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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양현종의 어깨? 목청이 더 걱정이다

백종인 입력 2019.11.09.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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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선 3연승은 역대급 덕아웃 분위기 덕이다

출발은 산뜻했다. 이른 선취점 덕이다. 2회 2사 후의 적시타였다. 카운트 3-2에서 완벽한 슬라이더가 왔다. 김하성의 배트가 끌려나왔다. 헛스윙 삼진, 아니면 힘없는 그라운드볼이 기껏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엄청난 집중력이 발휘됐다. 스윙은 끝까지 따라붙었다. 타구는 좌익수 앞에 떨어졌다. 2명의 주자가 홈을 밟았다. 고척돔이 한껏 뜨거워졌다.

이때까지는 좋았다. 편안한 승리가 예상됐다. 하지만 간단치 않았다. 쿠바의 회복력이 살아났다. 마운드는 안정을 찾았다. 3~4회를 삼자범퇴로 끝냈다. 타선도 각성 모드다. 예리하고, 강한 스윙이 발사됐다. 차곡차곡. 주자들이 쌓여갔다. 박종훈의 위기가 계속됐다. 자칫 한 방이면 모른다. 분위기가 묘해졌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고비는 5회였다. 사실상의 승부처였다. 디펜딩 챔프의 힘이 폭발했다. 한 번 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빅이닝이 완성됐다. 거듭된 적시타가 터졌다. 적절한 희생플라이도 나왔다. 무려 4점을 보탰다. 6-0. 백기를 받아내기 충분했다.

이 부분이다. 꼭 짚어야 할 곳이 있다. 5점째 장면이다. 1사 1, 3루. 양의지가 공을 띄웠다. 우중간 플라이가 됐다. 박병호가 홈을 밟았다. 여기까지는 당연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1루 주자(김재환)가 2루까지 간 대목이다.

김재환, 초일류 감각의 베이스러닝

타구는 깊지 않았다. 거리상으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위치가 애매했다. 중견수가 이동하면서 잡아야했다. 때문에 송구 동작이 쉽지 않다. 따라서 3루 주자의 득점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1루 주자의 도발은 뜻밖이다.

실전도를 보시라. 당시의 수비 포메이션이다. 투수를 포수 뒤로 간다. 홈 송구가 빠질 것을 대비한 백업이다. 커트맨(마운드 위치)은 1루수가 들어간다. 중견수 공을 중간에 자르는 역할이다. 이럴 경우 1루는 텅 빈 상태다. 주자의 활동폭이 훨씬 늘어나는 이유다.

공이 뜨자 김재환은 귀루했다. 그리고 3루 주자와 함께 태그업했다. 수비에 혼란을 주기 위한 움직임이다. 애초에 2루까지 갈 뜻은 없다. 중간 쯤에 돌아와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 때는 달랐다. 내친김에 달렸다. 그리고 여유있게 살았다. 무슨 차이였을까.

아시다시피 (김재환이) 빠른 주자는 아니다. 그런데도 쉽게 한 베이스를 얻었다. 이건 순전히 센스다. 초일류의 감각이다.

주목할 것은 외야수의 송구 높이다. 만약 중견수가 낮고 빠르게 쐈다면 2루행은 어려웠다. 어느 부분에서 커트될 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중간에 2루수나 1루수가 송구를 자른다치자. 그럼 1루 주자를 아웃시키는 플레이로 전환시킬 수도 있다. 즉, 주자가 함부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실전에는 달랐다. 외야 송구는 탄도가 높았다. 빠르고, 예리한 맛도 없었다. 커트맨을 거쳐도 충분한 타이밍이었다. 사실 큰 차이는 없다. 굳이 따지면 미세한 정도다. 김재환의 달리기는 그걸 파고든 기습이다.

쿠바 중견수의 송구는 아주 작은 미스다. 보통은 별 일 없이 넘어간다. 하지만 수준이 높아질수록 용납이 안된다. 때로는 그런 사소함이 레벨을, 또는 승패를 결정한다. 결국 여기서 추가점도 나왔다(김현수의 적시타 때 김재환 홈인). 이건 1점 이상의 효과다. 우리에겐 신바람 나는 6점째다. 상대에겐 매우 아픈 치명타다.

박병호의 팀을 위한 스윙

쿠바전 앞두고 걱정은 있었다. 부진한 4번 타자 탓이다. 안타는커녕 선풍기만 돌려댔다. 캐나다전에서는 앞 타자를 (고의4구로) 피하는 수모도 겪었다. 달 감독도 시달림이 많았다. 빼기도 그렇고, 놔두기도 그렇다. 기자들, 관계자들. 만나는 사람마다 비슷한 얘기들이다. "오늘은 좀 치겠죠?"

본인은 오죽하겠나. 밸런스가 흔들렸다. 타이밍이 전혀 안 나왔다. 웬만큼 맞는 타구도 없었다. 매일 매일 특타를 자청했다. "부담감이 컸다. 그래도 꼭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타석에 들어갈 때마다 감독님이 격려해주셨다. 매 순간 감사할 뿐이었다." (박병호)

결국 쿠바전에서 터졌다. 5회 적시타를 포함해 2안타를 쳤다. 데일리 MVP로도 선정됐다. "경기 전부터 (양)의지와 우리만 안타 못쳤다고 많이 얘기했다. 내가 먼저 치니까 의지가 부러워하며 기뻐해줬다. 그 다음에 의지가 쳐서 나도 같이 축하해줬다. 게임도 이기고, 우리도 기분좋게 일본에 갈 수 있게 됐다."

따지고 보면 의미가 깊은 스윙이다. 특히나 5회 적시타가 그랬다. 초구, 131㎞짜리 슬라이더였다. 바깥쪽으로 잘 제구된 공이었다. 그걸 간결한 움직임으로 반사시켰다. 힘을 빼고, 정확성을 택했다. 물론 자기 스타일이 아니다. 철저히 팀을 생각한 공략법이었다. 타구는 중견수 쪽으로 깨끗이 빠져나갔다.

2-0이 3-0으로 변했다. 1루에 나간 뒤에 바빠졌다. 셀카, K, 안녕…. 다양한 세리머니를 시전해야했다.

역대급 덕아웃 분위기가 만들어낸 3연승

김재환의 베이스 러닝, 그리고 박병호의 부진 탈출. 그것 뿐만이 아니다. 예선 라운드 내내 수비도 뛰어났다. 김하성, 허경민, 김상수 등이 고비 때마다 실점을 막았다. 안정감 있는 디펜스로 내야에 그물을 쳤다. 양의지는 철벽 리드로 투수들의 신뢰를 얻었다.

이런 플레이는 그냥 나올 리 없다. 많은 준비에서 비롯됐다. 꼼꼼하게 연구하고, 공부한 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게 있다. 역대급 덕아웃 분위기다. 시끌벅적. 화기애애, 기세등등. 안타 하나, 호수비 하나에도 환호성이 터진다. 격려의 박수와 축하의 하이파이브가 작렬한다. 온갖 종류의 세리머니와 리액션이 홍수를 이룬다. 생기와 활기, 온 세상 밝은 기운이 차고 넘친다.

"10개 구단 선수들이 모여서 경기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팀 분위기가 너무 좋다. 모두 정말 재미있게, 밝게 하면서도 경기할 때 집중력을 보인다. 덕아웃 분위기가 정말로 최고다. 일본에서 더 중요한 경기를 할 때 지금처럼 서로 격려하고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박병호)



덕아웃 분위기의 주역은 고참들이다. 주장 김현수의 덕이 크다. 자칫 무거울 공기를 한껏 띄워놨다. 웃고, 즐기는 콘서트장을 만들어놨다. 주눅들고, 주춤거리는 건 없다. 주전을 내주고, 벤치가 된 고참들이 있다. 황재균, 박건우, 김상수, 최정…. 그들이 오히려 목청을 높인다. 누구보다 큰 리액션으로 화답한다.

이미 세대 차이는 없다. 선수, 감독, 코치, 스태프. 서로의 경계도 사라졌다. 모두 같이 흥겹다. 환하고, 생명력이 넘친다.

물론 와중에 그도 있다. 그 팀의 1선발, 즉 에이스다. 그는 등판 다음 날도 쉬지 않는다.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다. 이틀 내내 덕아웃 맨 앞, 1열에 자리잡았다. 그것도 한복판이다. 그걸로도 만족이 안된다. 아예 벤치 위를 타고 오른다. 바로 옆에 막내가 있다. 하지만 강백호도 감당이 안된다. 그 보다 훨씬 큰 액션으로 환호하고, 응원한다. 저러다가 목청이 먼저 상할까 걱정이다.

기분좋은 3연승은 모두 덕아웃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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