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송광민의 2군행과 김태균의 결승타

조회수 2018. 10. 23. 0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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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웃 1개가 남았다. 하지만 쉽지 않다. 승리는 결코 호락호락하게 안기지 않는다.

4구째가 빠졌다. 먼쪽에 높았다. 카운트는 3-1이 됐다. 타석의 제리 샌즈가 고개를 끄덕인다. 얼핏 대기 타석이 시야에 잡힌다. 홈런 43개를 친 4번 타자다. 볼넷이면 1, 2루가 된다. 그럼 승부는 정말로 모르는 일이다. 그런 상상에 홈 팀 덕아웃은 활기가 돈다. 지고 있는 팀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마운드는 정우람이다. 최고의 마무리도 어쩔 수 없다. 후달리는 눈치가 역력하다. 다음 공이 즉각 나올 수 없다. 괜한 견제구 하나가 1루로 향했다. 머뭇거림이다. 그런 광경을 지켜보는 원정 팀 감독은 몹시 어둡다. 까칠한 수염이 왠지 피곤해 보인다. 주황색 응원단이 두 손을 가슴에 모은다.

5구째. 141㎞가 끝에 걸쳤다. 가까스로 구심의 판정을 얻어냈다. 공 하나에 고척돔이 술렁인다. SBS TV 중계 카메라가 한용덕 감독을 클로즈업한다. 안 그런 척 숨긴다. 하지만 불안감은 어쩔 수 없다. 눈자위가 불그레하다. 마음 약한 팬들은 눈을 가린다.

어쩔 수 없는 6구째가 투수의 손을 떠났다. 143㎞가 또다시 외곽을 팠다. 배트가 헛돌았다. 주황색들은 환호를, 버건디는 탄식을 쏟아낸다.

원정 팀 덕아웃도 마찬가지다. 길고, 커다란 한숨이 터졌다. 마치 끊어진 숨을 되찾은 것 같다. 코치들이 감독 주변으로 모인다. 하나 둘 모자를 벗는다. 수고의 악수를 나눈다. 장종훈 코치의 하얗게 센 머리가 얼핏 스친다. 송진우 코치도 숱이 휑하다. 세월과 승부의 무게가 안쓰러울 따름이다.

                                             SBS TV 중계 화면

계속 굳어있었던 한 감독의 얼굴

어제(22일) 3차전은 힘겨웠다. 이긴 쪽도, 진 쪽도 마찬가지다. 9회 말 끝나는 상황이 상징적이었다. 마치 경기 전체를 요약한 것 같다. 실수와 헛점이 엇갈렸다. 힘의 차이도 엇비슷했다. 그런 가운데 밀고 당기기가 치열했다. 결국 승자와 패자는 아주 작은 차이에서 갈렸다.

막판에 몰린 쪽은 다급함이 눈에 보였다. 허둥거렸다. 자주 넘어졌다. 악송구에, 폭투에, 실책이 줄을 이었다. 이긴 것이 용할 정도다.

선수들은 그렇다치자. 정작 이상했던 건 벤치였다. 투수 교체 타이밍에도 물음표가 많았다. 공격 작전도 그렇다. 강약의 조절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중반 찬스 때마다 강공 일변도였다. 이순철 해설위원은 이견을 보였다. 1점을 내는 작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번트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지향하는 스타일과 원칙의 영역일 것이다. 그럼에도 9회 초 이성열 타석 때 번트 작전은 동의하기 어렵다. 내둥 안하던 플레이를, 스몰볼에 익숙치 않은 타자에게 지시했다. 뭔가 우격다짐 느낌이다. 이건 시즌 때 보였던 야구와 거리가 한참 멀다.

사실은 처음부터 그랬다. 준PO 1차전부터다. 한 감독은 영 평소같지 않았다. 표정부터 달랐다. 특유의 느긋함은 오간데 없었다. 자신감도, 여유도 찾을 수 없다.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초짜’라는 그런가? 아니다. 그런 건 막연한 일반론이다. 그런데서 이유를 찾고 싶지는 않다. 나름대로 수석 코치로 큰 게임도 제법 치르지 않았나.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상황 탓이리라. 막판까지 순위 경쟁이 치열했다. 쫓아가는 길은 멀었다. 반대로 쫓아오는 적은 바로 등 뒤였다. 피 말리는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게다가 11년 만의 가을 야구 아닌가. 팬들의 기대치가 하늘을 찔렀다. 그룹 회장이 장미꽃까지 돌렸다. 부담감이 천근만근으로 짓눌렀을 것이다.

과감한 조치는 그만큼 감독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물론 그걸로는 부족하다. 충분한 설명이 아니다. 그 정도야 그 쪽 세계에서 흔한 일 아닌가.

다른 뭔가가 있다고 믿는다. 그게 뭘까. <…구라다>는 다른 원인 하나를 제시한다. 어쩌면 생뚱맞은 얘기처럼 들릴 지 모른다. 바로 ‘송광민의 2군행’이다.

정규 시즌 끝 무렵이었다. 전격적인 인사조치가 이뤄졌다. 송광민의 2군행이었다. 다른 팀 같으면 컨디션 난조나, 부상 같은 이유를 둘러댔을 것이다. 하지만 이글스는 직구를 던졌다. ‘팀이 원하는 방향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고 분명하게 적시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사태는 수습됐다. ‘대승적인 차원’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용서를’ 같은 문구들이 등장했다.

한가지 정리하자. <…구라다>는 사건 자체에 대한 해석에는 관심이 없다. 인사권자인 감독의 당연한 권한이다. 필요하면 제 아무리 간판 스타도 조치하는 게 맞다. 기강과 팀워크를 위해서라면 과감해져야 한다. 물론 수습도 잘 됐다. 당사자가 수긍했고, 반성의 자세도 보였다. 일벌백계로 영을 세웠다.

그러나 살펴야 할 게 있다. 타이밍이다. 시즌 초ㆍ중반이라면 얼마든 지 그럴 수 있다. 긴 안목으로 볼 때 적절한 조치가 될 것이다. 하지만 막판이었다. 대사를 코 앞에 둔 시점이었다. 극단적인 조치가 미칠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때였다.

결코 가벼지 않은 사안이었다. 중심 타자를 중요한 시점에 제외시켰다. 그것도 태도 문제라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옳고/그름, 적설성 여부는 나중 얘기다. 정작 중요한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이 감독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밀어붙인 인사권자에게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단기전 큰 승부를 앞둔 때였다. 무엇보다 집중력이 필요하다. 잡스러움은 하나라도 줄여야 한다. 준PO가 시작될 무렵을 더듬어보자. 사람들의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는 ‘과연 한 감독이 송광민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것이었다. 그건 그만큼 한 감독 자신에게 부담감과 불편함으로 작용할 여지로 남게 된다.

덕아웃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활력으로 넘쳐야 할 곳이다. 선수들 전체가 화이팅을 외쳐도 모자랄 판이다. 엄격함도 좋지만, 진취성과 활기가 가득할 시기다. 그런 시기에 서릿발 같은 엄중함은 어울리지 않는다.

추상같은 엄정함, 그리고 상황을 고려한 유연함

송광민 문제의 본질은 따로 있다. 고참들과 형성된 ‘편치 않은 관계’다. 한 감독 부임 이후 줄곧 계속된 수군거림의 주제다. 때문에 김태균의 적시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 역시 준PO를 벤치에서 출발했다. 1차전 때 대타로 한 번 나선 게 고작이다. 5회 2사 만루에 나가 3구 삼진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3차전에는 스타팅으로 기용됐다. 5번 지명타자 자리에 들어갔다. 첫 타석 안타는 방향이 좋았다치자. 9회 2루타는 엄청난 한 방이었다. 직전에 이성열이 보내기 번트를 실패했다. 선행 주자를 아웃시키며 흐름이 넘어가던 상황이었다. 그걸 벼락같은 초구 공략으로 한방에 해결해버렸다.

이글스 출신이 활약하는 다저스도 바쁜 가을을 보내고 있다. 그들이 얼마전 치른 챔피언 시리즈였다. 7차전을 결정짓는 장면이 있었다. 부진하던 야시엘 푸이그의 3점 홈런이다.

시즌 막판이었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그에 대해 못마땅함을 숨기지 않았다. 쓸 데 없는 주루플레이로 경기를 망쳤다는 얘기였다. 그렇다고 어떤 ‘조치’까지는 가지 않았다. 다만 출장 횟수를 확 줄여버렸다. 간간이 대타나 기용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7차전 때 선발 명단에 포함시켰다. 결국 대형 사고를 치게 만들었다.

물론 로버츠 감독이 잘했고, 한 감독은 잘못했다는 뜻이 아니다. 푸이그를 김태균, 송광민과 비교하자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인사, 조직 관리에 대한 얘기다.

때로는 추상같아야 하지만, 때로는 유연함도 필요하다. 잘못에 대한 반응이 화냄, 나무람, 징계만은 아닐 것이다. 강약이 있어야 하고, 상황을 고려하는 다채로움이 필요하다. 또 리더의 잘못된 결정을 모니터링할 시스템도 있어야 한다.

1, 2차전을 보고 이 얘기를 하려했다. 그러나 적절한 시기가 아닌 것 같았다. 3차전에 김태균의 결승타가 나왔다. 이제는 한 감독이나 이글스가 전환점을 통과했으리라 기대한다. 그래서 더 좋은 시리즈를 팬들에게 선사할 것으로 믿는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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