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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훈기의 스페셜야구] 변속기를 끌어올려 트라웃 제압한 류현진

민훈기 입력 2019.06.11. 15:19 수정 2019.06.1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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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이닝 1실점 호투에도 승리는 무산됐지만 마이크 트라웃과 극적인 승부 선물

요즘 류현진(32•LA 다저스) 경기를 준비하면서 늘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투수도 계속 좋을 수는 없는데, 과연 류현진은 안 좋은 날이 오면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물론, 무려 7연승 가도를 달리는 동안에 그런 날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침에 11일(이하 한국시간) 크로스타운 라이벌 LA 에인절스와의 일전이 류현진에게는 근래 들어 가장 힘겨운 경기가 됐습니다. 통산 맞대결 3경기에서 2승 무패 평균자책점 0.83에, MLB 첫 완봉승까지 거뒀던 상대였지만 초반부터 제구가 높게 되면서 힘든 날이 시작됐습니다.

 평소보다 체인지업이 말을 안 듣자 강공으로 전환해 트라웃과 에인절스 타선을 효과적으로 막아냈습니다. ⓒ다저스SNS

1회말 선두타자 라스텔라를 공 하나로 잡아냈지만 MLB 최강 타자 2번 트라웃과의 대결은 쉽지 않았습니다.

6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148km 포심 패스트볼로 정면 승부를 걸었는데 트라웃의 방망이에 제대로 걸렸습니다. 발사각도가 조금 높았으면 담장을 넘겼을, 조금 옆으로 갔으면 장타가 됐을 이 빠른 타구는 다저스 좌익수 피더슨의 정면으로 날아갔습니다. 운이 따랐습니다. 이어서 3번 베테랑 푸홀스에게 가운데로 몰린 143km 커터로 우전 안타를 맞았습니다. 재빠른 견제구로 푸홀스를 잡으며 넘긴 건 좋은 조짐.


다저스는 상당히 강력한 구위를 지닌 에인절스 루키 우완 투수 그리핀 캐닝을 상대로 2회초 2루타 3개를 몰아치며 3점을 뽑고 기선을 제압합니다.

1사후 시거가 좌측 2루타를 쳤고, 투아웃이 된 후 포수 마틴이 몸에 맞은 공을 맞은 게 컸습니다. 머리 쪽으로 패스트볼이 날아든 것에 날카로운 눈초리를 보낸 37세 베테랑 마틴의 기세에 캐닝이 조금 흔들렸을까요. 8번 테일러와 9번 키케에게 연속으로 좌측에 2루타를 얻어맞으며 3실점했습니다. 이날 6회까지 5피안타 5탈삼진으로 다저스 타선을 묶은 캐닝이었는데, 2회초에만 집중타로 3점을 허용했습니다.


요즘 류현진이라면 동료들이 점수를 뽑아준 바로 다음 이닝은 집중해서 수월하게 처리하고 갔을 테지만 이날은 쉽지 않았습니다.

4번 스미스는 6구 승부 끝에 1루 땅볼을 잡았지만 5번 좌타자 칼훈에 걸렸습니다. 볼 2개가 연속 들어가자 3구째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간 128km 체인지업이 맥없이 가운데로 몰렸습니다. 시즌 13홈런의 펀치력이 있는 칼훈은 이 공을 놓치지 않았고, 비교적 짧은 중앙 담장을 살짝 넘어가는 홈런으로 연결했습니다.

지난달 26일 피츠버그전 이후 3경기 만에 실점을 하는 순간이었고, 4월 27일 피츠버그전 이후 8경기 만에 내준 홈런이었습니다. 곧이어 류현진은 6번 타자 푸에요에게도 장기인 체인지업으로 우측에 날카로운 2루타를 맞았습니다. 초반 제구는 대체로 높았고, 특히 체인지업의 움직임이 평소보다 훨씬 둔했습니다.


2회까지 10개의 체인지업을 던졌던 류현진.

그러나 3회부터 그는 변속 기어를 끌어올렸습니다. 마치 스스로를 질책하듯 속구 위주의 조금 더 강력한 승부를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3회말 첫 타자 렌히포에게 포심 패스트볼 3개를 연속으로 던지면서 시작해 에인절스 타자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이어 2경기 연속 홈런에 9경기 연속 안타의 호조인 1번 라스텔라에게도 148km, 147km 패스트볼을 연속으로 꽂아 1루 땅볼 아웃을 잡으며 강공을 이어갔습니다.


마이크 트라웃과의 대결은 어떤 상황이든 흥미를 끕니다.

이날 전까지 트라웃은 류현진에 7타수 무안타 2삼진으로 막혔습니다. 그러나 첫 타석에 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 강력한 타구를 날렸습니다. 3회말의 두 번째 타석은 자존심 대결이기도 했지만, 경기의 흐름을 강하게 바꾸려는 류현진과 홈팀의 희망을 살려내려는 트라웃의 기싸움이기도 했습니다.

이 타석에서 류현진은 초구 바깥쪽으로 체인지업을 슬쩍 뿌려본 후 포심 패스트볼과 컷패스트볼(커을 번갈아 던지며 강공을 펼쳤습니다. 포심은 이날 최고 구속인 150km를 두 차례나 찍었습니다. 풀카운트까지 버틴 트라웃에서 류현진은 6구째 예리하게 몸쪽으로 낮게 떨어지는 커터로 헛스윙을 끌어냈습니다. 커터의 구속이 무려 144.5km에 이를 정도로 빠르고 예리했습니다.


류현진과 캐닝, 양 선발의 호투가 이어지며 더 이상 득점이 나오지 않는 가운데 이날 승부의 백미는 5회말에 찾아왔습니다.

7번 루크로이와 8번 토바르에게 연속으로 투심 패스트볼 안타를 허용하며 노아웃 1,2루 위기에 빠진 류현진은 일단 9번 렌히포를 삼진으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1번 라스텔라와 긴 승부 끝에 2루 땅볼을 끌어내며 병살로 이닝을 마치나 했습니다. 그러나 수비가 원활치 않으며 2사에 주자는 1,3루 그리고 다시 트라웃과 만났습니다.

 5회 2사 주자 1,3루에서 류현진이 트라웃 상대로 선택한 공은 체인지업 궤적으로 날아간 컷패스트볼이었습니다. 헛스윙 삼진으로 위기를 마무리했습니다.  ⓒMLB.com

만 27세에 이미 250홈런을 넘어선 트라웃은 벌써 AL MVP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을 뿐 아니라(MVP 2위도 4번), 베이브 루스의 역사적인 기록들을 갈아치울 것으로 여겨지는 역대급 괴물 타자입니다. 올 초 에인절스가 12년 연장 계약을 맺었다는 것으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올 시즌에도 17홈런을 친 트라웃이 여기서 한 방을 터뜨리면 경기는 4-3으로 뒤집어질 수 있는 대결.


류현진은 초구 148km 몸쪽 높은 스트라이크존을 뚫으며 기선을 잡았습니다.

2구째도 타자 몸을 향한, 그러나 낮은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 143km 커터에 트라웃이 방망이를 냈지만 파울이 되면서 볼카운트는 0-2로 투수가 완전히 유리해졌습니다. 여기서 류현진은 곧바로 148.4km의 포심으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위의 그림을 보시면 ③번 위치에 찍힌 공으로 초구 ①번 스트라이크보다 좋은 위치에 찍혔습니다. 그러나 필 쿠치 구심의 손이 올라가질 않으면서 분위기가 살짝 꼬였습니다. 4구째 커터는 높게 걸렸고, 모처럼 바깥쪽으로 떨어뜨린 5구째 체인지업은 선구안 좋은 트라웃의 눈썰미에 걸렸습니다. 다시 풀카운트.


여기서 궁금한 것은 5구째 공이 과연 류현진이 바깥쪽의 체인지업을 트라웃의 뇌리에 심어두려는 ‘목적구’였는지 하는 부분입니다.

류현진의 피칭 패턴을 보면, 매덕스 같은 역대 빼어난 기교파, 두뇌파 투수들이 그렇듯 매 공을 던지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첫 타석에서는 속구를 잘 때리고도 정면타가 됐던 트라웃, 바로 전 타석에서는 몸을 파고드는 커터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승부처 볼카운트 2-2에서 류현진이 바깥쪽 체인지업을 던진 게 빠졌습니다.

‘바깥쪽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조심해!’하는 메시지를 심어주곤 다시 전 타석에 당한 커터가 낮게 몸으로 파고들 것인가, 그도 아니면 자신의 약점인 몸쪽 높은 포심 패스트볼이 올 건인가 순간적으로 트라웃의 머릿속은 컴퓨터 회로처럼 빠르게 돌아갔을 겁니다.


풀카운트에서 마틴 포수의 미트를 주시하던 류현진은 투수판에서 살짝 발을 빼며 일단 트라웃의 김을 뺐습니다.

다시 셋포지션에서 류현진의 공을 떠난 공은 트라웃의 바깥쪽을 향했습니다. 무서운 타자 트라웃은 떨어지는 체인지업에 타이밍을 잡고 방망이를 힘차게 출발시켰습니다. 그런데! 류현진은 엉뚱하게도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3회 대결에서도 헛스윙을 끌어낸 오른손 타자의 몸을 파고드는 커터를 역으로 바깥쪽에다 꽂았습니다.

헛스윙!

주자는 1,3루에 그대로 묶였고, 트라웃은 류현진과의 통산 10번째 대결에서 여전히 안타 없이 삼진만 4개째 당했습니다. 류현진은 마운드를 내려가며 주먹으로 글러브를 살짝 치면서 모처럼 감정 표현을 했습니다. 다저스타디움이었다면 또 기립박수가 나왔을 극적인 승부였습니다.


힘든 경기를 치른 류현진은 6이닝 동안 공 99개를 던지면서 홈런 포함, 7안타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볼넷은 하나도 없었고(몸 맞는 공이 하나 있었지만) 삼진 6개를 고비마다 뽑으며 단 1점으로 막았습니다. 1.35이던 평균자책점은 1.36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빅리그 전체 1위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3-1의 불안하던 리드는 류현진 없이는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류현진이 내려간 바로 다음 이닝인 7회말, 바로 그 트라웃이 3번째 다저스 투수 프롤로의 슬라이더를 때려 가운데 담장을 훌쩍 넘어가는 동점 2점포를 터뜨렸습니다. 다저스는 결국 3-5로 역전패했습니다.

이날 승리가 무산되면서 MLB 5명의 9승 투수 중에 가장 먼저 10승 고지에 오를 기회도 함께 무산됐습니다. 한국 투수 3번째 통산 50승 달성도 다음 등판으로 미루게 됐고, 박찬호를 제치고 한국 투수 최다 8연승 기록 역시 다음 도전으로 미루게 됐습니다.


류현진은 오는 17일 시카고 컵스전에 등판 순서입니다.


이 기사는 minkiza.com, ESPN.com, MLB.com, baseballreference.com, fangraphs baseball, baseballsavant.mlb.com, Wikipedia, Associated Press, The Athletic, yahoo.com, baseballprospectus.com, Bleacher Report, The Wall Street Journal 기록 등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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