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예의 MLB현장] 처음 본 로버츠 감독의 포옹, 그 안에 담긴 의미

조회수 2019. 9. 30. 07: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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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시즌을 치렀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었는데, 건강을 유지하니 따라온 결과가 어마어마합니다.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ERA 1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의 2019 정규리그 평균자책점은 2.32. 올 시즌 류현진은 매달 집계한 평균자책점 순위에서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4경기 연달아 무너지는 슬럼프를 겪었음에도 말이죠.

류현진은 “시즌 내내 ‘건강’이 우선이었지만, 마지막 등판에서 평균자책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평균자책점 1위로 정규 시즌을 마무리 하게 돼 기쁘다는 소감도 덧붙였습니다.

“마운드에 오를 때 평균자책점 기록이 신경 쓰이긴 했다. 지킬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시즌을 시작하고 나서도 지금까지 기록, 타이틀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몸 건강하게 30경기를 등판하는 게 목표였는데, 29경기 등판했으니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다. 정말 좋은 시즌을 보낸 것 같다.”

건강한 류현진은 정말 틈이 없습니다. 애틀랜타 경기를 시작으로 양키스, 애리조나, 콜로라도 경기에서 연달아 대량 실점하는 슬럼프를 겪었을 때도, 미국 언론과 팬들은 그의 실력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휴식만 줘라”라고 외쳤을 뿐입니다. 어깨 수술 이후 처음으로 풀타임 소화를 하고 있는 류현진에게 약간의 휴식만 주면 원래 페이스를 찾을 거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거죠. 시즌 시작 전, 아무리 어깨 수술한 선수의 한계를 이야기했어도, 결국 류현진은 실력으로 모든 판도를 바꿨습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겸손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건강하게 시즌을 치르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가장 먼저 거론된 건 역시나 ‘가족’.

“도움 주신 분들이 많다. 가족들, 아내도 고맙고, 1년 동안 김용일 트레이너 코치님이 많이 고생해주셨다. 덕분에 몸 관리가 잘 된 것 같고, 시즌을 잘 치렀다고 생각한다.”

개막전 선발 투수, 이달의 투수, 완봉승, 올스타게임 선발 투수, 사이영상 후보, 그리고 ERA 메이저리그 1위까지. 류현진은 올 시즌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이뤘습니다. 180이닝 이상 투구도 했고, 첫 홈런도 기록했습니다.

제이콥 디그롬이 ERA까지 바짝 따라와 의식이 됐을 법도 한데, 류현진은 정면돌파했습니다. 자기만의 스타일대로 7이닝 5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 볼넷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류현진 그대로의 모습이었습니다. 적시타는 덤이었습니다.

지난 23일 콜로라도 전에서 홈런을 날렸던 류현진은 마지막 등판 경기에서도 당당한 모습으로 타석에 올랐습니다.

류현진은 “투수라고 해서 쉽게 당하지 않겠다”라는 생각으로 타석에 올랐음을 알렸습니다.

그런데 첫 타석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번트 삼진 아웃을 당했습니다. 번트의 달인이라고 불리는 류현진에게 번트 삼진 아웃은 생소합니다.

벨린저 배트가 아닌 류현진 자신의 배트를 들고 타석에 올랐는데, 삼진 아웃을 당한 류현진은 배트를 물끄러미 보며 타석을 내려왔습니다.

배트 탓은 아니었습니다. 0-0 팽팽하게 경기가 흘러가던 5회초. 류현진은 같은 배트로 결정적인 적시타를 날렸습니다.

2사 3루 상황에서 타석에 오른 투수가 적시타를 때려내다니. 7이닝 무실점 호투에 결승타까지 기록했으니, 이날은 류현진이 다 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3루에 있던 럭스는 홈으로 향했고, 류현진은 1루로 향했습니다.

결승타 날린 선수의 당당함이 뿜어져 나옵니다.

류현진은 “지난 경기처럼 첫 타점이라 기분 좋았다. 게다가 오늘은 결승타라 기쁨이 두 배인 것 같다”라며 소감을 전했습니다.

류현진은 “이날 전체적으로 제구가 잘 됐고, 체인지업이 살아나 호투를 펼칠 수 있었다”라고 자평했습니다. 78~84마일까지 다양하게 나온 체인지업 구속에 대해서는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차이가 났고, 이로 인해 타자들이 애를 먹은 것 같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 박수 보내고 싶은 로버츠의 결정, 행동, 말

6이닝을 마치고 류현진이 마운드를 내려올 때였습니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여기서 끊을 수도 있겠는데?’라는 생각으로 로버츠 감독을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류현진에게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시선도 피합니다. 지금 교체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로버츠 감독은 7회에도 류현진을 마운드에 올리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류현진은 7회에도 다시 마운드에 올랐고, 실점 없이 이닝을 종료했습니다. 이날 총 투구 수는 97개.

그제서야 로버츠 감독은 류현진의 손을 잡고 교체를 알리며, 축하의 말을 건넸습니다. 7이닝 무실점, 투구 수 97개. ERA 2.32로 메이저리그 1위. 모든 게 완벽했습니다.

류현진의 손을 잡고 축하의 말을 건네던 로버츠 감독은 류현진을 꽉 안아줬습니다. 허니컷 투수 코치와는 자주 했던 포옹이지만, 로버츠 감독과의 포옹은 낯설었습니다. 악수하고, 어깨를 다독이는 모습은 자주 봤지만, 이렇게 안아주는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그의 포옹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ERA 1위를 축하한다는 의미, 사이영상을 타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한 시즌을 보냈다는 의미, 슬럼프를 벗어나 원래 류현진의 투구를 보여줘서 고맙다는 의미 등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경기후 인터뷰에서도 “류현진이 사이영상을 받아야 한다”라며 적극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다른 경쟁자들을 낮춰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류현진은 콜로라도 원정 2경기, 타자 친화 구장에서도 경쟁력있는 투구를 했다”면서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ERA 1위를 지켰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세부 기록들을 분석해보면 류현진이 올 시즌 사이영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포스트시즌을 생각하면 류현진을 5이닝 이하로 던지게 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로버츠 감독은 최고의 투수, ERA 1위라는 타이틀이 걸린 류현진에게 제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정규 시즌 마지막 투구를 하고 마운드를 내려온 류현진을 따뜻하게 안아줬습니다. 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류현진이 사이영상을 타야 한다”며 강조했습니다.

최고의 시즌을 보낸 류현진에게 보여준 로버츠 감독의 결정, 행동, 말은 '에이스 대우'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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