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비아냥과 마주서다..류현진과 타이거 우즈

조회수 2018. 9. 2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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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홀이다. “18번으로 향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진짜로 우승할 수도 있겠구나. 갑자기 울컥했다.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봐 아직 OB가 날 수 있다고.’ 스스로를 계속 억눌러야했다.”

어려운 벙커샷이었다. 다행히 핀에 붙였다. 파 세이브로 마무리했다. 순간 어마어마한 함성이 터져나왔다. 그린 주변에는 몰려있던 수 천 명의 인파가 쏟아낸 것이었다.

함께 라운딩했던 로리 매킬로이는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커다란 환호 속에 있다는 게 정말로 멋진 경험이었다.” 이미 경기를 끝낸 선수들은 아무도 돌아가지 않았다. 모두가 클럽하우스에 남아 빨간 티셔츠의 컴백을 지켜봤다. 그리고 뜨겁게 환영했다.

“너무 기쁘고 자랑스럽다. 그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매우 힘겹게 노력했음을 잘 안다.” (잭 니클라우스)

“이 장면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귀환이다.” (토미 플리트우드)

“정말 믿을 수 없다. 소름 돋는다” (미셸 위)

“타이거의 우승 장면을 목격한 것 자체로 대단했다. 그 말 밖에 못하겠다.” (빌리 호셜)

“GOAT (Greatest of all time).” (저스틴 로즈)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올해 초만 해도 우승은 말도 안되는 얘기였다.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 같은 것이었다.” 무려 79번이나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과거는 이미 까마득했다. 세계 랭킹은 1000등 밖으로 아득하게 밀려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스윙이 돌아왔다.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생각이 어렴풋이 들기 시작했다.”

빨간 티셔츠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마지막 퍼트를 앞두고는 이제 우승이라는 걸 알았다. 눈물이 살짝 고였다. 많은 일을 겪은 후에 결국 다시 해냈다. 아직도 믿을 수 없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다. 그들이 없었다면 결코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이봐, 푸이그. 자네 타율은 얼마나 되는가?

한국이 한창 차례상 준비로 바쁠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어제 (24일) 아침 녘이다. 그 시간 온 미국, 어쩌면 전 세계의 눈길은 한 곳으로 쏠렸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이스트 레이크 골프장이었다. 5년 여만에 돌아온 황제의 모습이 클로즈업 됐다. 열렬한 환호, 뜨거운 함성이 세상을 가득 메웠다.

거의 비슷한 무렵이다. 미국 서부 시간으로는 오후 3~4시 쯤이다. LA는 샤베스 라빈(다저 스타디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푸른 옷의 인파가 홈 팀을 향해 열렬한 갈채를 터트렸다. 대상은 99번이었다.

모든 게 완벽했다. 무엇보다 다트 던지기가 압권이었다. 거의 생활의 달인 수준이었다. 도대체 가운데로 몰리는 게 없었다. 탄착점은 한결 같았다. 보더 라인 주변으로 빼곡한 점들이 형성됐다. 들락날락. 휘어지고, 떨어졌다. 현란한 줄타기였다. 타자들은 허둥거렸다. 타이밍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감독은 또 그 소릴한다. “그는 역시 빅 게임 피처다. 등판할 때마다 늘 중요한 역할을 맡아줬다.” 매번 뻔한 얘기다.

실속 있는 멘트가 필요하다. 누군가 물었다. ‘그럼 포스트시즌에도 선발로?’. 정작 필요한 질문에는 애매하다. “좋은 대화를 해볼 것이다. 그는 게임에서 보여주고 있다. 할 일을 아주 잘하고 있다.” 아주 뜬구름을 잡는다. 누가 봐도 뻔한 결론 아닌가. 속 시원하면 좋으련만. 요리 빠지고, 조리 뺀다.

던지기야 그렇다치자. 본래 특기 아닌가. 문제는 이날이 복수+복수 전공이었다는 점이다. 잡기, 달리기, 치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날아다녔다.

“앞선 2개의 안타는 모두 빠른 공을 쳤다. 그래서 세번째 타석 때는 변화구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투수가 포수 사인에 고개를 흔들더라. 직감적으로 또 직구를 던지겠구나라고 느꼈다. 결국 휘둘렀는 데 안타가 됐다.” 세상에 눈치까지 장난 아니다. 어느 기자가 감독에게 그렇게 농을 쳤다. “이제 오른쪽 대타 고민은 안해도 되겠다.”

덕아웃에 돌아오니 동료들이 난리다. 특히나 입단 동기 쿠바 친구가 유난스럽다. 음료수 셔틀에, 수건 부채, 땀닦기까지…. 원스톱 서비스가 제공된다. 3안타 주인공이 느긋하게 즐기며 이런 표정이 된다. ‘(푸)이그야, 넌 타율이 얼마니?’ 참고로 쿠바산 외야수는 .272, 한국산 투수는 .292의 BA(Batting Average)다.

사타구니 부상과 싸구려 상상력

타이거 우즈는 부상을 달고 살았다. 왼쪽 무릎은 십자 인대가 없는 상태로 US 오픈(2008년)을 치렀다. 그것도 연장전까지 91홀이나 돌아야했다. 우승은 했지만 시즌을 그걸로 접고 말았다. 수술대에 올랐지만 이후 10년간 메이저 대회 타이틀에서는 번번이 탈락했다.

문제는 무릎으로 끝나지 않았다. 허리에도 영향을 미쳤다. 무려 4번의 수술이 필요했다. 2014년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심지어 2016년 말부터 한동안은 걷기도 힘든 지경이었다. “터널의 끝을 모르겠다. 골프는 전혀 할 수 없다. 심지어 침대에서 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몸이 무너져내리자, 정신도 허물어졌다. 골퍼들이 불치병으로 여기는 입스(YIPS)가 찾아왔다. 장기인 칩샷 때 번번이 뒤땅을 때렸다. 선수 생활은 이제 끝났다. 모두가 그렇게 여겼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질 건 없다. 온 세상이 다 아는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이다. 10년이 다 됐지만, 기억은 또렷하다. 싸늘한 멸시의 대상일 뿐이다. PC가 털려 나체 사진도 돌았다. 취한 채 운전하다가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눈이 풀린 머그샷(범인 식별용 사진)도 인터넷에 나돌았다.

나중에 밝혀졌다. 술이 아닌 약이었다고. 진통제가 없으면 살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괴물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멀쩡한 건 처음 2년 뿐이었다. 그 다음 3년은 DL의 단골 고객이었다. 코치보다 트레이너, 의사와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통째로 날린 시즌도 있었다.

간신히 길을 찾은 게 올해였다. 그나마도 초반에 잠시였다. 덜컥. 악령이 다시 찾아왔다. 하필이면 사타구니였다. 눈 뜨고 보기 힘든 댓글들이 달렸다. 원색적이고, 저렴하기 짝이 없는 상상력들이 사방에서 판을 쳤다.

“오로지 내 자신을 위해서만 공을 치겠다”

우즈는 여전히 돈이 많다. 상상을 초월한 부자다. 아무리 이런 저런 이유로 재산이 나눠졌대도 마찬가지다. 평생 돈걱정은 남의 일일 뿐이다. 할 일도 많다. 굳이 골프가 아니라도 찾는 곳이 수두룩하다. 용품 마케팅, 골프장 디자인, 요식업 등으로 벌려놓은 사업도 무한대 규모다.

나이나 젊은가? 새파란 20대들이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어딜 40대 늙다리가 발 디딜 틈이라도 있겠나. 하지만 욱신거리는 무릎과, 찌르는 허리를 참아냈다. 그렇게 다시 클럽을 잡았다.

수술실에 누웠을 때였다. 한가지를 결심했다. “만약 다시 필드에 나간다면…. 절대 아무를 위해서도 골프를 치지 않겠다. 내 가족을 위해서도, 에이전트를 위해서도, 스폰서를 위해서도 스윙하지 않겠다. 오로지 내 자신을 위해서만 공을 치겠다.”

5월 초. 전력에서 이탈했다. 그로부터 3개월하고도 2주를 쉬어야 했다. 구단은 그를 애리조나로 보냈다. 아마도 인력 탓이리라. LA에는 재활을 돌봐줄 스태프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시다시피 뜨거운 사막이다. 여름 애리조나는 살인적이다. 화씨 120도(섭씨 49도)를 넘는 날도 있다. 110도(섭씨 43도)는 기본이다. 아무리 실외 활동을 최소화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수시로 인내력의 한계와 싸워야한다. 게다가 LA와는 영 다르다. 한국 사람에게 무료하고, 불편하기 그지없다.

그곳을 버텨냈다. 묵묵하게 시간을 견뎌냈다.

어쩌면 그런 마음도 들었을 지 모른다. ‘여차하면. 한국으로 가면 되지 뭘.’  왜 아니겠나. 굳이 낯 설고, 물 선 데서 고생할 필요가 있나. 조금 덜 받더라도 맘 편한 게 최고 아닌가. 두 팔 벌려 반겨줄 이들도 많을 것 같다. 배짱 맞는 선배, 후배와 함께라면 하루하루가 꿀맛 아닐까.

무엇보다 미안함이다. 가족들에 대한 안쓰러움이다. 괜한 댓글과 삐딱한 시선, 못내 신경 쓰인다. 차라리 짐 싸서 돌아가면 그럴 일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견뎌냈다. 놀림, 비아냥, 수군거림. 그것들과 마주섰다. 그리고 얻어냈다. 갈채와 환호, 그리고 그 땅에 다시 섬을.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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