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허(Her) 위원 "류현진은 3점 슈터 같아요"

조회수 2019. 3. 30.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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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90마일이 찍혔다. 완벽한 코스는 아니었다. 먼쪽인데, 약간 몰린 느낌이었다. 다행히 타자(애덤 존스)는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첫번째 공이 존을 통과했다.

개막전…1회…초구. 무슨 공을 던질까. 여기에 대한 관심은 이유가 있다.

작년 디비전 시리즈 때였다. 그 때도 커쇼 대신 1차전을 맡았다. 의외의 선택에 논란이 많았다. 그만큼 부담도 큰 등판이었다. 스스로도 "중압감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도"라고 했다.

그런 순간 로날도 아쿠나에게 던진 1구는 뜻밖이었다. 커브였다. 후에 이렇게 밝혔다. "미리 계획된 것이었다. 아쿠나는 직구에 강한 타자다. 그래서 (릭 허니컷) 코치님이 커브로 시작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해줬다."

사실 1회 초구에는 메시지가 담긴다. 선발 투수의 자존심 같은 거다. 일단 빠른 공으로 붙는 게 보통이다. 기싸움이나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비틀면 왠지 굽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아쿠나에게 던졌던 커브가 특별했다. (당사자가 별도의 코멘트를 남긴 이유도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어제(한국시간 29일)는 달랐다. 거침이 없었다. 첫 타석 애덤 존슨을 향한 8개가 모두 패스트볼이었다. (포심 4개, 커터 4개) 투지, 기개, 자신감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로버츠 감독의 심장 박동 이론

데이브 로버츠는 심장에 민감하다. 핵심 불펜 투수의 고질 때문이다. 간혹 찾아오는 불규칙한 박동 탓에 응급실 신세도 져야했다. 급기야 작년 겨울에는 수술까지 받았다.

그런 그가 또 한번 심장을 언급했다. "그 친구의 심장 박동은 일정하다. 절대로 긴장하거나 압박감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바로 개막전 승리를 선물한 선발 투수를 향한 진단(?)이었다. 한번 터진 말문은 멈출 줄 모른다. "안쪽 바깥쪽 모두 활용이 뛰어났다. 완벽한 커맨드였다. 높은 코스도 잘 공략했다. 정말 좋았다."

저러다 침이 마를까 걱정이다. 그렇게 띄워줄 요량이면 진작에 맡길 일이지. 플랜B도 모자라 C, D 얘기까지 나오게 만드냐 말이다.

어쨌든.

LA 일대는 하루 종일 평화로웠다. 새파란 하늘에 온화한 날씨였다.

평일(목요일) 낮 1시 게임이었다. 미국에는 한가한 사람들이 저렇게 많나 싶었다. 5만명이 스타디움을 가득 채웠다. 그들은 만끽했다. 가슴 졸임, 갑갑함, 울화 같은 증세는 눈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2시간 49분동안 안심하고, 편안하게 승리를 즐길 수 있었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허 위원'의 진단 - 공격적인 패스트볼의 압박

압도적이다. 그 정도의 안정감이다. 상대는 어떻게 해볼 틈도 찾지 못했다. 그냥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정신 못 차리고 허둥거렸다. 그러다 보니 벌써 6회가 끝났다. 점수 차이는 이미 회복이 불가능한 지경이었다.

뭘까. 도대체 그 압도적인 안정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기겁할만큼의 빠르기도 아니다. 기껏해봐야 91~92마일 정도다. 기발한 KO 펀치도 없다. 흔하디 흔한 커브, 커터, 체인지업이다. 그걸로 어떻게 저런 여유로움을 누릴 수 있을까.

별 수 없다. 이럴 때는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해설자 '허 위원'을 소환해보자. 실망하시겠지만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허 위원'은 아니다. 다저스 경기를 중계하는 SportsNet LA의 오렐 허샤이저다.

새삼 설명이 필요없으리라 믿는다. 다저스의 전설 아닌가. 특히나 투수 쪽에 대한 분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1회 투구를 보며 이렇게 설명했다. "작년에 아주 괜찮았죠. 그게 체인지업이나 커브 때문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아니예요. 진짜 이유는 패스트볼이죠. 기초를 이루는 패스트볼이 좋아졌기 때문에 성적이 났던 거예요. 시속 0.5마일 이상은 빨라졌죠. 거기다가 핀포인트 커맨드까지 갖췄어요. 그게 커브나 체인지업 같은 느린 무기들을 뒷받침하고 있죠."

기억하시라. 첫 타자 애덤 존스를 향한 8개를. 4개의 포심과 4개의 커터였다. 모두 강한 공의 압박이었다. 게다가 공격적이었다. 가급적 몰리는 카운트를 만들지 않는다. 볼넷이라면 진저리 친다. 그러다 보니 타자들에게는 강박이 심어졌다. '스트라이크만 던지는 투수'로.

본인의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이런 점이 읽힌다. "빠르게 승부한 것이 좋았던 것 같아요. (덕분에) 범타도 많이 나오고, 삼진도 나오며 자신감 있게 던질 수 있었죠."

애덤 존스를 카운트 3-2에서 삼진으로 잡았다. 곧바로 허 위원이 입을 열었다. "시범경기 때 삼진 12개를 잡는 동안 볼넷은 1개도 없었어요. 대단한 기록이죠. 사실 이 얘기를 카운트 3-2에서 하려다가 말았어요. 괜히 (말하면 안되는) 징크스가 생각나서요.ㅎㅎㅎㅎ"

Her 위원의 비유 "뛰어난 3점 슈터 같아"

Her 위원은 이날 히터(heater)라는 말을 자주 썼다. 패스트볼을 부르는 말이다. 너무 빨라서 공이 따끈따끈해질 정도라는 의미 아닐까 추측한다. 비슷한 현장 용어로 총알(bullet) 스모크(smoke) 허머(hummerㆍ붕붕거리며 날아간다고) 같은 게 있다.

4회 무렵이었다. 방울뱀의 출루가 철저히 막히자 이런 설명을 보탰다. "여전히 히터가 우세하네요. 변화구와 커브볼로 많은 평판을 얻고 있지만, 저런 히터에 대한 기반이 중요한 거예요. 정말 대단한 감각(커맨드를 뜻하는듯)을 가졌어요. 빅리그 상위 10%에 속하는 뛰어난 체인지업이 있지만 피칭의 주메뉴는 분명히 히터예요."

그러니까 그런 뜻이다. 완벽하게 제구된 빠른 볼로 계속 타자를 공격한다. 피해가는 공이 없다.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다. 빠른 템포로 계속 존 근처를 공략한다. 당연히 상대는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반대로 우리 편은 편하고 안정된다. 속이 시원시원하다.

Her 위원은 비유에 탁월하다. 예전에는 99번의 피칭을 골프에 빗댄 적이 있다. 이렇게 말이다.

"골프로 치면 말이예요, 그냥 (아무 준비없이) 첫번째 티로 뚜벅뚜벅 가는 거예요. 장갑 하나 꺼내서 끼고, 골프화도 툭 던져서 대충 신고. 그래요. 약간 건들건들, 커피도 한 잔 들고 말이죠. 그리고는 볼을 때려요. 280야드(약 256미터ㆍ프로 수준의 상당한 거리)는 날아간 공이 페어웨이 한 가운데로 떨어지죠. 나 같으면 스윙 연습에, 퍼팅에 한 45분은 다듬어야 간신히 시작하는 데 말이예요."

어제는 농구가 소환됐다. 3회 타자가 된 그레인키의 땅볼을 잡아서 아웃시키는 장면이었다. 제법 강한 타구였다. 껑충 뛰어서 잡아야했다. 때문에 송구 자세도 간단치 않았다.

"참 쉬워 보이죠? 저 친구는 하는 게 다 그래 보여요. 그런 재주가 있어요. 별로 연습도 필요없는 것 같죠?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그냥 쉽게 잡아서 별 일 아닌 것처럼 아웃시켜요. 마치 (농구의) 천재적인 3점슈터 같아요. 게임 전에 설렁거리다가 (슛 연습도 안하다가) 정작 시작되면 레이업이나 자유투 한두번으로 감을 잡죠.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3점슛을 성공시키죠. Ryu는 그런 선수들 같아요. 그런 걸 마운드 위에서 하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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