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야구는 구라다] 고집, 외곬..그런 양현종의 방식을 지지한다

백종인 입력 2021. 01. 04. 07:51 수정 2021. 01. 0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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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겨울이다. 짤막한 뉴스 한 줄이 떴다. 발신자는 야후 스포츠의 제프 파산이다. 숫자 2개가 선명했다. '3년 4800만 달러.' 소름끼칠 계약은 아니다. 연평균 1600만 달러 규모다. ML에서 대단할 건 없다.

계약서의 '갑'은 다저스다. '을'은 좌완 투수다. 석달 뒤면 37세가 되는 리치 힐이었다.

주마등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굴곡진 인생이 스쳐간다. 12년간 입은 유니폼은 무려 28개다. 메이저리그 8개, 마이너리그 18개 팀이다. 윈터 리그 1개, 심지어 독립 리그에서도 던졌다. "선발로만 뛰고 싶다." 그런 조건을 들어준 롱아일랜드 덕스였다. 급여가 월 2000달러 수준이었다.

12년이 순탄했을 리 없다. 어깨를 한번 열었다. 팔꿈치에도 칼을 댔다. 어린 아들을 먼저 보내는 아픔도 겪었다. 방출, 지명할당, 이적. 그런 것들은 연례 행사다. 무려 11번의 FA 계약을 맺었다. 대부분은 아무 것도 보장받지 못했다. 무려 4번의 스플릿 계약이 포함됐다. ML에 올라가야 제대로 받는다. 마이너로 떨어지면 1/10도 못받는다. 철저히 구단이 '갑'인 조건이다. (그 외에 또 한 명 있다. 저스틴 터너도 스플릿 계약만 4번을 견뎌냈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메이저리그 보장을 고집을 보는 또다른 관점

양현종이 새해를 맞았다. 한국도, 미국도 긴 연휴가 끝났고, 끝나간다. 본격적인 움직임이 기대되는 시간이다.

벌써 몇 년 전부터다. 해외 진출은 그의 꿈이다. 공공연하게, 그리고 강하게 뜻을 밝혔다. 물론 짝사랑은 아니다. 당연히 빅리그에도 리스트업됐다. 3~5선발급이라는 분류도 있다. 귀한 엘리트 왼손 투수 아닌가.

이번 겨울도 마찬가지다. 아직 뜨겁지는 않다. 그렇다고 냉골은 아닌 것 같다. 간간이 응수 타진은 있었으리라. 하지만 어느 정도라야 말이 통한다. 아직은 수면 아래 움직임일 뿐이다. 관건은 조건이다. 여전한 입장 차이가 전해진다.

핵심은 신분 보장이다. 메이저리그 로스터를 확보하느냐가 문제다. 보도에 따르면 몇몇 구단이 스플릿 계약을 타진했다. 납득도 간다. 그들도 리스크를 안는 입장이다. 나이도 걱정스럽다. 그러나 본인은 확고하다. 돈 문제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보장은 필수적이라는 생각이다.

왜 아니겠나. 미국 나이로도 33세나 돼서야 개막을 맞는다. 결코 적지 않은 연령이다. 적응 운운하며 (마이너리그에서) 허비할 시간이 없다. 그러다가 도전의 의미조차 사라지기 십상이다.

비단 그것 뿐만이 아니다. 양현종의 '고집'에는 또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거기서 살펴야만 좀 더 다른 의미가 보인다.

그랜달이 4년 계약을 마다한 이유

2년 전 일이다. 야스마니 그랜달이 시장에 나왔다. 다저스에서 FA를 선언했다. 그해 월드시리즈를 망친 탓에 관심은 반감됐다. 그래도 포수 중에는 단연 A급이었다. 나쁘지 않은 제안들이 오갔다. 결국 메츠가 최종 오퍼를 냈다. 4년 6000만 달러 조건이었다.

그런데 거절당했다. 한참 뒤. 그의 새 직장이 결정됐다. 뜻밖에도 브루어스였다. 1+1년 계약이다. 연봉 1600만 달러, 2년째는 옵트아웃 조항이다. 나올 때 225만 달러의 바이아웃(일종의 퇴직금)이 걸렸다. 사실상 연봉 1825만 달러짜리 1년 계약이었다.

이를 두고 말들이 많았다. '그러게 진작 메츠 제안을 받았어야지. 배짱 튕기다가 손해만 잔뜩 봤네.' 그런 뒷담화다. 총액을 보면 그럴듯한 해석이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달랐다. 타당한 선택이라고 강변했다. 그가 밝힌 이유는 하나다. 바로 포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다. 당시 mlb네트워크와 인터뷰 내용이다.

"최상위 레벨의 포수들이 어렵게 지금의 시장(가격대)을 만들어줬다. 내가 만약 다른 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그걸 훼손하는 일이 될 지 모른다. 앞으로 이어질 젊은 선수들을 위해서 이 정도 시장은 유지되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런 말이다. 포수는 고생만한다. 투수나 다른 포지션 플레이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 그나마 이걸 끌어올린 게 최상위급 선수들이다. (브라이언 맥칸, 러셀 마틴, 야디에르 몰리나를 언급했다.) 그들이 연봉 1650만~2000만 달러 정도의 가격대를 형성시켰다.

만약 메츠 제안에 OK했다치자. 그럼 단가는 1500만 달러로 낮아지는 셈이다. 후배 포수들 생각해서 그런 결정은 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랜달은 2019년 말 화이트삭스와 4년 7300만 달러에 계약했다. 연평균 1825만 달러 수준이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간판 투수다운 운신이 존중받아야 할 이유

어쩌면 고집, 고지식 또는 외곬일 지 모른다. 조금 더 유연하면 훨씬 폭이 넓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그런 반론도 가능하다. 도전 아닌가. 어떤 상황도 받아들여야한다. 그걸 이겨내는 게 진정한 자세다. 마치 4번의 스플릿 계약을 마다하지 않은 리치 힐처럼 말이다.

그러나 다른 논리로 접근해야한다. 마이너리그 거부권, 메이저리그 보장 계약. 그런 것들을 따내기 위해 이전 진출자들은 무진 애를 써야했다. 2013년의 류현진도 마감시한 5분전까지 이를 다퉜다.

양현종의 미국 진출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엄밀하게는 그렇다. 하지만 개인으로만 국한하기 어렵다. 그는 엄연히 KBO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다. 한걸음, 한걸음이 자취로 남겨진다. 후일 또다른 도전의 바탕이 될 것이다. 혼자만의 생각과 운신으로 한정돼서는 안된다. 보장, 거부권 같은 그의 고집이 존중되고, 지지받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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