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야구

[민훈기의 스페셜야구]NL MVP 옐리치의 만찬

민훈기 입력 2018.11.29. 08:10 수정 2018.11.2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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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매미에서 밀워키로 옮긴 첫 해에 대폭발, 팀의 첫 타격왕에 이어 리그 MVP에 오른 크리스천 옐리치

지난 주말 미국은 추수감사절이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북쪽에 위치한 웨스트레이크 빌리지의 한 트레이닝 센터에서도 추수감사절 만찬이 열렸습니다. 주차장이 임시 식당으로 변했고, 무려 500명을 초대해서 저녁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또한,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기구와 놀이수업, 마사지실, 자선 기부로 모은 다양한 제품이 자리한 무료 백화점까지 준비됐습니다. 이날 모임은 이 지역을 뒤덮은 최악의 화마로 집을 잃거나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초대해서 위로의 자리를 만든 행사였습니다. 이달 초 인근 다우전드옥스의 한 식당에서 12명이 사망한 총격 사건의 피해자 가족, 친지들도 초대받아 그날 저녁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우투좌타 외야수 옐리치는 NL 타격 1위, 타점 2위, 홈런 3위의 기록과 함께 새 팀 밀워키를 이끌며 압도적으로 MVP에 선정됐습니다.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

이 뜻 깊은 행사를 준비하면서도 분위기는 대체로 침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그러나 행사 전날 잠깐 동안 30여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환성을 지르며 기뻐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야구 선수 크리스천 옐리치가 ML MVP에 선정됐다는 소식이 TV를 통해 전해진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밀워키 브루어스의 만 26세 외야수 옐리치는 웨스트레이크 고교 시절부터 바로 이 트레이닝 센터에서 운동을 했습니다.

총 30명의 투표인단 중에 29명이 1위 표를 던졌을 정도로 압도적인 시즌을 보낸 후 옐리치는 현재도 살고 있는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재앙이 덮친 지역 주민과 아픔을 함께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컸습니다. 팀 선배이자 같은 지역 출신인 라이언 브론에게 동참을 부탁했고, 밀워키 사상 4명뿐인 MVP 중에 두 명이 이번 추수감사절 만찬을 지역 주민들과 함께 했습니다. 500인분 식사는 인근 스톤파이어그릴 식당에서 전부 기부였습니다. 많은 지역 비즈니스에서 이번 행사에 동참했습니다.

브런과 옐리치는 또한 희생자들과 피해자들을 위해 기금 모금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근 지역 출신인 밀워키 3루수 마이크 무스타카스, 필라델피아 감독 게이브 케플러, 전 올스타 잭 윌슨, 조 보차드 등이 이미 자선 소프트볼 경기 출전을 약속했습니다.


옐리치는 “우리 모두 이 지역에 자라며 행복한 추억을 잔뜩 담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고, 나의 인생에 아주 긍정적인 큰 영향을 주신 분들이 많다. 그 중 많은 분들이 집이 불타거나 큰 피해를 입으셨고, 가족 친지들이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 너무 속상하다.”고 이번 행사를 계획한 이유를 말했습니다. 이날 옐리치는 많은 사람들과 악수와 미소를 나누고 사진을 함께 찍으면서 가슴으로 행사를 주도했습니다.

옐리치는 자신의 가장 큰 팬인 어머니 알레시아와 상의 끝에 MVP 수상 축하는 아주 조촐하게 집에서 작은 모임으로 대신했습니다. 알레시아는 "축하 파티를 열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크리스천에게 너무도 뜻깊은 수상이이서 집에서 작은 모임은 하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고교 시절부터 그의 운동을 도와주던, 그리고 이번 화재로 부모와 할머니가 집을 잃은 트레이너 라이언 소렌선도 함께 했습니다.


1991년 12월 5월생이니 곧 27번째 생일을 맞는 크리스천 스티븐 옐리치는 2010년 드래프트에서 마이애미 말린스가 1라운드 23번째로 뽑았을 정도로 기대주였습니다.

오른손으로 던지고 왼손을 치는 크리스천은 고3때 4할8푼8리, 졸업반 때는 4할5푼1에 82타수에서 9개의 홈런을 쳤을 정도로 기술과 파워가 뛰어나고 좀처럼 삼진을 당하지 않는 타자였습니다. 마이애미 대학을 비롯해 야구 명문대에서 전액 장학금을 제시하며 눈독을 들였지만, 말린스는 집요했습니다. 170만 달러라는 계약 보너스도 컸지만, 어차피 빅리거가 꿈인 그에게 한시라도 빨리 프로의 길을 가는 선택은 당연했습니다.


2010년 만 18세에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한 옐리치는 3년간 루키리그부터 하이 싱글A까지 거치는 동안에 한 번도 3할 이하를 친 적이 없습니다. 2011년과 2012년에는 말린스 마이너리그 최고 선수로 자체 선정됐습니다.

2013년 7월 말, 프로에 뛰어든 지 만 3년 만에 더블A에서 전격 메이저리그에 승격되는 초고속 승진을 합니다. 만 21세에 빅리거가 된 그는 전혀 밀리지 않았습니다. 62경기를 뛰며 2할8푼8리에 4홈런, 2루타 12개, 3루타 1개, 그리고 10번의 도루를 모두 성공시켰습니다.


그리고 2014시즌 팀의 1번 타자로 자리를 잡으며 144경기를 뜁니다.

2할8푼4리에 출루율 3할6푼2리, 홈런은 아직 9개에 불과했지만 2루타 20개와 3루타 6개로 중거리포를 뽐냈고, 도루는 21개로 확 늘었습니다. 전통적인 발 빠른 재간둥이형의 1번 타자임을 과시한데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수비력이었습니다. 주로 좌익수와 간혹 중견수로 뛴 옐리치는 수비율 9할9푼6리로 말린스 구단 좌익수 역대 최고 수비율을 기록하며 골드글러브를 수상합니다. 구단 사상 최연소 골드글러브이자 외야수 최초의 골드글러브 수상이라는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2015시즌을 앞두고 옐리치는 ‘영원한 말린스 맨’이 됐습니다. (적어도 그럴 것처럼 보였습니다만 늘 그렇듯 말린스의 반전은 나옵니다.)

7년간 4957만 달러의 장기계약을 체결한 것입니다. 그러나 허리 부상으로 시즌을 시작한데다 장기 계약의 부담 때문인지 5월 하순에는 타율이 1할7푼대로 떨어지는 프로 생애 첫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8월에는 무릎 부상도 있었습니다. 그러고도 126경기를 소화한 끝에 시즌 최종 타율이 정확히 3할이었으니, 옐리치가 어느 정도 퀄리티 있는 타자인지를 역으로 보여준 시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6시즌부터 옐리치는 3번 타자로 주로 기용됩니다. 그리고 그는 타순에 맞게 변신합니다.

타율은 2할9푼8리에 21홈런에 98타점을 올립니다. 전년도 7홈런 44타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파워와 공격기여도의 발전입니다. 개인 첫 ‘실버슬러거’ 수상이 부상으로 따라왔습니다. 외야 수비에서도 오수나, 지안칼로 스탠턴과 함께 좌익수뿐 아니라 중견수를 오가며 견고함을 자랑했습니다. 2017년에는 중견수로만 155경기를 모두 뛰는 가운데 18홈런 포함해 56개의 장타와 86타점, 그리고 16도루의 속도도 여전했습니다.


2017시즌 성적이 전년도에 비해 약간 떨어지긴 했지만, 만 25세의 전천후 5툴 플레이어인 옐리치는 오랜 기간 말린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최악의 구단 운영으로 악명 높은 말린스는 작년 겨울 주전급들을 모두 팔아치우기 시작했고, ‘미래의 기둥’ 옐리치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지난 1월25일 옐리치는 전격적으로 밀워키 유니폼을 입게 됩니다. 루이스 브린슨, 이산 디아스, 몬테 해리슨, 조던 야마모토 등 4명의 유망주가 말린스로 갔습니다. 결과적으로 옐리치에게 이 트레이드는 분위기 전환을 위한 최고의 한 수가 됐습니다.



옐리치는 2018시즌 전반기에만 .292-11홈런-43타점-12도루로 새로운 시작을 자축하며 생애 첫 올스타전 출전을 이룹니다. 맷 켐프에 이어 좌익수 출전한 그는 홈런도 한 방 쳤습니다.

그리고 후반기는 ‘슈퍼스타 크리스천 옐리치’의 탄생을 알리는 파티의 장이었습니다. 256타수로 전반기 대비 62타수가 적었음에도 옐리치는 3할6푼7리의 타율에 25홈런 67타점이라는 어마어마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8월 29일 신시내티전에서는 사이클링 히트를 포함 6안타 경기를 했습니다. 9월 2일 워싱턴을 상대로 생애 첫 만루포를 터뜨리더니 9월 17일에는 신시내티를 상대로 또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합니다. 한 시즌에 두 번의 ‘힛 포 더 사이클’은 통산 5번째인데, 같은 팀을 상대로 두 번 기록한 것은 사상 처음이었습니다.


옐리치의 2018시즌 성적은 정말 화려합니다.

타자에게 꿈의 라인인 300-400-500을 기록했습니다. 타율 .326/ 출루율 .402/ 장타율 .598의 기록과 함께 36홈런과 110타점을 올렸습니다. 밀워키 사상 최초의 타격왕을 차지했을 뿐 아니라, 매년 NL 최고의 타자가 수상하는 ‘행크애런 상’도 그의 몫이었습니다. (AL MVP 무키 베츠도 이 상은 동료 J. D. 마르티네스에게 밀렸습니다.) 한 표가 모자라(사이영상을 받은 디그롬이 한 표를 받았습니다.) 전원일치 MVP에 실패했지만 2위인 컵스 하비에르 바에스와는 득표에서 415-250의 압도적 차이를 보였습니다. 생애 두 번째 실버슬러거도 받았습니다.


마이애미에서 골드글러브를 수상하고 어머니 알레시아와 함께. 옐리치는 스포츠 집안 출신이며 동생 콜린도 애틀랜타 마이너 포수입니다. <옐리치 SNS> 

옐리치는 스포츠 집안 출신이자, ‘멜팅 팟(melting pot-도가니, (비유) 미국(여러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곳)’이라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대표할 정도의 배경을 지녔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세르비아 출신 이민자의 후손이고 외할아버지는 일본인 이민자입니다. 삼촌 크리스 옐리치는 UCLA의 풋볼 선수였고, 로즈보울에 두 차례나 출전했습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삼촌은 현재도 사용되는 LA 램즈의 로고를 디자인하기도 했고, 덴버 브롱코스의 단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외증조할아버지 프레드 게르키는 프로풋볼 팀 LA 램스에서 뛰었을 뿐 아니라 명예의 전당 멤버입니다.

옐리치는 남동생이 둘 있는데 어려서부터 형만큼이나 야구에 재능을 보인 콜린은 UNLV 대학에서 포수로 뛰다 2015년 애틀랜타에 드래프트됐습니다. 막내 캐머론은 해병대로 복무 중입니다.


홈런 2개, 타점 1개가 밀려 이 부분 1위에 오르지 못하면서 81년만의 NL 타격 3관왕에 아쉽게 실패한 옐리치. 그러나 20대 중반인 그는 앞으로 몇 년간 상승세를 탈 것으로 기대를 모읍니다.

만 26세의 무키 베츠와 만 27세가 되는 크리스천 옐리치가 양대 리그 MVP를 차지한 MLB의 미래는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이 기사는 minkiza.com, ESPN.com, MLB.com, baseballreference.com, fangraphs baseball, Wikipedia, The Athletic, Bleacher Report 등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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