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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훈기의 스페셜야구] 양현종의 체인지업과 이영하의 슬라이더

민훈기 입력 2019.11.12. 00:21 수정 2019.11.12.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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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전 초반 큰 위기 양현종이 넘기고, 중반 승부처에서 이영하가 막으며 승리

11일 도쿄돔에서 열린 프리미어12 슈퍼라운드 첫 경기를 앞두고 미국 라인업을 보니 온통 우타자였습니다.

5번 유격수 크로넨워스만 좌타자이고, 7번 중견수 워터스는 스위치 타자로 우타석에 서니 8명이 우타자. 양현종의 체인지업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겠다는 기대를 했습니다. 주로 트리플A 선수로 구성된 미국의 공격적인 타선이, 바깥쪽에 떨어지는 양현종 체인지업에 헛스윙을 하는 모습도 연상됐습니다.

1회초 선두 아델을 체인지업으로 유격수 땅볼을 잡으면서 역시! 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2번 알렉 봄은 약간 몰린 체인지업을 정확히 때려 2루타를 쳤고, 3번 달벡은 빠지는 체인지업을 골라내며 걸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5번 앤드루 본마저 체인지업을 때려 좌측 안타를 쳤습니다. 타구가 잡힐듯 아슬아슬해 2루 주자 봄이 홈까지는 못 들어왔지만 순식간에 만루의 큰 위기.


초반부터 많은 주자를 내보내며 힘든 경기를 펼쳤지만 양현종은 5.2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습니다. 반복되는 위기를 에이스답게 버텼습니다.


두 가지가 예상을 빗겨갔습니다.

우선 미국 타자들이 양현종의 체인지업을 철저히 대비하고 나왔고, 의외의 참을성과 노림수를 보였습니다. 또 하나는 양현종의 체인지업 구사비율이 너무 높은데다, 궤적이 좋았을 때와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패스트볼처럼 보이는 공이 날아오다가 오른손 타자의 바깥쪽으로 휘어 떨어지는 공이 왼손 투수의 위력적인 체인지업. 그런데 이날 초반 양현종의 체인지업은 오히려 안쪽으로 휘며 스트라이크존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속구가 중심을 잡아줘야 위력을 더 발하는데, 체인지업이 너무 많다보니 타자들이 쉽게 참거나 정확히 때렸습니다.


경기 시작하자마자 1사 만루의 절체절명의 위기. 젊고 능력 있는 미국 팀의 초반 분위기가 살아나면 당해내기 쉽지 않습니다. 본선  첫 경기부터 내주면 토너먼트 전체가 꼬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양-양 배터리’의 노련미가 빛을 발합니다. 유일한 좌타자 5번 크로넨워스를 슬라이더로 헛스윙 삼진 잡더니, 6번 루커와는 풀타임 접전 끝에 패스트볼로 다시 헛스윙 삼진을 잡았습니다.

이날 경기의 최고의 승부처는 바로 1회초였습니다. 예선 3경기에서 홈런 10개를 친 강타선에, 각각 홈런을 기록한 크로넨워스와 루커를 삼진으로 잠재우며 타오르던 미국의 기세를 꺾는데 성공했습니다. 투구수가 무려 28개였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양현종과 양의지는 그 위기에서 체인지업을 잠시 버리는 빠른 공배합 전환과 정확한 투구로 틀어막았습니다.


그리고 1회말 1사후 김하성과 이정후가 연속 안타를 쳤습니다.

4번 박병호가 3루쪽 파울 뜬공으로 물러났지만 지명 타자 김재환이 있었습니다. 커브가 좋다는 평가이던 미국 선발 폰스는 위기에 몰리자 초구 좋은 커브를 떨어뜨렸는데 김재환이 이를 참아냈습니다. 그 참아낸 공 하나는 미국 배터리에게 강공을 선택하게 만들었습니다. 140km대 후반의 빠른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파고드는 순간 김재환의 방망이가 더 빠르게 돌아갔습니다. 딱! 소리가 도쿄돔에 울리는 순간 모두가 알았습니다. 대한민국이 3점을 선취했다는 것을.


양현종은 이날 컨디션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체인지업의 제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고, 심판의 스트라이크존에도 약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도 그에겐 경험과 관록과 책임감, 그리고 용기가 있었습니다. 숱하게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미국 강타선에게 실점을 하지 않았습니다. 흔들리고 휘어졌지만 부러지지 않았습니다.

2회초 2사 후에 연속 안타를 맞았지만 첫 타석에서 2루타를 친 2번 봄을 유격수 땅볼로 잡았습니다. 3회초를 유일한 삼자범퇴로 마쳤지만 4회초에는 1사후 7번 워터스의 볼넷에 이어 8번 베테랑 포수 크래츠에게 내야 안타에 이은 실책까지 나오면 1사 2,3루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9번 채텀을 2루수 땅볼로 끌어내 4-6-3의 병살타로 이닝을 마무리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양현종은 5회까지 7안타, 2볼넷으로 9명의 주자를 내보내며 힘든 경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9명 중에 하나는 병살로 지워졌고, 나머지 8명은 모두 루상에서 이닝 종료를 맞았습니다. 5회 2사 2,3루에서 크로넨워스를 바깥쪽 꽉 찬 패스트볼로 서서 삼진을 잡은 대목은 압권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한국 대표팀은 3회에 경기의 주도권을 확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1사 후 김하성이 안타를 치고 나갔고, 이어서 이정후가 우중간 펜스를 때리는 장타를 터뜨렸습니다. 잠시 주춤하던 김하성은 홈으로 질주했고, 홈을 막고 있던 포스 크래츠를 피해 왼손으로 홈플레이트를 훑고 지나갔습니다. 심지어 태그도 되지 않았고, 김하성은 다시 빠르게 홈을 밟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시마타 데쓰야 구심은 김하성이 슬라이딩을 하는 순간, 너무도 빠른 타이밍에 아웃을 선언했습니다. 긴박한 상황일수록 판정은 침착하게 서두르지 말고 내리는 것이 원칙. 그렇지만 비디오 판독까지 갔는데도 오심은 뒤집어지지 않았습니다. 점수가 인정됐으면 4-0에 1사 2루의 기회가 이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번번이 기회를 놓치던 미국은 6회초 선두 타자 루커가 좌월홈런을 치면서 1점을 추격했습니다.

투스트라이크를 먼저 잡고 실투로 홈런을 맞은 아쉬운 순간. 그리고 양현종의 교체 타이밍을 고민했을 벤치. 그러나 양현종은 워터스와 크래츠를 연속 삼진으로 잡으며 아웃 카운트 2개를 추가했습니다. 단판 승부에서 아웃 카운트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딱 27개가 주어지는 아웃 중에 두 개를 더 지운 것은 의미가 큽니다. 그러나 계속된 위기에 힘이 부쳤는지 양현종은 2사 후에 체텀의 안타와 아델의 좌측 2루타를 맞고 2,3루에 몰린 끝에 마운드를 내려갔습니다. 그때까지 5와⅔이닝 동안 12명의 주자를 내보냈지만 아직 실점은 1점이었습니다. 고비마다 뽑은 7탈삼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2점차 리드 주자 2,3루의 위기를 삼진으로 끄고 내려온 이영하를 양현종이 제일 먼저 반기고 있습니다. 두 투수가 미국전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3-1의 아슬아슬한 리드와 주자 2,3루.

이날 두 번째 승부처에서 김경문 감독의 선택은 다소 의외였습니다. 일본전 선발 소문도 있던 이영하가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140km 중반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우투수가 미국 타자들의 힘을 이겨낼까 살짝 우려가 되는 순간 떠오른 건 그의 절묘하게 추락하는 슬라이더였습니다.

그가 상대할 3번 타자 알렉 봄은 작년에 필라델피아가 1라운드 3번에 선택한 최고 유망주. 프로 2년 만에 올 후반기 더블A까지 진출했고, 올 시즌 마이너 125경기에서 3할5리에 21홈런, 2루타 30개, 3루타 4개를 친 강타자입니다. 그러나 봄은 바깥쪽에 휘어 떨어지는 이영하의 슬라이더 3개를 모두 헛스윙 했고, 이닝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1회 만루 이후 이날 미국의 가장 큰 기회였습니다.

3회 오심으로 추가점 기회가 무산된 후 대한민국은 이렇다 할 추가 득점 기회가 없었습니다. 미국도 이날 6명의 투수를 투입하며 총력전을 펼쳤습니다.

그러다가 7회초 2사 후 행운이 겹친 쐐기 득점을 올립니다. 1번 박민우가 4번째 투수 밀스와 8구의 실랑이 끝에 좌전 안타를 치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김하성의 ‘언제나 온몸으로 치는 풀스윙’이 행운을 불러왔습니다. 도쿄돔의 흰 천장이 익숙지도 않았을 중견수 워터스였겠지만, 김하성이 밀스의 3구째를 온몸으로 때린 순간 워터스는 뒤로 물러났다가 아차 싶어 다시 빠르게 전진했습니다. 그러나 빗맞은 공은 역회전을 먹고 높이 떠올랐고, 워터스의 글러브를 맞고 떨어지는 2루타가 됐습니다. 2사 후 당연히 전력 질주한 박민우는 여유 있게 홈인.

절실히 필요하던 추가점이 나온 것에 그치지 않고 이정후가 좌측에 비디오 게임 같은 그의 특유의 안타를 떨구면서 대한민국은 5-1로 달아났습니다. 드디어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는 보험 득점이 이루어졌습니다. 김하성-이정후는 각각 3안타씩을 치며 이날 한국팀의 9안타 중에 6안타를 합작했고, 김재환의 3타점 외에 1타점씩을 보탰습니다.

8회초에는 좌익수 김현수의 정확한 송구로 대주자 에드워즈를 홈에서 잡으며 이닝을 끝냈고, 9회초 조상으로 약간 긴장한 듯 흔들리면서도 힘으로 1사 주자 1,2루의 위기를 이겨내며 경기를 마무리했습니다. 미국은 이날 16명의 잔루를 기록했습니다. 계속 기회는 만들었지만 우리 투수진과 수비에 번번이 막히며 고배를 마셨습니다. 대한민국은 2승으로 멕시코, 일본과 공동 선두가 됐습니다.


이날 대만이 멕시코에 0-2로 패하면서 2패가 됐고, 호주 역시 일본과 선전했지만 막판 역전을 내주며 2-3으로 패해 2패가 됐습니다. 세 팀 중에 가장 성적이 좋은 팀에게 도쿄올림픽 아시아 출전권이 주어집니다. 내일 12일 경기에서 대한민국이 대만을 꺾으면 3승이 되면서 출전권이 거의 확정적이 됩니다. 이미 호주와는 예선 1승이 인정돼 다시 싸우지 않습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도 대한민국은 첫 경기 미국을 극적으로 꺾으면서 연승가도를 시작했습니다. 경험이나 경기 운명의 노련미, 그리고 투수력에서 우리가 앞섰지만, 미국은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난 팀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미국을 상대로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어 조짐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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