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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김병현과 샌드맨, 응답하라 2001

조회수 2019. 1. 24. 08: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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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어제(현지시간 22일) 저녁이었다. 세계적인 밴드 <메탈리카>가 동영상 하나를 올렸다. 짤막한 트윗 한 줄과 함께였다. ‘이봐 모(Mo), 축하 인사를 건네야할 옛 친구가 하나 생겼네.’ 모(Mo)는 마리아노(Mariano) 리베라의 애칭이다.

<메탈리카>의 명곡 ‘엔터 샌드맨(Enter Sandman)’은 1991년 발표곡이다. ‘빛이 물러가고 / 밤이 입장한다 / 네 손을 잡아 /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나라로 데려갈 것이다.’ 샌드맨은 잠의 요정이다.

묵직한 기타리프가 일대를 압도한다. 강렬한 드럼이 심장을 두드린다. 브롱스의 양키 스타디움에 이 노래가 울려 퍼지면 모든 게 정리된다. 깊은 잠에 빠지듯 아무 힘도 쓸 수 없다. ‘엔터 샌드맨’은 마리아노 리베라를 상징하는 등장곡이다. (실제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그는 록 음악은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밝혔다. 물론 메탈리카의 공연장에 가 본 적도 없다고 했다.)

또 하나의 역사가 탄생했다. (명예의 전당이 있는) 쿠퍼스타운에 100%라는 숫자가 새겨진 것이다. 425명의 투표인단 모두가 찬성했다. 샌드맨은 절대적인 지지를 얻으며 헌액이 결정됐다.

ESPN, CBS Sports, Fox Sports, MLB TV 등 주요 스포츠 매체들은 하루 종일 관련 뉴스를 쏟아냈다. 과거 하이라이트 영상과 회고, 인터뷰, 동료들, 관계자들의 축하…. 준비했던 컨텐트를 밤 늦게까지 틀고, 또 틀었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샌드맨은 사상 최고의 마무리다. 무려 652경기를 구해냈다. (2위 트레버 호프먼 601세이브.) 무엇보다 그의 진가가 발휘된 건 가을이었다. 포스트시즌 통산 96경기에서 8승 42세이브, ERA 0.70이라는 경이로운 숫자를 남겼다. 투수는 물론이고 역대 어느 포지션 플레이어도 넘보기 힘든 업적이다. 최초의 100% 헌액이 너무도 당연한 이유다.

하지만 그도 인간이다. 100번에 가까운 가을 야구에서 딱 1패를 안고 있다. 그 유일한 실패의 장소가 2001년 애리조나였다.

때문에 그에 대한 찬양이 봇물을 이룰 때면 오버랩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BK다. 같은 마무리 투수로, 그 현장에서 절망과 감격의 극적인 롤러코스터를 함께 경험했던 투수다.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미친 시리즈’

‘미쳤다.’ 그 상황에 어울리는 말은 딱 하나 뿐이었다. 아무리 봐도 제 정신이 아닌 경기였다. 속되지만 달리 표현할 길은 없었다. 2001년 월드시리즈 7차전은 그랬다. 양키스와 D백스의 대결이었다. 둘은 두고두고 회자될 위대하고, 처절한 승부를 남겼다.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다. 양쪽이 마찬가지였다. 냉정함, 치밀함, 판단력…. 그런 한가한 것들은 감히 낄 자리가 없었다. 죽느냐, 사느냐. 오로지 생존의 본능만이 남았다. 극한의 치열함이 아니면 버틸 재간이 없는 한계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런 절박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첫 우승을 노리는 홈 팀은 선발로 커트 실링을 택했다. 시리즈에서만 벌써 3번째 등판이다. 단 사흘만 쉬고 또 나왔다. 이로써 그는 300이닝이 넘는 시즌을 치르게 됐다. (보통은 200이닝만 넘겨도 대단하다.)

1-1의 팽팽함은 8회에 깨졌다. 알폰소 소리아노의 솔로홈런이 터졌다. 실링은 거기까지였다. 밥 브렌리 감독이 마운드를 교체했다. 이틀 쉰 5차전 선발 미겔 바티스타였다. 물론 놀랄 일도 아니다. 잠시 후 세번째 투수가 호명됐다. 뱅크 원 볼파크의 5만 팬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바로 전날 7이닝, 105개를 던졌던 랜디 존슨에게 공이 넘어갔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기가 질릴 정도의 맹렬한 저항이었다. 홈 팀은 1~3선발을 한 경기에 모두 쏟아붓는 크레이지 모드였다.

원정 팀도 밀릴 수 없다. 회심의 카드가 필요했다. 8회 말. 불펜의 문이 열렸다. 묵직한 걸음을 옮기는 투수는 샌드맨, 마리아노 리베라였다. 무표정한 광대뼈. 도무지 실패를 모르는 난공불락에게 1점차 2이닝을 맡긴 것이다.

살얼음 위에서 사상 최고의 매치업이 이뤄졌다. 랜디 존슨과 마리아노 리베라. 당대 최고의 투수가 벼랑 끝에 마주섰다.

‘샌드맨’의 포스트시즌 96경기 중 유일한 패전

본래는 그런 판이 아니었다. 냉철한 전략이 지배했다. 막강한 선발진과 셋업맨이 있었다. 마무리도 정상적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어느 순간 시리즈는 급변했다. 거대한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모든 것이 어마어마한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바로 아시아에서 온 이상한 투수 때문이다. 덩치는 자그마한 데 기 죽는 법이 없다. 22살의 표정치고는 늘 심드렁하다. 거기서 나오는 공도 예사롭지 않다. 희한한 폼에서 폭발적인 위력을 뿜어낸다. 빅유닛조차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딴 건 몰라도 삼진 잡는 건 BK가 나보다 나은 것 같아.”

디비전 시리즈,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도 여전했다. 4경기에서 3세이브를 올렸다. 6.1이닝을 무실점으로 거칠 것 없었다.

그런데 월드시리즈는 달랐다. 악몽은 4차전부터 시작됐다. 아웃 카운트 1개를 남기고 동점 투런(티노 마르티네스)을 맞았다. 첫 블론 세이브였다. 연장에서는 데릭 지터였다. 투 아웃 후 결정적 한 방을 내줬다.

다음 날 5차전은 더 기가 막혔다. 끔찍한 액운이 반복됐다. 역시 9회 2사 후였다. 2점짜리 동점포(스캇 브로셔스)를 허용했다. 급기야 마운드에 주저앉고 말았다.

두 차례의 믿을 수 없는 승부는 시리즈의 텐션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그렇게 성사된 7차전의 긴장감은 그야말로 절정으로 치달아갔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그런 분위기에서는 샌드맨도 별 수 없었다. 어마어마한 압박감이었다. 8회는 그럭저럭 막아냈다. 그러나 9회 들어 후달리기 시작했다. 안타를 맞고 번트 타구를 2루에 악송구했다. 결정적인 실책이었다. 결국 이게 빌미가 됐다. 동점, 이어서 루이스 곤잘레스의 빗맞은 타구가 전진 수비하던 유격수 뒤쪽에 떨어졌다. 애리조나 사막에는 거대한 모래 바람이 일어나고 말았다.

15년만의 세이브…BK는 아직도 싸우고 있다

며칠 전 MLB.com은 특별한 뉴스 하나를 전했다. ‘놀라지 마시라. 김병현이 아직도 야구를 하고 있다. 장소는 호주 리그다. 이건 매니 마차도, 브라이스 하퍼의 계약을 기다리며 허송세월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소식일 지 모른다.’

맛깔난 MSG도 살짝 뿌렸다. ‘지금쯤 53살은 먹은 줄 알았다. 그런데 39살 밖에 되지 않았다.’ 2001년 관련한 에피소드도 포함됐다. ‘이듬해 그는 양키 스타디움에서 세이브를 올렸다. 그리고 그 공을 가져와서 320피트(98미터) 밖으로 던져버렸다.’

                                                                           멜버른 에이시스 SNS

2007년 플로리다 말린스가 끝이었다. 메이저리그 경력 이후는 유랑의 연속이었다.

일본(라쿠텐)을 거쳐 한국으로 복귀했다. 히어로즈와 타이거즈를 전전했다. 틈틈이 미국 무대도 두드렸다. 피츠버그, 샌프란시스코와는 마이너 계약을 맺고 가능성을 타진했다. 심지어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의 독립 리그, 도미니카 윈터 리그에서도 뛰었다. 마치 공을 던지게 해주면 어디라도 괜찮다는 마음 같았다.

지난 겨울 행선지는 호주였다. 멜버른 에이시스에서 불펜 투수로 뛰고 있다. 한국 선수들로 이뤄진 질롱 코리아의 제의도 있었으나 사양했다. “조용히 지내고 싶다”는 이유였다. 어쩌면 ‘괜한 관심도 싫고, 그냥 야구만 하고 싶다’는 뜻일 지 모른다.

1월 13일에는 6-4 경기를 마무리했다. 법규를 시전하던 2003년 레드삭스 시절 이후 무려 15년만의 세이브였다.

2001년 11월을 함께 했던 두 마무리 투수는 18년 후에도 엇갈린 운명을 나눴다. 한 명은 가장 영예로운 무대의 주인공이 됐다. 다른 한 명은…. 지구 반대편에서 아직도 땀을 흘리고 있다. 그에게 마운드는 여전히 싸울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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