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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훈기의 스페셜야구]류현진의 의지와 현실과 아쉬운 교체

민훈기 입력 2019.09.05. 15:17 수정 2019.09.0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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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경기, 그러나 5회 1사에서 구원 투수로 교체되며 날아간 승리 기회

류현진(32․ LA 다저스)의 2019시즌이 가장 놀라웠던 것은 야구를 자신의 의지대로 마음껏 다룬다는 것이었습니다.

야구라는 게 절대 그럴 수 없는 스포츠인데 류현진은 완전한 재기 확률 7%라는 심각한 어깨 수술을 딛고 돌아와, MLB 평균보다 약 5km(150.4-145.7)가 느린 포심 패스트볼을 구사하며, 절묘한 제구력과 다양한 구종을 앞세워 내로라하는 빅리그 팀들을 평정했습니다. 미국 야구계가 만화 같은 류현진의 활약에 즐거워했습니다. 1점대의 평균자책점에 볼넷의 존재를 지워버린 올스타전 선발 투수.


그러나 8월 들어 류현진은 현실 세계로 돌아왔습니다.

아니, 7월까지의 초특급 활약에 비하면 너무도 비교될 정도로 고전하고 있습니다. 지난 3경기에서 3연패를 당했고, 평균자책점은 11.05였습니다. 그 전까지 21경기에서 10개의 홈런만 내주며 MLB 역사상 최고의 홈런 시즌을 비웃었는데, 지난 3경기에서만 5홈런을 맞았습니다. 자신의 빅리그 데뷔 후 첫 만루 홈런까지 내주며.


5일 로키스전 4.1이닝 3실점 후 교체되며 4경기 연속 아쉬움을 남긴 등판이었습니다.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다저스의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필요해보이던 휴식보다는 류현진의 정상 등판을 선택했습니다.

포스트 시즌까지 많은 변수를 감안해야 하는 감독이기에 아직은 휴식보다 자신감 회복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류현진에 대한 믿음이 자리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아주 확고하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5일(이하 한국시간)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홈경기 1회초 류현진 피칭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습니다. 그의 절실함과 의지와 피로함까지.


상위 타선이 유독 강력한 로키스를 맞아 류현진은 1회에 15개의 공을 던졌습니다. 눈길을 끈 것이 두 가지, 아니 세 가지였습니다.

우선 강하게 몰아 부치려는 의도. 1회에 던진 15개의 구종은 모두 패스트볼이었습니다. 투심 패스트볼이 9개, 포심 패스트볼이 3개, 컷 패스트볼이 3개로 모두 속구만 던졌습니다.

두 번째는 타자의 몸쪽 공략이 빈번했습니다.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기존의 바깥쪽 절묘한 제구력에만 의존하는 투수라는 이미지를 깨려는 의도였습니다.  2번 블랙몬과 풀카운트 싸움 끝에 볼넷을 내준 것이 세 번째 신경이 쓰인 부분. 이  풀카운트 끝의 볼넷은 그 과정에서 뭔가 꺼림칙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이어 3번 아레나도의 강한 타구는 3루수 터너의 호수비에 잡히며 더 이상 위기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회를 무실점으로 넘겼습니다.


류현진의 경기를 지켜보는 것이 요즘은 그리 마음 편치만은 않다는 그런 느낌은 1회부터 있었습니다.

최근 부진의 이미지가 강하기도 했지만, 류현진의 피칭 자체가 좋았을 때와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마운드에서 편안하고 싱글거리며 여유 있게 던지던 모습과는 많이 다른, 굳은 표정에 초가을이 찾아들었음에도 시작부터 땀을 흘리고 힘겨워하는 모습.

무엇보다 타자와의 승부가 일구, 일구 힘겨웠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힘을 많이 쏟고, 다소 무리하게 과감한 승부를 이어간다는 자체가 류현진이 최상의 상태는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좌로부터 1회 아레나도와 블랙몬과의 승부, 그리고 4회 아레나도의 승부를 보면 류현진이 이날 얼마나 몸쪽 승부를 펼치려고 했는지 그대로 드러납니다. 무리수라고 볼 수는 없지만, 좋았을 때보다는 분명히 위기 의식이 강한 가운데 피칭을 하고 있습니다. @MLB.com


2회는 통산 상대 성적 4타수 무안타인 5번 좌타자 맥맨과의 대결로 시작됐는데 결과는 삼진으로 잡았지만 풀카운트로 9구까지 가는 긴 승부였습니다.

류현진의 경기에서 풀카운트를 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승부를 아주 빠르게 가져가는 투수입니다. 그만큼 자신 있는 피칭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날 경기 전까지 올 시즌 626타자를 상대하며 풀카운트는 60번, 9.6%가 약간 안 됐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1회에 블랙몬과도 풀카운트, 2회에 맥맨에 이어 7번 타자 햄슨과도 풀카운트로 가다가 볼넷을 내줬습니다. 2회까지 2볼넷. 그리고 22명의 타자를 맞아 6명의 타자와 풀카운트 승부를 벌였고(27.3%) 그 중에 4명을 걸어서 내보냈습니다. 4볼넷 경기는 시즌 처음입니다.



그러나 1회말 1번 타자 피더슨의 선제 홈런도 있었고, 3회말에는 로키스 수비진의 호흡이 흔들리는 가운데 4점을 추가하는 등 다저스는 순항했습니다.

5-0이던 4회초에 선두 아레나도와 또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내준 후 맥맨에게 적시 2루타, 7번 햄슨에게 풀카운트 볼넷 후 1할대 타자인 8번 부테라에게 적시타를 맞고 2점째를 내준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좌익수 테일러가 9번 대타 푸엔테스의 까다로운 좌중간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도와주며 다저스는 분위기를 이어갔습니다. 이 공이 빠졌으면 경기의 흐름이 바뀔 수도 있었습니다.


곧이어 4회말 2사 후에 류현진이 로키스 두 번째 투수 파슨스의 153km 싱커를 정타로 때려 중전 안타로 진루한 후 1번 피더슨의 이날 두 번째 홈런이 터지며 다저스는 7-2로 앞섰습니다.

전날까지 30홈런으로 종전 한 시즌 25홈런의 개인 기록을 훌쩍 뛰어넘은 피더슨은 이날 멀티 홈런으로 32호째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2번째 홈런은 다저스의 시즌 250호 팀 홈런으로, 지난 2000년 당시 NL 소속이던 휴스턴이 세운 NL 역대 한시즌 최다 249홈런을 넘어서는 기념비적인 한 방이었습니다.



류현진은 다소 불안했지만 경기 내용은 다저스 쪽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5회초 선두 1번 스토리를 3구삼진으로 처리한 류현진은 블랙몬에게 2-1의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148.4km의 낮은 투심 패스트볼로 좌전 안타를 맞았습니다. 이어서 천적 아레나도와 9구까지 가는 치열한 승부 끝에 중전 안타를 허용해 1사 주자 1,3루. 그리고 4번 데스몬드가 초구 146.7km의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투심 패스트볼을 툭 건드려 중전 적시타를 쳤습니다. 7-3.



류현진은 좋은 타자들과 치열한 승부를 펼쳤고, 타자들이 잘 쳤습니다.

그런데 그 대목에서 로버츠 감독이 더그아웃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모습이 잡혔습니다. MLB는 감독이 마운드로 간다는 것은 거의 교체의 의미.

승리 요건에 아웃 카운트 2개를 남겼고 점수차는 4점. 물론, 류현진의 투구수가 93개로 이닝에 비해 많았습니다. 그러나 감독이 에이스급 투수를 진정으로 믿는다면 거기서는 교체보다는 투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상황을 나누는 것이 정도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로버츠 감독은 이미 교체 결정을 하고 마운드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구원 투수 콜라렉이 후속 타자들을 잘 막아 류현진의 추가 실점은 없었지만 과연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시즌 21경기를 남긴 가운데 이미 매직 넘버를 5로 줄인 다저스. 최근 흔들리는 에이스급 투수의 모처럼 승리와 자신감 회복 기회와 4점차 리드. 물론, 류현진의 입장에서 본 시각도 내재돼 있지만, 류현진이 아니라 커쇼였어도 그 시점에는 남은 두 개의 아웃 카운트를 맡기는 것이 순리로 보였습니다. 조 우승이 거의 확정돼가는 팀의 상황이나, 최근 흔들리던 선발 투수의 모처럼 승리 기회 상황이나, 만에 하나 역전패를 하더라도 선발 투수가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납득할 수 있는 과정은 중요합니다. 개인의 1승 더하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투수에게 상징적인 '승리'가 절실한 요즘이고, 이 경기가 아주 좋은 기회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류현진은 승리 투수의 기회를 잃었고, 승리와 함께 주어질 자신감 회복의 기회도 일단 잃었습니다. 또한, 적어도 이날은 감독은 팀의 에이스급 투수의 신뢰 관계도 흔들렸습니다. 감독만 선수를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도 감독을 신뢰하는 관계여야 합니다. 류현진은 이날 지나면 덮고 잊으려고 하겠지만 입맛 쓴 교체 과정이었습니다.


승부는 그대로 7-3으로 끝났고, 다저스의 매직 넘버는 4가 됐습니다.



류현진은 이날 4⅓이닝 동안 6피안타 4볼넷 5탈삼진으로 3실점했습니다.

승패는 무관했고 시즌 평균자책점은 2.45로 살짝 나빠졌습니다. 여전히 ERA 빅리그 전체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일단 류현진은 오는 13일 볼티모어와의 인터리그 원정 경기에 등판할 예정입니다.



이 기사는 minkiza.com, ESPN.com, MLB.com, baseballreference.com, fangraphs baseball 기록 등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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