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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류현진 디스카운트

백종인 입력 2019.07.1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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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플런킷이라는 기자가 있다. <오렌지 카운티 레지스터>에서 활동 중이다. 이력이 다채롭다. 로데오부터 슈퍼볼(NFL)까지 다루는 영역도 넓다. 마이크 타이슨이 에반더 홀리필드의 귀에 입을 맞춘 경기도 취재했다고 자랑이다.

요즘은 야구 담당이다. 다저스를 전담한다. 얼마 전 그의 트윗 하나가 화제였다.

‘류현진의 올스타전 선발 등판은 한국에서 대형 사건이다. 그 덕에 BTS보다 더 인기가 많아진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가 격렬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미친 것 아냐?’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의 좌충우돌은 멈추지 않는다. 이번에는 클레이튼 커쇼를 향해서다. ‘Ryu가 요즘 왜 저렇게 잘 던지는 거지?’

엄청 아슬아슬한 질문이다. 다른 선수를 평가해달라는 것. 보통은 업계의 금기다. 게다가 커쇼 아닌가. 잠시 인간계에 머물 뿐이다. 막 대할 상대가 아니다. 어쩌면 결례가 될 물음이다. 가뜩이나 요즘 살짝 밀린 기분일텐데 말이다.

웬만한 선수 같으면 대꾸도 안했을 거다. 까칠한 캐릭터라면 레이저를 발사했으리라. 하지만 역시 커쇼다. 사이즈가 다르다. 젠틀하고, 친절하다. 무엇보다 수준 높은 모범 답안을 내놨다. 국내 매체에도 소개됐다.

커쇼의 답은 간단했다. 하지만 깊이가 있었다. 음미할 대목이다.

“Ryu는 진화했어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깨달은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걸 배우고, 다른 방법으로 타자를 아웃시키는 능력을 갖게 됐죠.”

키워드는 ‘pitchability’였다. 단어 자체는 어렵지 않다. pitch와 ability의 합성어다. 번역하면 ‘투구능력’ 쯤 될 거다. 하지만 간단하게 의미를 함축할 순 없다. 밥 맥클래리라는 코치는 이 용어에 무려 10가지가 포괄됐다고 정의했다.

▶어떤 구질을 언제라도 ▶양쪽 스트라이크 존 끝으로 ▶일정한 딜리버리를 유지하면서 ▶볼넷이나 안타를 두려워하지 않고 ▶중요한 순간에는 최고의 공으로 ▶기타 등등.

복잡하다. 말 장난같다. 골치 아프고, 헷갈린다. 차라리 이게 낫다. 그럼 금방 알아들을 얘기다.

‘스피드(velocity) 빼고 모두 다’.

‘pitchability’의 전형으로 꼽히는 투수가 있다. 클리프 리(143승 91패)다. 평균 구속은 90~91마일이었다. 그걸로 파워피처 흉내를 냈다. 매덕스의 왼손 버전과 가장 근접한 유형이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투구능력 (pitchability)

이를테면 그런 거다. 1회 초구부터 느린 커브를 던진다. 자기가 일류라고 힘주는 스타일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공이다. 불리한 카운트에도 타협이 없다. 어려운 변화구로 압박한다. 유리한 카운트? 마찬가지다. 지극히 호전적이다. 겨우 90마일로 가슴 높이를 공격한다. 덕아웃에 돌아오는 타자는 화가 치민다. ‘저 따위 공에 당하다니.’

수비 실수에도 태연하다. 주자가 등 뒤에 있어도 똑같다. 뚱~한 표정 그대로다. 심지어 땀도 별로 나지 않는다.

저게 무슨 야구 선수 체격이냐고? 천만에. 존 스몰츠는 펄쩍 뛴다. FOX 스포츠의 해설자는 이렇게 단언한다. “보이는 것과 전혀 다르다. 훨씬 좋은 운동 능력을 지녔다. 같은 투구폼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주자 견제나 필딩 능력도 그렇다. 수비적인 결함도 거의 찾을 수 없다.”

그를 인증하는 데 또 한 명의 사이영 수상자가 필요하다. 같은 좌완인 데이비드 프라이스다. 어쩌면 그는 요즘 류덕스의 활약에 회의적이었는 지 모른다, ‘에이, 그 정도는 아니던데.’ 작년 월드시리즈 때 한번 붙어봤다. 그 때 기억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때문에 더 유심히 관찰했는 지 모른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렸다. 리턴 매치(15일 경기) 전에 한 얘기다.

“Ryu의 활약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올해 그가 던진 공을 수백개는 봤을 것이다. 경이로운 점은 한번도 스트라이크 존 가운데로 던지는 걸 본 적이 없다. 늘 구석을 노리고, 조금씩 벗어나는 투구를 한다. 같은 투수로써 존경스러울 정도다.”

보스턴 전을 중계한 ESPN의 해설자들도 찬양 일색이다. “어린 친구들이 교본으로 삼아야 할 피칭이다.” (알렉스 로드리게스)  “포수 미트를 보시라. 러셀 마틴은 별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요구하는 곳에 정확하게 꽂는다.” (제시카 멘도사)

패러다임 (Paradigm)

토머스 쿤(Thomas Samuel Kuhn 1922~1996)이라는 학자가 있다. 하버드에서 강의를 맡았다. <과학사> 과목이었다. 수업을 준비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을 만났다.

몇 페이지를 읽고는 바로 알아챘다. 과학적 오류가 가득한 책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역학에 무지하고, 물리학도 신통치 않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쿤 교수는 고민했다. 도대체 아리스토텔레스가 왜 후세의 칭송을 받는 과학자가 됐을까. 혹시나 했다. 그래서 한가지 가설을 세웠다. ‘혹시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내가 아닐까?’

이후로 끈덕지게 <자연학>을 물고 늘어졌다. 그리고 어느 날 이런 체험을 하게 됐다.

책상 위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을 펼쳐놨다. 4색 연필을 손에 쥔 채였다.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던 중이었다. 갑자기 머릿속의 조각들이 탁탁 들어맞기 시작했다. 입이 벌어졌다. 그 순간이다. 갑자기 아리스토텔레스가 대단한 물리학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상상조차 못했던 방식이었다. 그제서야 난 그의 말이 무엇이었는지, 그의 권위가 어떤 건지 이해했다.’

쿤 교수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 중 한 부분이다. 따분한 제목이지만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

이 책에는 당시로는 처음 보는 말이 등장한다.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단어다. <다음 한국어>에는 이렇게 정의됐다. ‘한 시대의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인식의 체계.’

디스카운트 (discount)

동양인이다. 낯선 리그 출신이다. 몸매도 남다르다. 아무래도 운동선수 체격은 아니다. 유난히 병가도 잦다. 열외는 또 왜 그리 많은지. 불펜 투구, 전력 분석도 대충대충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여러 지표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어느 틈에 사이영상 페이스다. 도대체 납득하기 힘든 방식이다. 때문에 평가는 박하다. 야박한 디스카운트가 느껴진다. 여전히 37세 시절의 리치 힐과 비슷한 수준으로 다뤄진다(3년 4800만 달러).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이 생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통치 않은 물리학자였다. 적어도 쿤 교수의 첫 인상은 그랬다. 하지만 오류라는 걸 깨달았다. 결국 이런 말을 남겼다. “어떤 답을 얻느냐는,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커쇼의 메시지도 비슷하다. 시대적 편향/편견에 대한 경종이다.

“100마일 짜리를 스카우트 하는 건 쉽다. 반면 투구능력(pitchability)의 소유자를 찾는 건 훨씬 어렵다. 그런 투수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Ryu와 잭(그레인키) 정도가 떠오를 뿐이다.”

어쩌면 이건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질문일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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