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야구

[야구는 구라다] 돌부처의 외면당한 구조 신호

백종인 입력 2019.02.15.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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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산은 애리조나의 변방이다. 인구 50만 명 도시에 무슨 소리냐고? 물론 아니다. 그냥 야구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애리조나 하면 스프링캠프의 중심지다. 캑터스 리그에 참가하는 ML팀이 16개나 된다. 피오리아, 서프라이즈, 글렌데일, 스카츠데일, 메사, 템피 등등. 피닉스 중심으로 퍼진 근교의 위성 도시들이 한 달 내내 북적댄다. 호텔비, 골프장, 식당 등 인근 상권들이 대목을 맞는다. 시즌제 요금이 적용되면 평소보다 몇 배의 가격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투산은 다르다. 전혀 동떨어졌다. 피닉스에서 200㎞ 가까이 남쪽으로 내려간다. 오히려 멕시코 국경에서 멀지 않다.

거리가 있는만큼 기후도 차이난다. 2월 기온이 약간 쌀쌀한 편이다. 평균 20도 정도다. 추울 때는 영하로도 내려간다. 눈이나 우박도 심심치않게 만난다.

을씨년스러운(?) 곳이지만 건너 뛸 수 없다. 한국에서 온 손님들에게는 필수 코스다. 관계자, 취재진, 중계팀 등의 패키지 여행 목록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피오리아(키움) 스카츠데일(NC)만 찍고 가면 섭섭하기 짝이 없다. ‘막내(kt 위즈)라고 무시하냐.’ 툴툴거림은 안봐도 비디오다.

돌부처의 강제 수원행

검정색 후드에 두터운 바지. 중무장한 덩치가 입술이 새파랗다. “어, 춥다. 추워.” 운동 그만둔 지 얼마나 됐다고. 엄살이 장난 아니다. 방송사 중계팀 일행과 동행한 예전 홈런왕이다. 36번 달고 펄펄 날던 때가 엊그제다.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찾은 곳은 불펜이다. 하긴. 거긴 바람막이가 있으니 덜 춥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내부는 이미 뜨겁게 달아올랐다. 미트에 공이 박히는 소리가 ‘뻥, 뻥’ 울린다. 투수들이 토해내는 기합 소리, 연신 ‘나이스 볼’을 외치는 포수들의 추임새에 생동감이 흘러넘친다. 새로 온 용병 알칸타라와 이대은을 바라보는 팀 관계자들의 표정이 흐뭇하다.

하지만 엄살쟁이가 분위기를 깬다. 유심히 지켜보다가 내뱉은 한 마디 때문이다. “저기 안쪽에서 던지는 친구가 제일 좋은데요.” 전 홈런왕의 지목을 받은 투수는 위즈 유니폼이 아니다. 평범한 트레이닝복 차림이다. “저 친구한테 21번 줘야겠어요(돌부처의 삼성시절 등번호다).” 코치 한 명이 얘기를 받고, 농담을 보탠다. “광교 신도시 쪽에 아파트도 알아봐야죠.”

곁에 있던 이순철 해설위원이 웃음을 터트렸다. “언제 옮겼냐.” “그렇게 됐습니다.” 돌부처의 강제 수원행은 투산에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일보 후퇴한 출국장 인터뷰

지난 달 말이다. 인천 공항 출국장이 북적거렸다. 기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누가 떠나나 보다. 스포츠 관련 기업의 로고가 빼곡한 스폰서 패널도 등장했다. 셀럽의 비중을 짐작케했다.

주인공이 나타났다. 패널 앞에 자리잡았다. 동시에 수십개의 마이크와 스마트폰이 그의 입으로 향했다. 스위치 온(ON). 음성 파일이 바쁜 작업을 시작했다.

“이번 겨울 귀국 동안 조용히 지냈다. 죄송하게도 인터뷰 요청 같은 외부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휴식도 잘 취하고, 훈련도 충실하게 했다. 마운드 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개인적인 목표는 없다. 부상 없이 시즌을 소화하고 싶다.”

서론이 길다. ‘이 보시오, 셀럽 양반. 그런 한가한 얘기나 듣자고 우리가 모인 건 아니지 않소.’ 기자들의 눈빛에서 레이저가 나오기 시작했다. 뭔가 핵심을 얘기할 때라는 뜻이다. 다시 입이 열렸다.

“지난해 귀국하면서 국내 복귀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그것 때문에) 많은 얘기를 들었다. 올 해를 마치고 FA가 된 후의 상황은 시즌 뒤에 생각하겠다. 에이전트와 상의해 좋은 방향으로 정할 것이다. 메이저리그 잔류와 국내 복귀에 대해서는 아직 말할 상황이 아니다. 모든 걸 시즌 뒤에 생각하겠다.”

싱겁다. 팔이 아프도록 마이크와 폰을 들이댔는데. 기자들의 표정도 심드렁해졌다. 귀에 쏙 들어오는, 눈에 확 띄는 포인트가 없다. 정석의 범위를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잘 정리된 멘트들 뿐이다.

혹시나~. 작년 귀국 때처럼 화끈함을 기대했던 발걸음들은 힘이 쭉 빠졌다.

폭탄 발언 이후

도대체 왜 그랬을까. 느닷없는 돌직구였다. 작년 귀국 때 “복귀하고 싶다”는 발언은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계약에 묶인 사람이 왜 저런 말을 하나.’ 그런 적절성 따위를 따질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 보다는 훨씬 앞서는 게 직업적 본능이다.

돌발 멘트는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당사자도 잠행을 계속했다. 그럼 또 다시 의문이 생긴다. 무슨 심정으로 그런 말을 했던 걸까.

최근 들어 일단이 엿보였다. 본인의 언급을 통해서다.

해외 생활을 통해 느낀 게 많았다. 후배들과 공유해 한국야구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 그러려면 힘이 있을 때 복귀해 실력을 유지해야만 한다. 이런저런 복합적인 생각에서 나온 말이다.” <스포츠서울 설 특집 인터뷰 중에서>

분명한 건 그 때는 좀 지쳤던 것도 있었고, 친정 삼성에 아쉬운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 삼성 팬들께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팬들의 그런 마음을 알기 때문에 나도 조금은 마음이 움직였던 것이다.” <투산 캠프서 엠스플과 인터뷰 중에서>

왠지 짠한 외야의 달리기 모습

대략을 보면 이렇다. ‘깊은 생각이나 고민 끝에 나온 말은 아니다. 그러니까 심각하게 적극성을 부여할 필요는 없다. 오랜 외국 생활에 피곤하고, 지친 상태였다. 그래서 나온 우발적 발언으로 치자.’ 뭐 그런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구라다>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난 번 폭탄 발언 때도 밝힌 바 있다. (야구는 구라다-오승환 복귀설에 대한 해석적 추론 https://sports.v.daum.net/v/gcWv9ooo1H?mccid)

적어도 그의 귀국 당시 깜짝 코멘트는 결코 순간적이고, 충동적인 게 아닐 것이다. 그만큼 즉흥적이고 가벼운 캐릭터는 절대 아니다. 깊숙한 곳에 뭔가가 분명히 있다. 그런 의구심은 멈춘 적 없다.

하지만 그 얘기를 다시 꺼내자는 건 아니다. 이제는 본인조차 조심스러워한다. 그런 주제에 대해 시시콜콜 할 필요도 없다. 다만 남는 게 있다. 안타까움이다. 짠함이다.

어쩌면 그 발언은 구조 신호였는 지 모른다. 버젓한 명분은 있었다. ‘힘이 있을 때 돌아와서 팬들과 한국 야구에 뭔가를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면에 비춰진 건 호소였다. ‘많이 지쳐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다는 걸 느꼈다.’ 그런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SOS는 외면당했다. 커다란 벽에 막혀 버렸다. 아무런 변화도 끌어내지 못했다. 결국 아무 일 없었던 듯 다시 스프링캠프에 합류해야 했다.

요즘 그의 이름이 자꾸 소환된다. 달갑지 않은 분야에서다. 서울 사는 후배들이 사진찍혔다. 마카오와 시드니가 오버랩 됐다. 베팅액이 많으냐/적으냐. 그래서 법을 어긴 것이냐/아니냐. 며칠 동안 댓글창이 펄펄 끓는다.

굳이 업보(業報)로 여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일부 요인이 됐을 지 모른다. 72게임 정지라는 제한 말이다. 아니라면 그의 SOS는 다른 양상이 됐을 지 모른다. 물론 조심스러운 얘기다. 과오에 대한 벌은 엄하고 추상같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줄기 감성이 스친다. 세계 최고의 무대를 뛰는 고액 연봉자다. 이제 개막을 준비하는 희망 찬 시점이다. 그래서 맥 빠지고, 힘 풀리는 푸념일 지 모른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외야를 달리는 돌부처의 모습이 안쓰럽다. 왠지 짠함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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