 추격자가 허투루 넘길 리 없다. 서릿발 같은 추궁이 시작됐다. 2사 후 회심의 대타가 등장했다. 송성문이었다.

카운트 1-1에서 3구째였다. 권혁의 슬라이더(135㎞)가 밋밋했다. 송성문의 배트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완벽한 컨택이 3루수를 넘겼다. 2루 주자 이정후가 편하게 홈을 밟았다. 3루쪽 관중들이 모두 일어섰다.

5년전 악몽이 떠오른 김하성의 낙구

6-6이 됐다. 동점이지만 원정 팀이 분위기를 탔다. 5점차 열세를 극복한 상승세였다. 불펜에 대한 자신감도 한 몫했다. 그러나 상대는 1위 팀이다. 후반을 견디는 힘이 남달랐다. 8회와 9회를 하나씩 지워나갔다. 함덕주, 이용찬의 안정감이 돋보였다.

9회 초를 버텼다. 2사 1, 2루를 막았다. 그러자 흐름이 바뀐다. 홈 팀에 승산이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사고가 터졌다. 9회 말 첫 타자였다. 박건우의 타구는 쉬운 플라이였다. 그걸 떨어트렸다. 5년 전이 떠올랐다. 강정호의 악몽이다. 하필이면 또 유격수다. 김하성이 주저앉았다. 중견수(이정후)가 등을 토닥여줬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심각해졌다.

실책은 용서가 없다. 이런 큰 게임에서는 더 그렇다. 급기야 커다란 혼돈의 시간이 초래됐다. 딱 1점이다. 피 말리는 밀당이 시작됐다. 결과까지 20분 이상이 필요했다. 온갖 복잡/애매한 상황들이 속출했다. 치열하고, 아슬아슬한 고비의 연속이었다. 번트 아웃/세이프, 3피트 위반, 홈런/파울 등 무려 3차례의 비디오 판독이 요청됐다. 급기야 퇴장 조치까지 내려졌다.

결과는 아시다시피, 오재일의 타구로 모든 게 정리됐다. 4시간 넘는 레이스는 피날레를 맞았다. 홈 팀은 74.3%의 우승 확률을 확보했다.

이 대목에서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 히어로즈의 경기 운영이다. 특정한다면 장정석 감독에게 아쉬운 점이다.

끊어줘야 했던 몇 번의 순간들

9회 말 6-6이다. 수비 쪽은 절체절명이었다. 삐끗하면 천길 낭떠러지다. 돌아보고, 미룰 여지도 없다. 하나하나 돌다리를 두들길 시점이다. 고비는 여럿 있었다. ① 김하성의 실책 ② 정수빈의 번트 안타 ③ 김재환의 파울 홈런 ④ 아까운 볼 판정 ⑤ 볼넷으로 만루 허용.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넘어가야 했다.

물론 잦은 경기 중단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감독이 너무 게임에 간여하는 것도 반대다. 프로 레벨에서는 환영받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필요한 경우도 있다. 반드시 끊어줘야 할 상황이 있는 법이다.

김하성의 낙구 때가 그랬다. 모두에게 트라우마 같은 장면이었다. 감독이 나가서 다독여야 할 시점이었다. 괜찮다고 진정시키고,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살펴야했다. 번트 안타도 마찬가지다. 엄밀하게는 수비 미스다. 위축된 상황이 만든 플레이다. 진정시켜야 할 대목이었다.

가장 결정적인 건 볼 판정 때다. 1사 1, 2루에서 김재환과 승부였다. 2개 정도는 바깥쪽에 아슬아슬했다. 잡아줄줘도 무방한 코스였다. KBS 중계팀에서도 그런 멘트가 있었다. 그래픽 상으로는 존에 걸쳤기 때문이다.

오주원의 표정에도 나타났다. 크게 내색 않는 스타일이지만 아쉬움이 역력했다. 카운트가 1-2냐, 2-1이냐의 갈림길이었다.

‘그게 왜 볼이냐’고 버럭할 필요까지는 없다. 삿대질하며 눈을 부라리던 시대는 지났다. 다만, 한번 짚어주는 게 나았다. 타임을 걸고, 가벼운 이의 제기 정도야 어떻겠는가. 그걸로 판정이 바뀔 리는 없다. 다만, 여러가지 목적이 담겼다. 특히 자기 편을 향해서다. 분위기 전환, 투수의 심리적 안정, 기 살리기 같은 것들이다. 잔뜩 굳어진 수비들의 숨 돌릴 틈은 덤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여유가 없었다. 히어로즈 벤치는 어떤 시도도 하지않았다. 어찌보면 마운드의 투수만 외로운 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퇴장을 감수한 김태형 감독

장정석 감독은 이번 가을에 좋은 결정이 많았다. 플레이오프는 판단력이 빛난 시리즈였다. 강력한 투수 교체가 압권이었다. 상대를 결정적으로 압박했다. 라인업도 마찬가지다. 김규민, 이지영의 발탁은 신의 한 수였다. 기막힌 대타 작전도 연달아 성공했다. 덕분에 스윕이 가능했다.

그러나 부족하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감독의 역할은 더 많은 영역에서 요구된다. 게임의 흐름도 조절해야한다. 선수들의 감정 상태까지 살펴야한다. 때로는 오버 액션도 감수해야한다. 나이스하고, 자율적인 게 늘 최선은 아니다. 개입이 필요하면 뛰어들어야 한다.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끝내기 안타에는 너무 늦었다. 그나마도 착각이었다.

김태형 감독은 대조적이다. 결정적일 때 벤치를 뛰쳐나왔다. 페르난데스의 3피트 라인 아웃 때였다. 비디오 판독으로 내려진 결정이었다. 토달면 안되는 사항이다. 항의하다가 결국 퇴장당하고 말았다. 이건 흐름에 중요했다. 상대의 오름세에 냉각 효과를 발휘했다. 자기 팀의 ‘무안함’은 희석시켰다. 길고, 지루하지 않았다. 겨우 1~2분간의 중단이었다. 그러나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오주원의 연습 투구가 필요할 정도였다.

김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 때 이렇게 밝혔다. “3피트 라인 위반 사항이었는데, 투수가 앞으로 나왔을 때는 적용이 된다고 하더라. 감독으로서는 아쉬우니까 항의했다. 퇴장인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나가야 할 상황이었다.”

항의는 트집잡기, 화풀이가 아니다. 참는 게 미덕도 아니다. 바로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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