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악마 에이전트의 우수 고객 Ryu

조회수 2019. 8. 16.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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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2년생이면 성인에 가깝다. 그 무렵이면 대략 구별된다. 엘리트 선수인지 아닌지.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인근이었다. 세인트찰스라는 작은 (인구 6만) 도시가 있다. 그곳 야구부에서도 쫓겨났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물론 실력이 가장 컸다.

어찌어찌 공을 다시 잡았다. 2년제 대학(제퍼슨 컬리지)에 진학하면서다. 1학년을 끝낸 시점이다.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 지원했다. 다행히 응답을 받았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였다. 사실은 말 뿐인 지명이었다. 38라운드, 전체로 따지면 1139번째였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프로행이었다.

출발은 싱글A였다. 폄하하자면 그렇다. 무수한 도전자 중 하나였다. 결말이 뻔해 보였다. 스마트한 외모도 아니었다. 운동 능력도 특별할 게 없다. 무엇보다 공이 별로였다. 싱싱한 나이에 90마일은 택도 없었다. 겨우 80마일 중반대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그럭저럭 버텼다. "그럼 뭐해. 더블A 가면 박살나겠지." 하지만 아니었다. 제법 괜찮았다. 운대도 맞았다. 마침 선발 자리에 구멍이 생겼다. 입단 2년만에 빅리그로 콜업됐다.

"처음에 조금 써먹겠지. 약발은 금새 떨어져. 그럼 다시 내려올 거야. 저런 공으로 무슨 메이저리그야." 모두가 그렇게 여겼다. 선입견이었다. 눈부신 활약은 오래 지속됐다. 14년 연속 200이닝, 두자리 승수를 올렸다. 노히트노런(2007년)과 퍼펙트게임(2009년)까지 달성했다.

은퇴 시즌(2015년)까지 놀라웠다. 198.2이닝을 던졌다. 15승 8패, ERA 3.81의 성적이었다. 토론토와 4년이 끝났다. 현역 연장에 큰 뜻이 없었다. "메이저리그에 조용하게 들어왔다. 나갈 때도 그러고 싶다." 고향에는 애완견 핏불이 기다리고 있었다(토론토는 핏불을 못 키운다).

214승 투수 마크 벌리의 얘기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25세 류현진을 마크 벌리에 비교한 전략

2012년 11월이었다. SBS <런닝맨-초능력 야구편> 녹화 중이었다. 이동하던 시간에 촬영장이 술렁였다. 게스트 한 명 때문이다. 휴대폰을 열어보더니 깜짝 놀란다. 주위 사람들이 화면을 기웃거린다. 뉴스 속보였다. '메이저리그 포스팅 입찰 확정.' 유재석, 김종국, 추신수가 축하 인사를 날렸다.

나중에 팀이 밝혀졌다. LA 다저스였다. 포스팅 금액은 2,573만 7,737달러 33센트였다. 이글스 구단의 1년 예산을 뛰어넘는 액수다.

그 무렵이다. LA 인근에 뉴포트비치라는 부자 동네가 있다. 그 곳 사무실 하나가 갑자기 바빠졌다. 보라스 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다. 직원이 100명 가깝다. 명문대 출신들이 수두룩하다. 커리어들도 다양하다. 스포츠, 의학, 법률 전문가들은 기본이다. NASA 출신의 엔지니어도 있다.

그 중 중요한 파트가 있다. 마케팅 전략을 짜는 곳이다. 고객이자 상품은 야구 선수다. 그들을 어떻게 포장하느냐가 핵심이다. 구매자(구단)의 입맛을 연구하는 게 우선이다.

이번 제품(?)은 낯설다. KBO 출신이다. 그래서 더 접근이 중요했다. 비교 대상을 찾아야 한다.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래서 등장한 게 '마크 벌리'다. 좌완, 우직한 외모(188cm, 104.3kg)…. 그런 공통점들을 부각시켰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특이한 지점이 있었다. 스타일에 대한 분류였다.

당시만해도 우리는 99번을 파워피처로 여겼다. 너무나 당연했다. 탈삼진왕을 5번이나 했다. 그런데 보라스의 시각은 달랐다. 벌리와 같은 카테고리에 넣었다. 피네스(finesse), 이른바 기교파로 인식한 것이다.

90마일 중반대까지 던진다. 나이도 25세다. 그런 투수를 80마일 중반대와 비교하다니. 하지만 보라스 코퍼레이션의 시각은 달랐다. 그들의 PT 자료에는 대신 이런 단어들이 강조됐다. '커맨드' '체인지업' '꾸준함'….

물론 전략적이다. 다양한 고려가 담겼다. 판매처의 특성, 목표 가격대 같은 것들이다. 다저스는 이미 원투펀치가 확보됐다. 클레이튼 커쇼와 잭 그레인키다. 3선발을 파고 들어야 효율적이다. '정교한 좌완' 마크 벌리를 등판시킨 이유다.

류현진과 카이클…퀄리파잉 오퍼의 명암

보라스의 방법은 현란하다. 창의적이고, 기발하다. 이제껏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상상조차 못한 일들을 벌였다. 협상의 승리를 위해서다.

1년 재수도 불사한다. 최고의 유망주를 독립 리그로 보내 버린다(J.D. 드류). 심지어 일본행을 택하기도 한다(카터 스튜어트).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조기졸업시키기도 했다(랜던 파웰).

하염없는 시간 끌기, 조목조목 따지기, 1센트까지 탈탈 털기. 구단은 진저리 친다. 악마로 부르기도 한다. 모든 게 다 고객 만족을 위해서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생긴다. 작전 실패도 적지않다. 지나친 강경함에 기피 대상이 된다. 대형 계약을 앞두고 해고(에이전트 교체)되는 일도 있다. 전략 미스로 손해보는 고객도 있다.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있다. 가장 최근 일이다. 댈러스 카이클이다.

그는 류덕스와 비슷한 스타일이다. 스피드 대신 볼 끝의 움직임을 즐긴다. 전형적인 좌완 피네스 유형이다. 나이도 9개월 차이다. 마침 2018시즌을 마치고 똑같이 FA 자격을 얻었다. 그런데 선택은 반대였다.

퀄리파잉 오퍼(QO)를 거절했다. 박차고 시장으로 나갔다. 하지만 싸늘했다. 구매자들은 부담스러워했다. 양키스에 러브 레터도 보냈다. "수염 한번 밀어볼까요?" 자존심도 굽혔다. "1년 계약도 괜찮은데." 그래도 외면됐다.

올해 개막전도 흘려보냈다. 결국 6월이 돼서야 새 직장을 구했다. 그것도 퀄리파잉 오퍼(1790만 달러) 보다 훨씬 낮은 조건이었다. 1년 1300만 달러였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고객의 가치를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반면 류덕스는 현명했다. QO 받고, 실리를 챙겼다. 게다가 이듬해가 경이로운 시즌이다. 이제껏 한번도 없던 일이다. 퀄리파잉 오퍼의 극적인 성공 사례가 열리는 중이다. 겨울이 벌써부터 따뜻하다.

이미 랠리는 시작됐다. 작년 12월, 윈터 미팅 자리였다. 스콧 보라스는 이런 멘트를 남겼다. "Ryu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 때만해도 블러핑이었다. 그런데 현실이 됐다.

이제는 남은 건 비즈니스다. 협상이 필요한 계절이다. 바야흐로 악마의 솜씨를 보여줄 차례다.

7년 전과는 딴판이다. '마크 벌리', '3선발' 같은 마케팅으로는 어림도 없다. 실적은 이미 리그 톱을 다툰다. 각종 기록의 리더 보드를 점령했다. ERA는 역사를 따져야 할 정도다. FA 랭킹도 선두권이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그럼에도 모든 게 평탄하지는 않다. 그의 고객은 맞서야 할 게 있다. 낯섦이다. 생소함, 익숙치 않음이다. 주변은 온통 의심의 눈초리다. '어쩌다 저런 거겠지. 저 공으로 오래 가겠어? 저러다 말 거야. 장기 계약은 너무 위험해. 사인하자마자 드러누울 지 몰라.' 운빨, 팀빨, 구장빨, FA로이드…. 그런 단어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겨울까지 갈 일도 없다. 요즘이 딱 그렇다. 사이영상 레이스에서 등장하는 저평가, 깎아내림은 실재한다. 굳이 의도성을 따질 필요는 없다. 다만 편향된 시각, 디스카운트의 느낌은 어쩔 수 없다.

그걸 해소하는 게 문제다. 온전한 가치를 알리고, 입증해야한다. 그게 슈퍼 에이전트의 일이다. 어떻게 해묵은 관습/전통에서 비롯된 편견을 깨트릴 것인가. 고객을 위해 어떤 마케팅 포인트를 찾아낼 것인가. 그게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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