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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매덕스에 비추면 비로소 보이는 류현진의 대단함

백종인 입력 2019.08.13.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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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이면 전성기다. 그렉 매덕스의 29살 시즌이다. 사이영상 4연패를 향하던 때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가 특집을 게재했다. 저자는 톰 버두치다. 흥미로운 일화 몇 개가 실렸다.

애틀랜타 시절 동료였던 존 스몰츠의 회상이다. “그날도 그렉과 나란히 앉아서 경기를 보고 있었죠. 그가 불현듯 혼잣말을 하는 거예요. ‘조심해야겠어. 저 친구 파울볼이 덕아웃으로 날아오겠는 걸.’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했어요. 그런데 잠시 후 진짜로 그렇게 된 거예요. 엄청 강한 타구가 우리 쪽으로 왔어요. 정말 큰 일 날 뻔했죠. 그게 한두 번이 아니예요. 아마도 1년에 서너번은 있는 일이죠.”

또 다른 에피소드다. LA 원정 때였다. (애틀랜타의) 호세 에르난데스가 타석에 들어섰다. 마 교수에게 신이 내렸다. 중얼거림이 시작됐다. “아무래도 1루 코치 때문에 구급차를 불러야 할 것 같은데….” 바로 다음 투구였다. 에르난데스의 타구가 총알같이 뻗어나갔다. 동시에 관중석에서 비명이 터졌다. 1루 코치가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진 것이다. 응급 환자를 위한 엠블런스가 다저 스타디움 안으로 출동했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실점 위기 6회에 나온 병살타

스코어 8-0이다. 이미 승패는 떠났다. 남은 관심거리는 하나다. 무실점으로 몇 회까지 버틸까.

점수 차이 탓인가? 긴장이 느슨해졌다. 고비도 따라왔다. 6회 초였다. 안타 2개가 이어졌다. 무사 1·2루의 위기다. 다음 타자에서 가슴이 철렁했다. 4번 크리스찬 워커의 타구가 담장까지 날았다. 우익수 작 피더슨이 간신히 잡았다. 그 사이 1사 1·3루가 됐다. 타석에는 5번 윌머 플로레스가 들어섰다.

초구 사인 교환이 끝났다. 체인지업이었다. 포수 윌 스미스가 살짝 빠져 앉았다. 약간의 오차였나? 공이 가운데로 몰렸다. 그런데 높이가 기가 막혔다. 81마일짜리가 무릎 높이로 가라앉았다.

플로레스는 인내력이 부족했다. 못 참고 스윙을 출발시켰다.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떨어지는 체인지업은 배트 아래쪽에 걸렸다. 3루수(저스틴 터너) 정면으로 가는 땅볼이 됐다. 더블 플레이 연습 때 코치가 쳐주는 펑고나 다름없다.

5-4-3 더블 플레이. 6회 초가 순간 삭제됐다. 공수 교대 때 투수의 활짝 웃는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100년 전 마술사까지 소환하다

어제(한국시간 12일) 장내 인터뷰는 저스틴 터너였다. 홈런 2개로 모처럼 큰 소리 칠이 생겼다. 그러나 <스포츠넷 LA> 중계팀은 김새는 질문을 안겼다. 주로 선발 투수에 대한 물음이다. 인터뷰이가 짜증도 날 법했다. ‘홈런 얘기 좀 더 하자고.’ 그래도 뭐…. 터너가 누군가. 인성도 갑이다. 싫은 표정 하나 없다. 오히려 입에 침이 마른다. 화려한 비유와 미사여구가 동원됐다.

“거의 예술의 경지에 오른 투구였죠. 그 친구는 존을 4등분 해서 어느 쪽으로도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어요. 1년 내내 기복도 없이 말이죠. 정말 대단해요. 스피드를 조절하면서 타자들의 밸런스를 무너트려요. 그리고 위기에 닥치면 또 어떤데요. 마치 후디니 같아요. 어떻게든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내죠.” 100년 전 마술사 해리 후디니(1874~1926년)까지 소환했다. 할리우드 탈출 마술의 원조다.

그러면서 한 마디를 보탰다. “그의 뒤에서 수비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예요. 정말로.” 이게 무슨 말인지 뻔하다. 자신이 주연이던 장면이다. 6회 병살을 염두에 둔 말이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도 비슷했다. 다양한 칭찬들을 진열했다. 미디어의 구미에 맞춘 10첩 반상이었다. 그 중 귀에 쏙 박히는 말이다. “Ryu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어요. 그걸로 타자들을 압박해요. 물론 헛스윙이 필요할 때는 그렇게 하죠. 하지만 굳이 삼진을 잡지 않고도 그런 효과를 내죠. 강한 타구를 맞지 않아요. 그러면서 수비 시프트가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투구하죠. 원하는 피칭을 완성도 높게 이뤄냅니다.”

마 교수의 소름끼치는 예언들

다시 90년대로 간다. 어느 날이었다. 이닝 중간에 쉬는 타이밍이다. 마 교수가 외야수 한 명을 불렀다. (애틀랜타의) 중견수 마키스 그리솜이었다. 그리고는 넌지시 이렇게 얘기했다.

“다음 회에 말이야. 게리 셰필드 타석에 내가 슬라이더 하나를 던질 거야. 바깥쪽으로 살짝 휘어져 나가는 코스로 말이야. 그럼 그 녀석은 억지로 그걸 당겨치려고 할 거야. 그게 네 머리 윗쪽으로 갈 거야. 아마 워닝 트랙(펜스 앞쪽의 맨 땅 부분) 정도까지 날아가겠지.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그리솜은 나름 한 수비 하는 외야수였다. 올스타도 몇 번 뽑혔고, 골든그러브도 받았다. 그런데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신내림 같은 주문이라니….

하지만 마 교수의 예언은 그대로 적중했다. 셰필드의 타구는 정확히 그리솜을 넘어 펜스 앞 까지 날았다. 미리 준비하지 않았으면 꼼짝 없는 2루타였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역시 애틀랜타 시절이다. 2사 2, 3루의 위기였다. 보비 콕스 감독이 타임을 걸고 마운드로 향했다. “이봐, 다음 타자가 좀 부담스러운데. 1루를 채우고 (고의4구) 하는 게 낫겠어.”

그러자 마 교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괜찮아요. 나한테 생각이 있어요.” 구체적인 프리젠테이션을 펼쳤다. “공 3개면 돼요. 초구는 이렇게, 2구는 저렇게 던질 거예요. 그럼 3구째에 저 녀석을 3루수 팝 플라이로 잡을 수 있어요.”

물론 마 교수의 가설은 참으로 증명됐다. 정확히 3구째에 3루 파울라인 1~2피드 밖에서 플라이볼 아웃이 선언됐다.

“헛스윙이 필요하면 그렇게 했겠죠”

어제 수비를 보자. 시프트가 펼쳐졌다. 2루수는 베이스 뒷쪽에 자리잡았다. 3루수-유격수와 함께 학익진을 펼친 자세다.

주목할 점은 깊이다. 내야는 앞으로 당기지 않았다. 6회, 8-0 아닌가. 무리해서 홈 승부할 이유가 없다. ‘1점은 주겠다. 우린 아웃 카운트를 늘리겠다.’ 그런 수비 포메이션이다.

다음은 투수의 선택이다. 사이영급이라면 당연히 KO를 노린다. 타자를 꼼짝 못하게 만들어야한다. 힘으로 윽박질러 삼진을 뽑으리라. 그럼 실점없이 이닝을 끝낼 수 있다.

그런데 류덕스의 선택은 달랐다. 먹음직한 걸로 하나 떨군다. 잔뜩 도사린 타자가 덥썩 물만한 걸로 말이다. 대신 독이 들었다. 자칫하면 탈이 난다. 혼자만 가는 게 아니다. 동반자도 생긴다.

실전이 그랬다. 가운데였다. 타자 눈에는 수박만한 걸로 보였으리라. 하지만 뒷끝이 있다. 가라앉는 체인지업(81마일)이다.

류덕스는 면밀히 살폈을 것이다. 타자 플로레스의 최근 타석들을 말이다. (11일) 마에다의 슬라이더에 삼진 당하는 장면, (10일) 유리아스의 체인지업을 안타로 만드는 반응. 그런 것들을 여러 차례 돌려봤을 것이다. 그리고 결론을 얻었을 것이다. ‘저 스윙의 매커니즘이라면, 어떤 공을 어떤 코스로 던져야 한다. 그래야 3루수나 유격수 쪽 땅볼을 만들 수 있다.’

터너는 흥미롭다고 했다. 이런 과정을 직접 겪었으니 왜 아니겠나. 로버츠 감독은 “저렇게 차분한 투수를 본 적이 없어요. 결정적인 순간에 꼭 필요한 투구를 찾아내죠. 불리한 상황에도 어디선가 그런 걸 찾아낸다는 말이예요.”

사이영상이 어른거린다. 가장 큰 요소는 ERA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고 싶다. 어려운 코스로 날카롭게 던져야한다. 그래서 헛스윙을 유도하고, 삼진으로 끝냈으면 좋겠다. 그런 전투욕이 타오를만한 상황이다. 그런데 선택은 달랐다.

경기 후 어느 기자가 물었다. ‘오늘 D백스 타선이 Ryu한테 헛스윙은 6개 밖에 없었어요.’ 로버츠 감독이 답했다. “만약 헛스윙이 필요했다면 그렇게 했겠지요. 그런 능력이 있는 투수니까요. 그러지 않았다는 건 그럴 필요가 없다는 뜻이죠. 그 상황에서 (팀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았을 거예요.”

위기의 6회, 그러나 투구수는 7개 뿐이었다

매덕스의 철학은 뚜렷했다. 그리고 독특했다. 타자를 못치도록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칠만한 공을 던지는 거다. 뻔히 보이는 투구로 스윙을 끌어내는 거다. 그게 우리 수비 쪽으로 가게 만들면 된다. 물론 약간의 트릭(변화)을 쓴다. 너무 강하지 않은 타구가 나오도록 말이다.

1사 1ㆍ3루를 막는 방법은 많다. 삼진 2개가 가장 멋지다. 하지만 그러려면 최소한 6개는 던져야 한다. 반면 어제처럼 단 1개로 끝낼 수도 있다. 타자가 병살타를 치게 만들면 그만이다.

만약 매덕스라면 이랬을 지 모른다. “이봐 저스틴(터너), 이번에 체인지업이야. 그럼 저 친구는 앞 쪽에서 타이밍을 나올 거야. 떨어지는 공이니 땅볼이 될테고. 자네 쪽으로 갈 거야. 너무 앞에 있을 필요는 없어. 느리지 않을테니. 그냥 잘 잡아서 (2루) 맥스(먼시)에게 연결만 해주면 돼.”

흔히 ‘매덕스 게임’으로 부른다. 100구 이내로 9회를 끝내는 걸 말한다. 그건 삼진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생산성과 정확성, 효율성이 기본이다.

어제 6회를 복기해보자. 안타 2개를 맞았다. 1사 1ㆍ3의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정작 이닝에 필요한 공은 몇 개 없었다. 불과 7개로 충분했다. (4타자가 2-2-2-1개씩) 바로 ‘매덕스 게임’의 전형적이 패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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