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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추신수와 할러데이, 그리고 새벽 출근

백종인 입력 2019.01.11.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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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휴가였다. 크리스마스 브레이크 쯤이리라.

추신수가 머문 시간은 2주였다. 길지 않은 기간에 인상에 남는 기사가 있었다. <스포츠경향>과 만난 신년 인터뷰였다. 특히 훈련 시간에 대한 얘기가 기억난다.

그는 부산고를 졸업하고 시애틀로 갔다. 이후로 스프링캠프 때면 늘 새벽부터 훈련했다고 밝혔다. 당시 출근시간 4시 30분은 17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텍사스 시설의 일화도 있다. 제프 베니스터 감독의 부임 첫 해다. 첫 출근이 새벽 5시였다. 클럽하우스에 가봤더니 추신수의 라커가 흐트러져 있었다. ‘어제 정리를 안하고 갔군.’ 그렇게 넘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라커의 주인은 벌써 나와서 무거운 들 것들이랑 씨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해 캠프에서 베니스터는 추신수를 (출근시간에서) 딱 한 번 이겼다고 했다. 그걸 자랑하는 감독을 향해 일침을 날렸다. “자꾸 나랑 경쟁하려고 하지 마시라.”

부지런함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단어가 있다. ‘루틴’이다. 경기장이나, 훈련장에서 늘 반복되는 일과(동작)다.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다. 칼 같이 일정한 스케줄을 지키는 일이다.

추신수 스스로는 이렇게 표현한다. “누군가 날 찾으면, 사람들이 ‘지금 쯤은 어디 있을 거야’라고 알려줄 정도다.”

반신욕이 시작이다. 5분, 3분씩 온탕과 냉탕을 오간다. 근육을 이완시키는 효과다. 그리고 웨이트 트레이닝, 치료, 관리, 배팅 훈련의 순서다.

새벽 출근, 철저한 루틴, 냉탕-온탕 반신욕. 이런 키워드에 떠오르는 선수가 있다. 21세기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인 로이 할러데이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할러데이의 또다른 별명…피트니스 괴물

팀 윌켄이라는 인물이 있다. 현직은 애리조나 D백스의 단장 보좌역이다. 본래 스카우트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거의 평생을 미국 전역으로 떠돌면서 살았다.

1995년 4월이었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일할 때였다. 콜로라도로 출장을 떠났다. 알바다 웨스트 고교라는 곳의 졸업반 투수를 보기 위해서다. 그곳에는 이미 24명의 스카우트가 몰렸다. 그만큼 소문난 선수였다.

하지만 의외였다. 정작 그 해 드래프트에서 인기는 별로였다. 앞선 순번에서는 케리 우드, 레지 테일러, 채드 헤르만센 같은 선수들이 지명됐다. 알바다 고교 에이스는 16번째까지 외면됐다. 결국 17번째인 블루제이스가 그를 찍었다. 18살의 로이 할러데이였다.

윌켄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난 그 트라이아웃에서 로이에게 100점 만점에 95점을 줬어요. 덩치도 크고, 패스트볼의 위력이 대단했죠. 아주 좋은 매커니즘을 가진 투수였어요. 당시로는 흔치 않은 너클 커브도 제법이었구요.”

하지만 정작 노련한 스카우트를 사로잡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친구를 잘 아는 사람을 소개받았어요. 로이가 13살 때부터 멘토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죠. 그가 그러더군요. ‘보통 애들이랑은 달라. 전혀 달라’라구요.”

회상은 이어졌다. “어린 고등학생인데 심하다 싶을 정도로 훈련에 몰입한다는 거예요. 특히 달리기는 선수들보다 더 많이 연습했대요. 그래서 하루는 크로스 컨트리 대회에 내보냈대요. 그랬더니 (콜로라도) 주에서 3등으로 골인하더라는 거예요. 더 웃긴 게 뭔지 알아요? 무슨 훈련 중독자 같이 매일 새벽 같이 학교 문을 따고 들어와 혼자 땀을 뺀다는 거예요. 자기가 보기에도 겁날 정도였다네요. 그러니 그런 얘기를 듣고 안 뽑을 스카우트가 어디 있겠어요.”

할러데이는 별명이 많다. 서부 개척시대의 총잡이 닥 할러데이에서 따온 ‘Doc’이 유명하다. 국내에서는 ‘할박사’, ‘할교수’라고도 불린다.

동료들은 또다른 닉네임을 붙여줬다. 피트니스 괴물(fitness freak)이다. 광적으로 집착한다고 그렇게 불렀다.

                                                                        사진제공 = 게티이미지

“4명의 에이스라니, 우린 5명이다”

2011 시즌을 앞두고 가장 핫한 팀은 필리스였다. 클리프 리의 합류로 최강의 선발진이 구축됐다. 기존의 로이 할러데이, 콜 해멀스, 로이 오스왈트와 함께 초호화 로테이션이 완성된 것이다.

미디어들은 화려하게 이름 붙였다. ‘최강의 락 밴드’ ‘에이스 포 카드(The Four Aces)’ ‘판타스틱(PHantastic) 4’ 등등이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스프링캠프에서 이를 커버 스토리로 기획했다. 4명을 모아놓고 사진 찍고, 그들에 대한 기사를 쓰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 멤버 중 하나였던 해멀스의 기억이다. “구단 홍보 파트의 안내로 4명이 모두 모였죠. 그런데 닥(할러데이)이 오면서 상황이 달라졌어요. 그는 ‘왜 4명이냐. 우린 엄연히 5명(로테이션)으로 이뤄졌다. 5명 모두가 에이스다’라며 정색을 하는 거예요. 갑자기 분위기 싸~해졌죠. 인터뷰는 커녕, 말 한 마디도 꺼내기 힘들게 됐죠. 결국 (5선발이던) 조 블랜턴이 올 때까지 그들은 셔터 한 번 누르지 못했어요.”

    결국 5명이 모여서 찍은 당시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표지 사진.

2017년 늦가을. 플로리다에서 ‘ICON A5’ 모델 경비행기 한 대가 추락했다. 희생자를 향한 추도가 줄을 이었다.

“2013년 8월 13일을 잊을 수 없어요. 로이는 시즌 내내 부상과 싸우고 있었죠. 우린 서로 잘 알고 있었어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죠. 두 달 후면 아마도 다시는 마운드에 서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말이죠. 리글리 필드였어요. 그는 불펜에서 힘을 쥐어짜고 있었죠. 겨우 83마일 나오더라구요. 낙담에 넋두리까지 하더군요. ‘엉망이야. 온 몸이 아파.’ 그런데도 그는 내려오지 않았아요. 늘 그렇듯이 필사적으로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었던 거죠.” (마이클 영)

“언젠가 시범경기였어요. 닥(Doc)과 내가 선발로 붙었어요. 3~4이닝 정도 던졌나? 그걸로 일과는 끝났죠. 샤워하고, 점심을 먹었어요. 그리고 퇴근하는 길이었어요. 차 타고 나가다가 뒤쪽 보조 구장에서 그를 발견했어요. 폴과 폴 사이를 열심히 달리더군요. 코치들이나 카메라(미디어)가 올 리도 없는 곳에서 말이죠.” (맥스 슈어저)

“캠프 첫 날이었어요. 난 새벽 5시 45분에 야구장에 도착했어요. 당연히 1등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누군가 먼저 와 있었어요. 새로 이적한 로이였죠. 옷이 흠뻑 젖어있더라구요. ‘혹시 밖에 비가 오나요?’ 그렇게 물었죠. 덤덤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아뇨. 조금 전에 훈련을 마쳤거든요.’ 최고란 어떤 것인지 절로 느껴졌어요.” (체이스 어틀리)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다시 2017년 가을 얘기다. 플로리다의 클리어워터라는 곳이다. 캘버리(갈보리)라는 기독교 계통의 고등학교가 있었다.

22년전 인연이 자리를 함께 했다. 로이 할러데이와 그를 지명한 스카우트 팀 윌켄이었다. 할러데이는 캘버리 고교에서 투수 코치로 일하고 있었다. 물론 무보수 자원봉사였다. 맏아들 브래든이 다니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봐요 팀, 우리 아들 좀 봐요. 쓸만하죠? 우리 학교가 지금 35승 무패예요.” 투수 코치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가득했다. 왕년의 스카우트는 기쁨을 더해주고 싶었다. “이봐 로이. 내가 선물 하나 주려고 하는데. 옛날 자네 스카우트 리포트말이야. 찾아보면 어디 있을 거야. 다음에 만날 때 가져다줌세.”

그러나 선물은 전해지지 못했다. 불과 며칠 뒤 비극적인 사고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명예의 전당 헌액 후보자 35명이 공개됐다. 은퇴 5년이 넘은 20명이 새롭게 포함됐다. 로이 할러데이의 이름도 들어있었다. 결과까지 2주 정도 남았다. 현재까지 그의 득표율은 94%를 조금 넘기고 있다. 기준선은 7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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