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구라칠 때 절대 아레나도 눈을 보지마라 - feat.짝귀

조회수 2018. 9. 19. 13:1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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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회 세번째 타석. 몸쪽 붙는 직구에 아레나도가 마운드를 쏘아보고 있다.     mlb.tv 화면

“그는 언제나 빅 게임 피처다.” 올림픽 결승전도 못봤으면서…. 어쨌든 알아주니 다행이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의 입이 귀에 걸렸다. 걱정이다. 저러다 침이 모두 마를 지경이다. 물이라도 좀 마시지. 곧 자정이다. 늦은 시간이지만 피곤하지도 않은가 보다.

매일 하는 수두룩한 게임 중 하나였다. 올해만 벌써 151번째다. 그러나 모두 같은 게 아니다. 어제(한국시간 18일)는 어쩌면 그 중에 가장 중요한 날이었는 지도 모른다. 결정적인 경기를 이겼다. 그것도 아주 편안하게~.

평소라면 징글징글이다. 그러나 이런 날은 기자들도 반갑다. 피곤한 기색도 없다. 이긴 감독은 게임 얘기에 밤이라도 샐 기세다. 특히 선발 투수가 예뻐 죽는다. 함박 웃음에, 칭찬이 쏟아진다.

“오늘 기가 막힌 제구를 보여줬다. 구위도 좋았다. 중요한 경기에서 이렇게 던져주니 정말 기분 좋다. 완벽한 경기였다.” 1절로는 부족하다. 2절이 시작됐다. “좌우 관계없이 타자를 잘 잡을 수 있는 투수다. 그에 대한 큰 신뢰를 갖고 있다. 그는 그럴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그리고 멋지게 한 마디 보탰다. “그는 심장의 박동수를 조절할 줄 아는 투수다.” 큰 게임에도 끄떡없다는 칭찬이었다. 그러나 아뿔사.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안되는데. 로키산, 심장, 박동수…. 그 동네에서는 금기어나 다름없다. 그래도 뭐, 팩트는 팩트다.

빗맞은 안타에 허탈함도

기칠운삼(技七運三)은 진리다. 실력만으로는 빠듯하다. 운이 따라줘야 쉽다. 첫 타자 찰리 블랙먼을 잡을 때부터 느낌이 왔다. ‘오늘 되는 날이구나.’ 유격수 쪽 꽤 빠른 타구였다. 그런데 매니 마차도가 있었다. 기가 막힌 핸들링이었다. 어렵게 잡아서, 총알을 쐈다. 1루수 맥시 먼스의 미트에 스트라이크가 꽂혔다.

우익수 쪽에서는 탄성이 터졌다. 야시엘 푸이그가 모자를 벗는다. 플레이에 대한 최고의 경의였다.

마운드에서도 역시 메시지가 전달됐다. 의외였다. 가벼웠다. 집게 손가락으로 잠깐 포인트 찍어주는 정도였다. 역시 빅 게임 피처는 다르다. 약간의 츤데레 기질마저 느껴진다.

우주의 기운이 몰려온다. 99번이라는 숫자 위로 행운의 조짐이 강하다. 자신감이 샘솟는다. 2사 후. 문제의 남자가 등장했다. 놀란 아레나도다.

초구가 왔다. 놀라웠다. 93마일짜리 하이 패스트볼이었다. 뭐지? 저렇게 자신 있어도 되나? 비범함이 느껴졌다.  2구째는 살짝 틀었다. 바깥쪽 커터(90마일)였다. 타자가 반응했다. 타구는 강하지 않았다. 그러나 코스가 좋았다. 마침 시프트를 펼치던 수비의 빈틈으로 굴렀다. 2루수 키케 에르난데스가 도저히 어쩔 수 없었다.

경기 후 인터뷰 때도 당시 상황에 대한 멘트가 있었다. “그때는 허탈했다. 어떻게 던져도 치는구나. 빗맞아도 안타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그랬다.”

걱정하지마라, 공은 눈보다 빠르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다. 선발 일정이 발표될 때부터였다. 과연 아레나도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모두의 걱정이었다.

통산 전적이 16타수 10안타, 상대 타율이 무려 .625나 됐다. 10안타 중에는 홈런이 3개나 포함됐다. OPS를 따지면 2.022이다. 말도 안되는 일방통행이다.

어떻게 맞설 것인가. 과연 극복이란 게 가능하기나 할까? 회의적인 시선이 가득했다.

그러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웠다. 그가 택한 것은 정공법이었다. 1회 그를 상대한 초구가 93마일짜리 패스트볼이었을 때부터 그런 의지가 강렬했다. 평소와 전혀 다른 게임 플랜을 짜고 들어갔다.

“무조건 초반에 점수를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보통은 6~7회를 막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5회까지만이라도 좋다는 각오로 임했다. 구속이 더 나왔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리고 정확했다. 이제까지 실패가 그랬다. 빙빙 돌아가봐야 피곤할 뿐이다. 결과도 별로였다. 강할 때는 강하게 맞서 싸워야한다. 이런 전술은 효과적이었다. 중반 이후 여유를 택할 수 있었다.

아레나도의 세번째 타석(6회)이 음미할만하다. 1회 내야안타, 4회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낸 뒤였다. “두번째 대결에서 아웃을 잡아낸 뒤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세번째 타석은 한결 편하게 했다.”

카운트 0-2에서 몸쪽에 빠르게 붙였다(91마일). 타자가 주춤 뒤로 물러서더니 이내 마운드 쪽을 째려본다. 그러나 투수는 시선을 받아줄 마음 없다 애꿎은 땅만 파고 있다. 이윽고 5구째. 커터(89마일)가 깊숙하게 파고든다. 낮고 예리한 각도였다. 불현듯 끌려나간 배트는 제대로 힘도 쓰지 못했다. 손잡이 쪽에 먹힌 타구는 3루수 쪽 힘없는 땅볼이었다.

영화 <타짜>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마라. 공은 눈보다 빠르니까. 먼쪽에 강하게 한 개, 다시 느리게 하나.’ 노려보는 아레나도, 짐짓 모른 체 외면하는 투수. 그리고 결정구가 들어온다. 회심의 커터다.

경상도의 짝귀가 그랬다. ‘구라칠 때 절대 상대 눈을 보지마라.’

                                                                                                영화 <타짜> 중에서

최고의 전략은 ‘준비’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명한 천적 관계가 있다. 그렉 매덕스와 토니 그윈이다. 얼마전 <…구라다>에서도 한번 언급했지만, 다시 한번 등판시켜야 한다.

매덕스는 그윈이라면 진저리를 친다. 상대 타율이 .415나 된다. 거기까지는 참을만하다. 자다가도 벌떡 깰 일이 있다. 삼진이다. 컨트롤의 마법사는 평생동안 단 한번도 그윈에게 세번째 스트라이크를 던져보지 못했다. 무려 107타석이나 만났는 데 말이다.

“숱한 타자들을 겪었죠. 그러다 보면 상상할 수 없는 시력도 경험했어요. 공의 회전을 읽어내는 건 기본이죠. 아주 작은 릴리스 포인트 차이로 구종을 알아내는 녀석들도 있어요. 최고의 기술은 속도에 변화를 주는 거예요. 인간의 눈으로 그걸 구별해내는 건 불가능하거든요. 딱 한 명, 그 X같은 토니 그윈을 빼고는 말이예요.” 열받은 마법사는 (물론 장난으로) F자 단어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매덕스는 틀렸다. 그건 ‘상상할 수 없는 시력’ 덕분이 아니다.

그윈은 원 클럽 맨이다. 평생 파드리스에서만 뛰었다. 그의 홈 구장 펫코 파크 클럽하우스에는 따로 그윈만을 위한 방이 있었다. 투수들의 VCR을 모아놓은 곳이다. 처음에는 한 구석만 차지하던 게 나중에는 사무실 하나를 통째로 써야할 정도가 됐다. 그곳에서 그는 수십, 수백번씩 테이프를 돌려보며 연구하고, 공부했다. 결국 별명이 하나 붙었다. ‘캡틴 비디오’였다.

1996년에 ESPN이 마련한 매덕스와 그윈의 인터뷰.

2014년 6월 16일이었다. 매덕스가 트윗 하나를 날렸다. ‘토니 그윈은 내가 상대한 최고의 타자였다. 그의 가족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한다.’ 54세가 된 캡틴 비디오가 세상을 떠나던 날이었다. 씹는 담배를 즐기던 그의 병명은 침샘암이었다.

그날은 월요일이었다. 다저스 구장에서도 추모 분위기 속에 경기가 열렸다. KBO리그 출신의 2년차 선발 투수가 6이닝 1실점으로 8승째를 거둔 날이다. 상대 팀은 콜로라도 로키스, 아직 아레나도라는 타자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이었다.

어제 경기 후 인터뷰도 마찬가지였다. 천적에 대한 질문이 집중됐다. 승리 투수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밝혔다. “며칠 전부터 그 선수만 생각하고 준비했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전력 분석하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쏟아부을 정도였다.” 맞다. 최고의 전략, 최강의 결정구는 바로 ‘준비’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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