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다음 중 수비 실책에 열받은 투수의 표정은?

조회수 2019. 6. 2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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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별로라는 생각이다. 야구 감독은 피곤한 직업같다. 잘 나갈 때는 티도 안난다. 모든 공은 선수들 몫이다.

못할 때는 반대다. 비난과 비판이 한 곳으로 몰린다. 선수기용, 투수교체, 작전 실패…. 뭇매가 쏟아진다. 감 놔라, 배 놔라. 이래도 욕, 저래도 손가락질이다. 어디 팬들뿐인가. 프런트 오피스 눈치도 살펴야한다. 1년 중 가장 추운 절기는 7월이다. 올스타 무렵이면 늘 등골이 서늘하다.

승패만 책임지면 다행이다. 골치 아픈 업무도 수두룩하다. 그 중 하나가 기자들 상대다. 까칠한 인간이 한둘이 아니다. 도끼눈에 싸늘하기 그지없다. 곤란한 얘기만 자꾸 캔다. 왜 못 던지는지, 왜 못치는지. 당사자 놔두고, 그걸 왜 감독에게 따지냐는 말이다.

뻔한 걸 묻고 또 묻는다. 어제 한 얘기를 오늘 또 되풀이한다. ‘그것도 몰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런 대답이 목젖을 때린다. 참을 인을 수십번씩 되새긴다.

데이브 로버츠 씨(LA 거주)도 마찬가지다. 요즘 들어 출근이 겁난다. 또 그 질문에 시달릴 걱정 때문이다. “도대체 저 친구는 왜 그렇게 잘 던지는 건가요?” 해맑은 물음이 벌써 한달 넘게 숨통을 조여온다.

물론 정성껏 설명했다. “다양한 구종을 가졌어요. 그걸 구석구석으로 분산시키니 어떻게 치겠어요. 워낙 정확하게 던지네요. 타자가 예상하기도 어렵고, 예상한다고 해도 공략이 쉽지 않아요.”

그럼 뭐하나. 질문은 다시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그러니까요. 작년하고 뭐가 달라졌나요. 뭣 때문에 갑자기 저렇게 된 거죠?” “……….” 하긴 뭐. 딱히 ‘이거다’ 하고 꼬집을 게 없다. 누구 봐도 신기할 따름이다. 도대체 저런 스피드를, 왜들 저렇게 못 치는 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요즘 들어 문항이 추가됐다. 올스타전 얘기다. “뽑아줄 건가요? 선발로 나갈 수도 있는 거죠?” 7월이 아직 한참인데. 로버츠 씨, 이거 참 큰 일이다.

“그 친구는 집중력에 방해요소를 잘 통제해요”

지난 토요일(22일ㆍ현지시간) 경기를 앞두고였다. 전국 네트워크 TV중계였다. 기자들이 더 많이 몰렸다. 처음 화제는 전날 얘기였다. 워커 뷸러가 얼마나 엄청난 지, 공항(마이너행)에서 차를 돌린 맷 비티 덕에 퇴근한 스토리까지. 신나는 영웅담이 끊이지 않았다.

이윽고. 질문 하나가 날아와 꽂혔다. 수업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 한 마디였다. ‘어제 투수 로테이션 조정은 올스타전과 관련이 있겠죠?’

우회적이다. 하지만 날카롭다. 알고자 하는 내용은 민감한 부분이다. 그러니까 ‘5월의 투수’를 올스타전 선발로 올리려는 사전 작업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이건 피해가기 어렵다. 그러나 로버츠 씨가 누군가. 벌써 4년째다. 웬만한 상황에는 능수능란하다. ‘예스, 노’가 어려운 공격에는 매뉴얼이 있다. 비껴치기로 받아야 한다. 주제를 슬쩍 바꿔치는 수법이다.

“우린 늘 선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죠. 그 친구와도 마찬가지예요. 요즘 올스타전과 자신에 얽힌 많은 기록들에 대한 얘기를 하게 돼요. 그러다 보면 그 친구가 참 대단하다는 걸 느껴요. 당장 오늘 등판, 오늘 경기만 생각하고 있어요. 집중력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잘 통제해요. 그게 그를 더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인 게 분명해요.”

기자들이 졌다. 또 빈손이다. 기대했던 답변은 얻지 못했다. 하지만 소득은 있다. 로버츠 씨의 말은 중요한 부분을 상기시켰다. 잠시 후 경기를 이해하는 결정적 단초가 됐다.

말 많았던 내야 라인업

라인업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태평양 건너에서 특히 그랬다. 휴일 늦잠도 포기했다. 그런데 이 무슨 해괴한 포진이란 말이냐. 어느 한 구석 믿을 곳이 없었다. 내야 전체가 큰 구멍이다. 1루수는 아직 미트가 낯설다. 외야에서 온 작 피더슨이다. 유격수, 2루수도 전업들이 아니다.

땅볼 투수 아닌가. 괜찮으려나? 걱정은 1회부터 현실이 됐다. 맥스 먼시(2루수)가 공을 떨궜다. 다 잡은 주자를 놓쳤고, 첫 실점의 원인이 됐다.

하이라이트는 3회 초였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크리스 테일러(유격수)와 작 피더슨(1루수)이 공동정범이었다. 비기너 수준의 볼 처리를 놓쳤다. 끝나야 할 이닝이 계속됐다. 실점도 하나둘 늘었다. Fox TV가 선발 투수를 클로즈업했다. 전국으로 나간 자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2018년 9월 11일 이후 첫 3실점(포스트시즌 제외).’

     3회 테일러가 병살 플레이를 시도하다가 공을 놓쳤다.      사진제공 = 게티이미지

피해자는 오히려 밝은 표정이었다. 웃는 낯으로 기자들 앞에 나타났다. 경기 후 인터뷰였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선발 투수가 할 수 있는 건 했고, 제구나 이런 것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잘 끌고 나갔다고 생각해요. (3실점 기록 중단에 대해서는) 일단 그런 기록은 최대한 신경 안쓰고, 항상 선발 투수가 할 수 있는 걸 계속하는 걸로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아요.”

혼란스러운 3회에 대한 언급이다.

“최대한으로 막은 거 같아요. 최소 실점으로 막은 거 같아서 이길 수 있는 방향으로 간 거 같고, 그 상황에서 연타가 안 나왔기에 6회까지 던질 수 있었죠. 그냥 버텨야한다, 그런 생각(뿐이었어요)?”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스트라이크를

놀라운 장면이었다. 어쩌면 올 해 경기 중 가장 인상적인 ‘1구’였을 지 모른다.

3회였다. 1루수(피더슨)의 기막힌 저글링 묘기 직후다. 그러니까 3실점으로 기록이 중단된 시점이었다. 끝났어야 할 이닝이 2사 1, 3루로 이어진 대목이다. 다음 타자가 타석에 섰다.

이런 때는 잠시 정리의 시간이 보통이다. 어이 없음을 추스리고, 부글거림을 다스릴 짬이 필요하다. 뜨거움을 조금이라도 식혀야한다. 그런 뒤 투구판을 밟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고도 곧바로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넣기는 어렵다. 초구는 일단 유인구로 한 숨 돌리고 싶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5월의 투수는 그런 게 없다. (공을) 잡자마자 어드레스 자세다. 사인 교환도 순식간이다. 그리고 던진 초구다. 타석의 크리스 아이아네타는 멍~할 뿐이다. 가장 먼쪽에 스트라이크를 꽂아넣는다. 79마일짜리 체인지업이었다. 세상에. 저 대목에서, 저런 공을.

투수들의 실점 중 자책점 비율은 대략 90~95% 정도다. 그의 경우도 이 범주다. 작년까지 92.5% 수준이었다. 그런데 올 해는 다르다. 18개 중 14개만 자책점이다. 77.8%에 불과하다.

이 숫자에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까칠한 분석도 있다. 그걸로 인해 평균자책점 계산에는 유리했다는 지적이다. 즉 실제보다 ERA가 낮다는 뜻이다. WAR 계산에도 이 부분이 고려됐다. (fWAR=3.9, bWAR=3.8)

반면 우호적인 시각도 필요하다. 다승 경쟁에서는 분명한 손해 요인이다. 그만큼 수비 때문에 속을 썩였다는 반증이다. 무엇보다 개인의 스탯으로 다룰 일만은 아니다. 실제 경기의 승패와 관련된 문제다.

로버츠 씨도 이 지점을 지적했다. “우리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 수비에서 실수들이 나오면서 Ryu를 힘들게 했다. 그럼에도 그는 피해를 최소화했다. ‘열받지 않고’ 6이닝을 버텨줬다.” 실제 워딩은 ‘not frustrated’였다. 우리 미디어들은 ‘좌절하지 않고’ ‘화내지 않고’ 등등으로 해석했다. 약간 차이가 있을뿐 비슷한 말들이다.

변별력 제로의 문제

사실은 감독의 괜한 걱정이다. 우린 다 안다. 그가 누군가. <이글수련원> 출신 아닌가. 멘탈 교육으로는 탑을 찍는 곳이다. 그곳에서 수년을 정진했다. 이미 해탈의 경지에 다다랐다.

수련 마지막 해였다. 그러니까 2012년 8월의 일이다. 문학구장 와이번스전이었다. <이글수련원>의 대첩으로 유명한 경기였다. 원생들의 공격에서는 갖은 묘기가 속출했다. 주루사, 도루자, 견제사. 온갖 형태로 제 한 몸을 불살랐다.

수비는 더 다채로웠다. ▶ 미루면서 서로 안잡기 ▶ 엉뚱한 데 던지기 ▶ 표적보다 멀리 던지기 등 화려한 개인기를 시전했다. 5실점 패전투수의 자책점은 2점이었다. 물론 그마저도 사실은 0으로 봐야했다. 덕분에 그는 이런 표정을 짓고 말았다.

    <이글수련원> 시절. 아직 수련이 한참 부족한 모습이다.              SBS 중계화면

만약 누군가 이런 문제를 출제했다. ‘다음 중 수비 실책에 열받은 투수의 표정은? 복수로 선택하시오.’ 그리고 아래와 같은 사진이 예시했다.

                                                                                          fox.tv 화면

우선 정답을 제시한다. 아래 3장이 실점 때 표정들이다. 모두 수비 실책/실수가 빌미가 된 점수들이다. 특히 오른쪽 하단은 1루수의 어이상실 플레이 다음의 얼굴이다.

그럼 위 3장은 뭘까. 그건 삼진 잡은 뒤 모습이다. 낙차 큰 커브가 위닝샷이었다. 타자는 헛스윙으로 맥없이 나가떨어졌다. 통쾌한 KO승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표정이다.

물론 이런 문제 출제자는 욕을 한 사발 들이켜도 할 말 없다. 변별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다 똑같은 표정 아닌가. 좋은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니다. 그냥 심드렁 일색이다. 정답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차이를 찾아내라는 요구 자체가 부당하다.

<이글수련원>은 소문난 곳이다. 빡쎈 커리큘럼은 공포의 대상이다. 게다가 '5월의 투수'는 해외 유학파다. LA에서 최고위 과정까지 수료했다. 2015~2016, 2년간 폐관 수련을 거쳐 절대 내공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에 대한 흔한 평가다. 가장 큰 장점으로 일관성이 꼽힌다. 여러가지 구질을 같은 폼, 같은 릴리스 포인트에서 구사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제 그걸로는 부족하다. 하나를 더 보태야 된다.

바로 같은 폼, 같은 포인트, 그리고 한결같은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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