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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훈기의 스페셜야구] 야구 판타지의 주인공 데이빗 보티의 교훈

민훈기 입력 2018.08.18. 11:53 수정 2018.08.18.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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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말 투아웃 끝내기 만루포와 함께 시카고 컵스의 신데델라가 된 루키 데이빗 보티

야구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꿈꾸는 순간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도 누구나 모두 한 번쯤은 꾸어보는 꿈이라면 바로 ‘9회말 투아웃 끝내기 홈런’일 겁니다. 그런데 그 장면을 더욱 극적으로 각색하면 9회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크에 몰린 후에 역전 끝내기 만루포를 터뜨리는 것입니다. 그것도 대타로 나서.


소설이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너무 각색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이런 장면이 MLB의 한 경기에서 최근 실제로 터져 화제입니다. 그것도 9회말 0-3으로 뒤진 가운데 투아웃 만루에서 대타로 나온 루키 타자가 볼카운트 2-2에서 가운데 담장을 넘어가는 극적인 끝내기 홈런을 터뜨린 것입니다.


루키 보티는 대타로 나선 9회말 투아웃에 끝내기 만루포를 터뜨리는 동화같은 스토리를 장식했습니다. @CHC SNS


한국 시간 13일 미국 시카고의 리글리필드.


이날은 이적생 좌완 에이스 콜 해멀스의 컵스 데뷔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상대는 워싱턴 내셔널스의 우완 에이스 맥스 슈어저가 선발로 나선 최고의 빅매치. 월드시리즈 MVP 출신의 콜과 사이영상 3번 수상자 슈어저의 대결은 명불허전. 2015년 필리스 시절 이곳에서 노히터를 기록한 적이 있는 해멀스는 이날 리글리필드를 가득 메운 3만6490의, MLB에서 가장 열성적인 팬들 앞에서 7이닝 동안 딱 1피안타. 볼넷 1개에 9개의 탈삼진을 뽑으며 희생플라이로 내준 1실점으로 역투했습니다.

그러나 슈어저도 정말 잘 던졌습니다. 역시 7이닝 3피안타에 볼넷 1개, 그리고 삼진을 11개나 잡은 슈어저는 아예 실점이 없었습니다. 컵스 구원 투수 에드워즈 주니어가 2점을 더 빼앗기며 홈팀은 0-3으로 뒤진 채 9회말 마지막 공격에 나섰습니다.


워싱턴은 우완 강속구 베테랑 라이언 매드슨을 마무리로 올렸습니다.

선두 타자 조브리스트는 1루수 땅볼 아웃. 그런데 헤이워드의 빗맞은 땅볼이 수비 보강을 위해 교체된 2루수 디포 앞으로 굴렀습니다. 쉽지 않은 플레이였지만 허둥대다 내야 안타를 내줍니다. 매드슨은 다음 타자 알모라 주니어의 몸을 맞춰 주자는 2명. 그러나 까다로운 좌타자 슈와버를 3루 파울플라이 아웃으로 잡고 투아웃이 됐습니다. 그런데 매드슨이 콘트레라스의 몸을 맞추면서 투아웃 만루의 무대가 만들어졌습니다.


빅리그에서 아마도 가장 창조적인 사고의 소유자인 조 매든 감독은 여기서 루키 카드를 뽑아들었습니다. 25세의 우타자 데이빗 보트가 투수 저스틴 윌슨 타석에 투입됐습니다.

초구 파울볼, 2구 볼, 3구 스트라이크, 4구 볼이 되면서 볼카운트 2-2. 매드슨은 5구째 다시 한 번 강속구 승부를 걸었고 153km의 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존의 낮은 코스를 예리하게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보티는 무릎을 살짝 꺾으며 기다렸다는 듯이 이 공을 맞이했고, 딱! 하는 파열음이 나는 순간 모두가 직감했습니다. 올 시즌 가장 극적인 드라마가 시카고의 일요일 밤에 리클리필드에서 막 완성되고 있다는 것을.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진 그 백구는 다이아몬드를 딱 절반으로 가르며 134.7미터를 비행해 담쟁이덩굴이 우거진 외야 담장을 훌쩍 넘어가 버렸습니다.


매 타석 상세 기록이 정리되기 시작한 1974년 이후 25번째 끝내기 만루 홈런이었고, 투아웃에 터진 15번째 만루포였습니다. 컵스 선수 중에는 3점차로 뒤진 경기를 만루포로 끝낸 마지막 타자는 1963년 8월 31일 엘리스 버튼이었습니다.

게다가 대타가 끝내기 만루포를 터뜨린 것은 1925년 이후 딱 6번째였고, 투아웃에 역전 끝내 만루포를 친 것은 3번째였습니다. 컵스 팬에게는 55년 만에 터진 극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덧붙여서 대타로 끝내기 만루포를 친 마지막 컵스 타자는 59년전인 1959년 5월 12일 밀워키 전에서 얼 에이버릴이었습니다. 

26개의 아웃카운트가 이미 소진됐고 스트라이크 2에 몰린 상황에서 보티는 그 한 번의 스윙으로 0-3이던 경기를 4-3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만 25세의 루키 내야수 데이빗 보티가 빅리그에 도달한 과정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느낍니다. 그 느낌은 개개인에 따라 온도차나 감정차가 있겠지만 소개하고 싶은 부분이 많습니다.


빅리그 30경기 남짓 뛴 가운데 보티는 컵스에서 사랑받는 선수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의 도전은 깊은 느낌을 줍니다. @CHC SNS


만 25세의 루키 내야수 데이빗 보티가 빅리그에 도달한 과정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느낍니다. 그 느낌은 개개인에 따라 온도차나 감동차가 있겠지만 소개하고 싶은 부분이 많습니다.

▶ 포기란 없다

현 컵스 로스터에는 크리스 브라이언트, 하비에르 바에스, 알버트 알로마 주니어, 카일 슈와버, 이안 햅 등 팀에서 1라운드에 뽑은 선수들이 즐비합니다. 에디슨 러셀과 제이슨 헤이워드도 다른 팀에서 1라운드에 뽑힌 선수들입니다.

데이빗 보티는 2012년 엡스타인 사장이 처음 팀을 맡은 그 해 컵스가 드래프트했습니다. 18라운드 전체 554번째로 선택했습니다. 고교 졸업 후 아무 팀도 그를 뽑지 않았고, 2년제 대학에 테스트를 받고 야구부에 겨우 들어가고, 대학을 옮겨가면서까지 야구를 계속했습니다. 그래서 겨우 554번째로 뽑혀 프로선수가 됐습니다. 그가 받은 계약금은 단 10만 달러, 그러나 추후 대학 졸업때까지의 장학금을 조건으로 달았습니다. 프로가 됐지만 4년차인 2016년 시즌이 끝났을 때까지도 보티는 컵스 마이너 유망주 랭킹 26위에 머물렀습니다. 팀내에서 26위 정도면 관계자들도 '누구지?' 하는 정도의 선수. 어디서나 주목받지 못한 보티였지만 빅리거가 되고 말겠다는 의지로 절대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매든 감독은 ‘누구도 그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는 스스로를 입증해야 했다. 그렇지만 보티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 노력 없는 의지는 무의미

그의 아버지 봅 보티는 콜로라도 주에서 명성이 높은 고교 야구감독입니다. 형 대니 보트도 일찍부터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 아버지 밑에서 코치를 하고 있습니다. 고교 시절 데이빗의 감독과 코치는 바로 아버지와 형이었습니다.

이들 부자(父子)가 막내 데이빗에게 늘 하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뭔가 이뤄내는 유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천재적인 괴짜이거나 아니면 끝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다.’ 보티는 “내가 천재성이 없다는 것은 진즉에 알았다. 노력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다짐했다. '매일 조금씩만 더 나은 선수가 되자'고. 항상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다려보자고.”


그의 노력을 대표하는 것은 수비연습입니다.

올 스프링 캠프에서 컵스 마이너리그 내야 코디네이터 제레미 파렐은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처음 보는 선수가 배팅케이지 안에서 타격 머신의 다리를 빼서 땅바닥에 내려놓고 날아오는 공을 잡아내는 수비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고교 때부터 겨울이 길고 추운 콜로라도의 오프 시즌에 보티는 실내 타격장에서 그렇게 수비연습을 했고, 프로에 와서도 그 훈련을 계속했습니다. 보티는 “운동장에서 100개 정도의 수비 연습을 하면 좀 지치는데 실내에서는 300개를 해도 끄떡없다.”고 웃었답니다. 파렐은 이 연습 장면을 비디오로 찍었습니다.


명예의 전당 멤버인 양키즈의 전설 데릭 지터는 프로 루키 시즌에 무려 56개의 실책을 범한 수비가 엉망인 선수였습니다.

그를 최고의 유격수로 키워내 명성을 얻은 브라이언 버터필드 코치는 올해부터 컵스 3루 코치로 부임했는데, 보티의 훈련 비디오를 보고는 한 눈에 반했습니다. 그는 “내가 본 선수 중에 가장 열심히 노력하고, 가장 의지력이 강한 선수다. 그는 ‘짐승’이다.”라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버터필드 코치는 보티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컵스 올스타 내야수들을 모아 놓고 루키 보티의 실내 수비 연습 광경을 시연케 하게도 했습니다.

보티는 올 시즌 부상 선수를 대신 해 빅리그에 데뷔한 후 2루수, 3루수, 1루수 등을 번갈아 맡았습니다. 그리고 보고서에 기록된 '평균 수비 정도'라는 평가를 완전히 깨는 매끄러운 수비력을 과시하며 팀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 더 나은 선수가 되기 위한 변화

2016 시즌 하이 싱글A에서 시작한 보티는 더블A로 승격했고, 마지막에는 트리플A 맛도 봤습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여전히 마이너 유망주 26위에 그친 무명선수였습니다.

워싱턴 전 극적인 역전 끝내기 만루포가 터진 후 엡스타인 사장은 특별히 긴 시간을 언론에 할애하며 보티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엡스타인은 “2017년 올스타전에 끝나고 팀 타격 코디네이터와 코치가 보티를 만났다. 땅볼을 많이 치는 타격에서 뜬공을 치는 타격으로 전환이 주안점이었다. 우리는 보티의 능력과 특히 그의 성실함과 노력이라면 새로운 시도로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훨씬 강하게 변신했다.”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보티는 불과 2주 만에 거포 유망주로 떠올랐습니다. (전년도 7홈런에서 2017년 14홈런, 2018시즌 AAA에서는 61경기 만에 13홈런+빅리그 3홈런)


컵스는 2017시즌이 끝나자 보티를 40인 로스터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롭게 찾아낸 유망주를 타 팀에 빼앗길 수는 없었으니까요.



▶ 상대를 이기기 위한 공부

빅리그 13년차 베테랑 구원 투수 매드슨을 상대로 만루 홈런을 터뜨린 것은 행운이기도 했지만 준비된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보티는 타석에 들어서며 떨어지는 움직임이 심한 매드슨의 싱킹 패스트볼 하나만 노리겠다고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3구째 바로 그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파고드는 것을 노려봤습니다. 바로 이 공이 다시 들어올 테고, 그걸 꼭 맞춰내겠다는 계산을 했습니다. 그리고 5구째 정말 잘 던진 싱킹 패스트볼을 담장 밖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타격 코치 칠리 데이비스는 “보티는 늘 가장 먼저 타격 훈련장에 나온다. 그리고 정말 훈련도 열심히 많이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해보면 왜 훈련을 하는지 알고 목적을 가지고 한다는 점이다.”라고 놀라워합니다. 그리고 보티가 상대 선발을 물론이고 구원 투수들에 대해서도 꼼꼼히 메모를 하는 것을 보고도 놀랐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매드슨의 위력적인 공을 쳐 담장을 넘긴 것이 그저 행운이 아니라는 겁니다.


버터필드 코치는 스프링 캠프 내내 아침 6시30분이 ‘내야수 대학’을 개최했습니다.

이론적으로 선수들에게 내야수의 모든 것을 전수하려는 목적으로 매일 열린 이 수업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선수는 보티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6시15분에 나와 교실의 등을 켜는 것도 그의 몫이었습니다.


▶ 성공이 무엇인가?

보티는 올 시즌에만 5번이나 마이너와 빅리그를 오가고 있습니다.

조만간 브라이언트가 어깨 부상에서 돌아오면 또 한 자리를 비워야 하는데, 어쩌면 마이너 옵션이 많이 남은 그가 다시 내려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매든 감독은 아마도 빅리그에 보티의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했습니다.) 스프링 캠프가 끝났을 때도 그의 자리를 마이너리그였습니다.


그러나 7월27일 애리조나전 9회에 때린 2점 동점 홈런이나 이번의 끝내기 만루포가 데이빗 보티의 빅리그 마지막 홈런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의지와 성실함과 노력과 변신과 공부가 어우러져 그는 이미 빅리그에서 인정받는 선수가 됐기 때문입니다. 루키가 빅리그 팀의 일원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참 많은 과정과 시간과 능력 발휘가 필요한데 보티는 36경기 만에 컵스에서 동료들과 팬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선수 중 하나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minkiza.com, ESPN.com, MLB.com, baseballreference.com, fangraphs baseball, Wikipedia 등을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