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9-1, 그리고 박병호의 전력질주

조회수 2019. 10. 18. 07: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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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가 됐다. 홈 팀이 또 기회를 잡았다. 1사 3루였다. 애매한 땅볼이 나왔다. 김규민의 타구는 라인을 탔다. 놔두면 파울일까? 그런데 덜컥, 제이미 로맥이 손을 댔다. 그 틈에 3루 주자(송성문)가 쉽게 홈을 밟았다. SBS 이순철 해설위원의 지적이 나왔다. “그냥 놔뒀어야 했다. 밖으로 흘러나가는 공이었다.” 그걸로 4-0이 됐다. 꽤 멀어진 느낌이다.

그렇다고 호락호락할 리 없다. 저항이 시작됐다. 곧이은 5회 초다. 기습이 감행됐다. 노수광의 번트가 헛점을 파고 들었다. 투수와 3루수 사이를 흔들었다. 기발한 안타였다. 상위 타선으로 올라갔다. 징검다리가 이어졌다. 삼진→안타→삼진. 2사 1, 2루가 됐다.

다음은 정의윤 차례다. 특별 캐스팅 된 4번 타자다. 상대 선발(에릭 요키시) 저격용이다. 쿨함이 돋보였다. 초구부터 가차없었다. 몸쪽에 붙는 슬라이더(126㎞)였다. 간결한 스윙이 나왔다. 깨끗한 중전 적시타가 터졌다. 노토바이가 홈까지 내달았다. 4-1.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끝이 아니다. 2사 1, 2루가 이어졌다. 3루쪽 관중석은 점점 뜨거워졌다. 기대감이 부글거린다. 비등점을 향해 맹렬하게 끓어올랐다.

그 때였다. 타임이 걸렸다. 발신지는 홈 팀이었다. 덕아웃에서 메신저가 등장한다. 말끔하게 면도한 브랜든 나이트였다. 재고, 말고가 없다. 결정은 이미 내려졌다. 실행만 남았다. 구심에게 공을 받아들었다. 단호한 발걸음이 마운드로 향했다.

아웃 1개 남기고 교체, 그래도 멀쩡한 정수기

뜻밖이다. 설마, 저 타이밍에? 교체는 오버다. 흐름 한번 끊어주겠지. 그 정도가 보통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이트 코치는 미련이 없었다. 툭툭. 어깨를 치고는 ‘여기까지’라는 신호를 줬다.

상황을 보자. 4-1이었다. 아직도 여유는 있다. 게다가 2승 아닌가. 아웃 카운트도 겨우 1개 남았다. 5회는 채워줘야 선발도 면이 설 것이다. 투구수도 괜찮았다. 겨우 74개였다. 상대는 김강민이다. 바로 전 타석(3회)에 삼진으로 잡아냈다. 하지만 아량은 없다. 어쩌면 상대는 가혹함을 느꼈을 지 모른다.

경기 후 인터뷰 때다. 장정석 감독이 이렇게 설명했다. “데이터에 따른 것이다. (김강민이) 볼이 빠른 우투수에 약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안우진을 준비시켰다.” 결과는 아시다시피다. 중견수 플라이로 이닝이 끝났다. 사실상 이날 경기의 유일한, 그리고 최후의 승부처였다.

‘투수 교체는 빠를수록 좋다.’ 귀에 피가 나도록 듣는 얘기다. 숨이 가쁠 정도로 강조한다. 그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딱 5회까지만, 아웃 하나만, 한 타자만…. 그렇게 머뭇거리다 승부는 힘겨워진다.

아무리 포스트시즌이라도 그렇다. 승리 요건이 코 앞이다. 거기서 공을 뺏는 건 쉬운 일 아니다. 게다가 외국인 투수, 원투 펀치 아닌가. 어려운 결정이다. 그리고 그걸 실행하는 능력이 3연승을 만들었다.

물론 그게 전부가 아니다. 관찰을 이어가자. 그 다음도 중요하다. 당사자의 반응이다. 거기서 팀워크, 조직의 리더십 같은 게 드러난다. 혹시 불만투성이가 됐나? 언짢다고 화풀이 대상을 찾나? 일단 정수기가 멀쩡하다. 다행이다.

아니, 삐침이라니. 오히려 정반대다. 땀 닦는 것도, 샤워도 잊었다. 덕아웃 한복판에 자리잡는다. 가장 뜨거운 치어리더가 됐다. 5회 송성문이 적시타를 터트렸다. 7-1이 되자 가장 열정적인 화이팅을 외쳤다.

                                                             SBS TV 중계화면 캡처

3차전의 승부처는 5회였다. 4-1에서 요키시의 강판은 결정타였다. 더 이상의 여지를 없애겠다. 그런 독하디 독한 강수였다. 두산까지 위협하는 한 수였다. 4일을 쉬고 잠실로 가겠다는 의미다.

가비지 타임 때 전력질주의 의미

5회 이후는 맥이 빠졌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었다. 농구에서 말하는 가비지 타임(garbage time) 같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딱 한 장면이 달랐다. <…구라다>의 눈길을 끈 대목이다.

6회 말이었다. 스코어는 9-1이었다. 홈 팀의 공격 차례다. 마운드는 벌써 추격조가 떴다. 박민호로 교체됐다. 상대는 사실상 수건을 던진 상태다. 공격 템포도 빨라졌다. 서둘러 마무리 수순에 돌입한 느낌이다. 김하성이 중견수 플라이, 이정후는 1루수 땅볼로 간단히 처리됐다. 다음은 4번 박병호 차례다.

초구는 스트라이크였다. 그 다음부터를 눈여겨 봐야한다. 연속 4개의 파울을 냈다. 6구째는 볼을 골랐다. ‘아니 뭘 저렇게 열심히 해. 이미 게임 끝났는데. 얼른 퇴근하고 잠실 갈 준비해야지.’ 7구째는 변화구였다. 타이밍을 뺏겼다. 평범한 땅볼이 3루로 굴렀다. 깊은 코스도 아니고, 느린 타구도 아니다. 누가 봐도 아웃이 뻔했다.

그 때였다. 타자가 강한 스타트를 끊었다. 그리고 전력 질주를 시작했다. 마치 내야안타성 타구를 친 뒤 같았다. 느슨하던 최정도 살짝 놀란 눈치다. 조금만 늦췄으면 승부는 몰랐다. 1루에서 뱅뱅 타이밍이다. 한걸음 차이로 아웃됐다. 9-1, 2사 후에 주자도 없는 상황이었다.

                                                             SBS TV 중계화면

그는 1차전 때 공에 맞았다. 가뜩이나 아픈 왼손목이다. 검진 결과는 다행이었다. 단순 타박상이다. 하지만 퉁퉁 부었다. 스윙할 때마다 통증이 심했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게 수비까지 소화했다.

장정석 감독은 애처롭다. “(중심 타선을 걱정하며) 샌즈도 무릎이 좋지 않다. 주사 치료도 하고, 휴식도 줬다. 그래도 아직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박병호도 비슷하다. 단순히 괜찮은 건 아니다. 아직도 손목이 많이 부은 상태다. 하지만 둘 다 책임감과 정신력으로 뛰고 있다.”

그의 달리기는 메시지다. 팀과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담겼다. 마지막까지 늦추지 말라는 질책이다. 그리고 패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큰 예우다. 6회말 2사후, 그리고 9-1. 거기서의 전력 질주는 그런 의미가 담겼다.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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