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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인

[야구는 구라다] 김성근, 그 후..

백종인 입력 2019.12.06.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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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오프 때다. 흥미로운 카드가 완성됐다. 와이번스 vs 히어로즈다. 둘은 1년 전에도 같은 무대에서 만났다. 그 때의 명승부가 생생했다. 다시 한번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웬걸.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입장권이 남아돌았다. 4600장이 현장 판매분으로 넘어갔다. 2차전은 더했다. 미예약분이 무려 6800장으로 늘어났다.

KBO리그에 관중이 줄고 있다. 2017~2019년 추이가 심각하다. 840만→807만→728만명으로 감소했다. 다이노스를 제외하고는 9개 구단이 비슷한 처지다. 20~25%씩 격감한 곳도 있다. 롯데, 한화, KIA, kt 등이다.

흥행뿐만이 아니다. 실적도 마찬가지다. 굵직한 국제대회마다 부진했다. 2017년 WBC는 1차 예선에서 탈락했다. 얼마전 프리미어12에서는 일본에 연패했다. 확연한 실력차를 느껴야했다. 심지어 대만에도 밀렸다.

위기론은 이제 잠재된 게 아니다. 실제가 됐다. 명백한 숫자와 현상으로 나타난다. 팬들의 거부감은 뚜렷하다. 도덕성에 대한 의구심, 그리고 품질에 대한 불만족이다. 특히 경기력에 대한 비판에는 변명거리도 마땅치않다.

20살 배영수, 매일 500개씩 일주일을 던졌다

얼마 전이다. 은퇴한 배영수가 한 유튜브에 출연했다. <야구부장의 크보 핵인싸>라는 채널이다. 자신의 프로 초창기를 이렇게 회고했다.

“20살때 개막전 엔트리에 들어갔어요. 그러다가 한번은 선발 나가서 점수를 한번 크게 준 적이 있어요. 경기 끝나고 매니저님이 ‘야, 너 2군 내려가래.’ 그러더라구요. 별 수 있나요. 경산으로 갔죠. 다음날, 그러니까 2군 첫 날이예요. 새벽 산책을 마치고 잠시 누워있었어요. 8시가 조금 넘었나? 구내 방송이 나오는 거예요. ‘배영수 선수 9시30분 피칭 스타트하세요.’ 그런가 보다 했죠.” 선수생활 첫 고비에 대한 기억은 계속된다.

“9시 반부터 공을 던지려면 9시부터는 몸을 풀어야해요. 그렇게 정확하게 9시 30분부터 피칭을 시작했어요. 12시반까지 계속 됐죠. 갯수로 따지면 500개 이상 던진 것 같아요. 그럼 어떤 줄 아세요? 온 몸에 알이 다 배겨요.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7시반 산책이 끝나고 8시에 침대 누워있는데, 또 방송이 나오는 거예요. ‘배영수 선수 9시 30분에 피칭 스타트 하세요.’ 어? 이거 뭐지? 그리고 또 한 500개 던졌어요. 선배들이 그렇게 말하더라구요. ‘영수야, 너 이제 X됐다.’”

이틀째가 끝이 아니다. 악몽같은 기억은 더 극한을 향해 달린다. “그 다음날 또 그러더라구요. 3일째 되니까 이제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갈 데까지 한번 가보자. 그걸 일주일 동안 했어요. (합하면) 3500개. 그렇죠, 근데 그걸 던지고 되게 편해졌어요. 절대 어깨, 팔꿈치로 안 던져요. 하체로 던지는 거죠. 그 때 처음 하체 쓰는 법을 배웠죠.”

당시 삼성의 2군 감독? 짐작하시다시피 ‘그 분’이다.

흙투성이 정근우의 사진 한 장

2년 조금 넘었다. 2017년 5월이다. 어느 날 야구 중계방송이었다. 게임 시작 전에 발라드 한 곡이 흘러나왔다.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이었다.

그대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 / 아무렇지도 않았나요 ♪ / 혹시 후회하고 있진 않나요♩♪ / 다른 만남을 준비하나요 ♬♭

노래는 1분 정도 이어졌다. SBS Sports 중계팀은 자막 몇 줄을 흘렸다. ‘김성근 감독과 한화의 939일…때로는 화려했고, 때로는 처참하기도…끊임없는 이슈의 중심에 있으면서도…줄 수 있는 것은 아낌없이 준 감독…김성근 감독이 없는 한화는….’ 그리고 주인 없는 덕아웃의 텅 빈 의자 하나를 클로즈업했다.

아직도 생생하다. 사상 유례없는 열풍이었다. 마리한화에 전국이 들끓었다. 공중파 메인 뉴스에도 진출했다. 각종 포털과 수많은 커뮤니티가 도배됐다. 거대한 신드롬이었다.

야신은 메시아가 됐다. 더 이상 만년 꼴찌가 아니었다. 천적이라던 라이온즈, 와이번스를 번번이 무너뜨렸다. 5할 승률도 가뿐했다. 순위표 3번째 자리까지 치고 올라갔다. 8회가 되면 세상이 시끄러워졌다. 육성 응원 소리가 뜨겁게 울려퍼졌다.

그러나 길지 않았다. 열광은 곧 맹렬한 반감과 마주쳤다. 퇴임할 때까지 나머지 긴 시간은 비판과 비난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손가락질과 비웃음의 대상이 됐다. 노리타, 세이콘, 불꼬치…. 그의 방식은 철저히 폄하됐다. 승리에 대한 집착, 혹사, 가혹한 (문책성) 교체, 상대를 자극하는 항의, 독단적인 팀 운영, 일방적인 소통…. 낡은 시대의 전형으로 외면받았다.

배영수의 깨달음…마리한화가 남긴 메시지

야신을 옹호할 마음은 없다. 그의 방식이 옳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 때가 그립다는 얘기도 아니다. 그걸 지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엄중한 반문 하나는 남는다. 과연 그 후에 무엇이 남았는가, 무엇을 했느냐. 그런 물음이다.

당시 <…구라다>의 한 대목이다.

‘어느 철학자가 그랬다. 역사는 우연과 필연의 연속이라고. 그러니 야신을 다시 무대로 불러올린 역사적 필연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를 다시 초대한 것은 팬들이었다. 그들이 만약 이 리그에서, 또는 그 팀에서 실현해낸 야구에 대해 충분히 만족하고 납득했다면 굳이 ‘구태의연한 옛날 방식’이 다시 역사의 앞쪽에 등장할 이유는 없었다. 흙투성이가 돼 시커멓게 나뒹구는 선수들에게 갈채를 보내거나, 주말 경기를 끝내고 관중들 목전에서 시전되는 질책성 펑고에 아낌없이 공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어느 방식이 옳은지, 어느 것이 더 높은 차원의 야구인 지는 논쟁과 논란의 여지를 남겨 놓아야 한다. 다만 그로 인해 치열한 경쟁이 이뤄지고, 발전해 나가는 방편이 돼야 한다.’

배영수는 유튜브 인터뷰 때 이런 말을 남겼다. 2009년 얘기다. 1승 12패를 하고 크게 낙담했다. 심각하게 은퇴를 고려할 정도였다. “쉬고 있었어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쉬고 있었는데, 구단에서 연락이 왔어요. STC에 가서 훈련하라고.” STC는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삼성 트레이닝 센터다. 삼성 그룹내 모든 종목의 선수들이 (재활) 훈련하는 곳이다.

“거기서 레슬링 선수들을 보면서 느꼈어요. 제가 정말 그 선수들보다 운동을 1/10도 안하고 있구나. 그 때부터 운동을 매진하게 됐죠.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 운동을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정신을 차리게 됐어요. 반성하게 되더라구요. 야구 너무 편하게 했구나 하고. 그 때 인생에서 전환점이 생긴 거죠.”

마리한화는 커다란 공감이었다. 뜨거운 열정에 대한 갈채였다. 쓰러져도 일어나는 의지에 대한 격려였다. 그 때와 지금, 어느 야구가 더 나은 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때는 어떤 몸부림이 전해졌다. 그게 팬들의 환호를 불렀다.

김성근의 시대는 저물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된다. 그를 소환한 건 역사의 필연이다. 하필이면 왜 그의 방식이 초대됐는가. 사람들은 왜 거기에 열광했는가. 그것은 결핍이었다. 더 프로다움을 갖추라는 질책이었다. 미국식, 일본식은 다음 문제다. 구시대 운운은 실력을 갖춘 이후 얘기다. KBO 리그는 그 준엄한 역사적 메시지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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