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어떤 유리몸에 대한 짧은 생각

조회수 2019. 4. 25.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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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분명히 프로 팀간의 경기였다. 그런데 너무나 참혹한 스코어였다. 이 숫자는 일본 프로야구(NPB)의 기록으로 남았다.

2000년대 중반, NPB가 구조 조정을 겪었다. 와중에 탄생한 팀이 라쿠텐 골든이글스였다. 오릭스와 긴테쓰의 합병 과정에서 태어났다. 모기업의 자금력이 상대적으로 대단치 않았다. 비싼 선수를 데려다 쓸 입장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버려진 선수들로 팀이 꾸려졌다.

연고지도 도호쿠 지방 센다이였다. 결코 빅마켓으로 불릴 수 없는 지역이다.

성적을 기대하는 게 염치없다. 26-0은 그들의 창단 2번째 공식경기에서 나온 치욕이었다. 꼴찌는 당연했다. 그 해(2005년) 1위와 승차가 무려 51.5게임이었다.

시간이 꽤 흘렀다. 일본시리즈 7차전이 열렸다. 놀랍게도 센다이였다. 8년전 26-0의 희생자였던 언저리 팀이 일본 최고의 명문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싸우고 있었다.

8회가 끝났다. 홈 팀 3-0으로 앞섰다. 마지막 9회를 남기고 투수 교체가 통보됐다.

을씨년스러운 날이었다. 부슬부슬 비를 맞으며 그가 등장했다. 스탠드의 팬들은 모두 일어섰다. 어마어마한 함성이 메아리쳤다. 절대적 에이스 다나카 마사오였다. 관중석 곳곳에 플래카드가 물결을 이뤘다. 그중 하나가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하나님, 부처님, 다나카님’.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류현진의 살얼음판 같았던 밀워키 복귀전

지난 주말 밀러 파크였다. 작년 NL 챔피언십 시리즈 당사자끼리 다시 붙었다. (그 때 부진했던) 원정 팀 선발 투수에게는 설욕전이었다.

초구가 들어갔다. (투심이지만) 나름대로 패스트볼인데 80마일 중반대다. mlb.cm은 85.8마일로 측정했다. 첫 타자 로렌조 케인을 상대한 6개 중 4개가 체인지업이었다. 평소보다 3~6마일은 뒤로 갔다. 겨우 75~78마일 정도였다. 4구째 유일한 포심도 마찬가지다. 87.7마일 밖에 되지 않았다.

1회가 끝났다. 실전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마치 연습 투구 같았다. 힘 쓰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어찌어찌 요령으로 버틴다는 인상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됐다. ‘저렇게 던져도 괜찮으려나?’

2회, 3회…. 뒤로 갈수록 나아지기는 했다. 간간이 91~92마일짜리도 얼굴을 내밀었다. 그래도 내내 편한 마음으로 보기는 어려운 경기였다.

현지 취재진들이 질문을 던졌다. 마땅히 숨기기 힘든 상황이었다. 솔직한 답변이 나왔다.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다. 오랜만에 등판한만큼 처음부터 바로 힘을 주면 어떻게 될 지 몰라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1회 이후 구속도 올라왔다. 마지막까지 잘된 것 같다.”

패전 투수가 됐다. 옐리치에게 연타를 맞은 게 흠이었다. 나머지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12일의 병가치고는 후유증도 크지 않았다. 본인도 후련했던 것 같다. 시카고 야경을 배경 삼아 알콩달콩한 인증샷까지 올라왔다.

                                                         류현진 아내 배지현 씨 SNS

‘하나님, 부처님, 다나카님’

다시 6년 전 얘기다. 센다이에서 열린 일본시리즈 7차전이다.

‘하나님, 부처님, 다나카님’은 3-0을 지켰다. 27번째 아웃의 순간 스타디움은 온통 환희와 절규가 어우러졌다. 와인색 우비를 입은 관중들은 서로 부둥켜 안은 채 빗물과 눈물 범벅이 됐다.

작고한 호시노 센이치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노감독(당시 66세)은 소리내서 엉엉 울었다. 일생의 첫 우승이다. 그것도 평생 원한을 품고, 숙적으로 여겼던 요미우리를 꺾고 얻은 트로피였다.

철없는 기자가 물었다. '생애 첫 우승입니다. 얼마나 기쁘십니까?'

노감독은 단호한 표정이 됐다. "무슨 소리, 내 우승? 그까짓 게 뭐라고…. 줄곧 이분들의 아픔을 달래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싸웠다. 도호쿠의 어린이, 이재민들에게 용기를 안겨준 선수들을 칭찬해주셔야한다."

                                             라쿠텐 골든이글스 SNS

그 우승의 2년전(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있었다. 라쿠텐의 연고지 도호쿠는 직격탄을 맞았다. 슬픔뿐인 곳에서 야구는 어려웠다. 리그 연기/중단, 연고지 이전이 심각하게 검토됐다. 그러나 시민들이 그들을 다시 세웠다. "우리를 위해 여기서 계속 싸워달라." 눈물어린 청원이 이어졌다.

일본시리즈를 중계하던 TV방송도 틈틈이 간이 컨테이너 박스를 화면에 담았다. 이재민들의 간절한 응원이 전국으로 전해졌다. 선수들의 유니폼 자락에 새겨진 '감바레 도호쿠(がんばれ東北ㆍ 힘내라 도호쿠)'라는 문구도 클로즈업 됐다.

그들에게 마쿤(다나카 마사히로)은 신이 내린 용사였다. 선발 24연승의 세계 신기록은 팀을 일본시리즈로 끌고간 원동력이었다.

이틀간 투구수 175개, 혹사 논란

혹사 논란이 있었다. 일본시리즈 우승 당시였다. 마쿤은 6차전에 160개를 던졌다(9이닝 4실점 완투패). 그리고 바로 다음날 7차전에서 또다시 15개에 혼신을 실었다. 호시노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그 녀석이 없었으면 오늘 이 자리도 없었다. 마지막 순간의 영광은 당연히 그 녀석의 몫이다."

마침 메이저리그 이적을 앞둔 시점이었다. 이틀간 175개는 국제적 이슈가 됐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시끌시끌했다. (그 해 총 241이닝을 던졌다.)

아니나 다를까. 양키스 첫 해(2014년)부터 문제가 생겼다. 팔꿈치 이상이었다. 인대 손상으로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당사자는 거부했다. 일종의 주사 요법인 PRP와 물리치료로 대신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듬해는 팔꿈치 뼛조각 제거수술을 받았다. 2017년은 어깨 염증, 2018년에는 햄스트링을 앓았다. 부상자명단의 단골 손님이었다. 꾸준히 10승을 넘겼지만, 규정 이닝을 채운 것은 2번 밖에 되지 않는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유리몸이라는 수군거림에 대하여

우리의 99번도 비슷하다. 미국행 3년차부터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어깨, 팔꿈치에 이어 사타구니 통증까지 괴롭히는 중이다. 모두 9번의 DL과 IL을 겪어야했다.

비판과 비난이 뒤따랐다. 유리몸이라는 수군거림도 들렸다. 프로답지 못하다는 찡그림도 있었다. 전담 트레이너 두고 나아진 게 뭐냐는 반문도 생겼다. FA 대박은커녕 쪽박이 될 거라는 비아냥도 반박이 어렵다.

맞다. 술, 담배도 좀 하는 것 같다. 햄버거 세트 메뉴 몇 개를 먹어도 어색하지 않은 몸매다. 연예인 형들과 달리기도 가끔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로 본질이 가려져서는 안된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그 쪽 팬들의 못마땅함은 어쩔 수 없다. 현지 미디어의 매정함도 그러려니 한다. 구단이나 관계자들이 냉정한 시선이라도 딱히 할 말은 없다.

다만, 우리도 같아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그 유리몸 안에는 오랜 시간이 담겨 있다. 이글스에서의 7년과 수많은 태극마크 경기들이다. 180이닝을 5번이나 넘겼다. 그런 KBO 리그 때 헌신을 모른 체 해서는 안된다.

2008년 베이징 때다. 21살짜리 어깨에 결승전을 맡겼다. 온 국민의 염원을 담은 123개가 뿌려졌다. 그 때의 수고와 피로함도 모두 지금의 유리몸 안에 축적됐을 것이다.

갸웃거림, 비판의 날 선 눈길은 단지 저들의 시선이다. 우리의 눈은 가슴 높이에 맞춰야 한다.

굳이 간절하고, 애절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냥 묵묵히 지켜보는 걸로 충분하다. 그의 잦은 부상과 재발에는 우리와 함께 했던 시간의 흔적들도 묻어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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