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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Talk] 불꽃점화기 한화 이글스 이성열

조회수 2018. 12. 1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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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그들이 11년 만에 가을야구의 불을 지폈다. 포스트시즌 진출만으로도 환호성을 외친 팬들에게 감동의 눈물까지 흘리게 한 이가 있었다. 바로 포스트시즌 첫 승을 위해 있는 힘껏 달려준 불꽃남자, 이성열이다. 팬들에게 역전승을 안겨준 그의 불꽃뜀박질은 팬들의 심장마저 헐떡이게 했다. 지금부터 그가 어떻게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궜는지 들어보자. 파이어!

에디터 송서미 사진 한화 이글스

이성열 (10월 30일 인터뷰)

출생 1984년 7월 13일

185cm 몸무게 100kg

별명 불꽃남자, 이블성열, 뽕열, 소성열, 낮성열, 안경선배

#한화의 가을야구

11년 만에 가을 야구에 갔다. 준플레이오프를 마친 소감부터 듣고 싶다. 주장으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중간에 주장을 맡게 돼서, 리더로서 특별히 한 건 없다. 형들도 그렇고 어린 친구들도 잘 도와줬기에 좋은 성적이 나왔다.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는 사실에 대해 ‘11년 만이다’보다는 ‘오랜만이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오랜만에 한화가 가을야구를 하게 됐고, 그 속에 함께 있어 영광스럽고 감사하다.

이번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보여준 불꽃뜀박질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1루에서 홈까지 달렸는데 어떤 심정이었나.

당연히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모로 부담됐던 경기였다. 9회 번트에 실패하면서 어려운 상황이었다. 때마침 (김)태균이 형이 좋은 타구를 쳐줘서 모양새가 좋아졌다. 당연히 뛰어야 하는 상황이기에 전력을 다했다. 그 장면이 화제가 됐다는 게 조금 쑥스럽다.

4번 타자가 그렇게까지 달려준 데에 많은 팬이 감동했다. 더그아웃에서도 계속 헉헉거렸는데, 평소에도 그렇게 연습하는가.

세 베이스를 달린다는 건 솔직히 힘들다. (웃음) 어릴 때부터 몸 상태가 좋으면 빠르게 잘 뛰었기에 부담은 없었지만, 뛰고 나니 지쳤다. 야구 선수는 한 베이스를 잘 뛰는 게 중요하지만 간혹 두세 베이스를 뛰어야 하니, 미리미리 달리기 연습을 하는 편이다.

‘이성열’ 하면 ‘힘’을 떠올린다. KBO 내에서 이성열의 힘을 이길 자가 없다는 평가도 있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힘의 원천은?

옛날얘기인 것 같다. (아련) 지금은 나보다 더 엄청난 힘을 가진 선수가 많다. 힘은 타고난 부분이 있다. 체력 유지를 위해 근력 운동도 매일 한다. (보약 같은 것도 먹는지?) 요즘은 약물검사가 강화된 탓에 특별히 먹는 보약은 없다. 기본적으로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홈런을 치고 들어오면 더그아웃에서 감독님의 가슴팍을 친다. 당한(?) 감독님들의 반응은 어떤가.

좋아하시는 편이다. 이기는 경기일 때 치면 어떤 감독님도 싫어하지 않으실 거로 생각한다. 한용덕 감독님이 처음 부임했을 당시 인사만 나누고, 특별히 해주신 이야기는 없었다. ‘혹시 나를 안 좋아하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후 성적도 잘 나오고 이런 세리머니도 하면서 더 가까워졌다. 물론 아직도 좀 어렵지만, 선수가 먼저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포스트시즌 때 감독님이 특별히 주문한 것이 있는지.

없다. 그저 열심히 재미있게 즐기자고 하셨다. 믿어주셔서 그 자체로 힘이 됐다.



#한화의 이성열

올해부터 다시 안경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그 안경이 커리어하이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 같다. 특히 선구안이 좋아졌다는 평가도 있다.

안경은 눈이 불편해서 썼다. 화제가 돼서 신기하다. 사실 타율이 높을 뿐이지 기록을 보면 삼진 개수는 더 늘었다. (웃음) 물론 안경의 도움이 조금은 있는 것 같다. 이제 안경은 타석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내게 없어서는 안 되는 친구다. (시력 교정 수술 후 낮 경기 성적이 비교적 좋아서 ‘낮성열’이라는 별명도 있다) 꼭 그렇지는 않다. 낮에도 삼진을 두세 번 당할 때가 있다.

이블성열, 뽕열, 안경선배 등 별명이 많은데, 어떤 것이 가장 듣기 좋은가?

‘뽕열’이다. LG 트윈스 때부터 팬들이 조금씩 불러줬다. 뽕 맞은 것처럼 잘 친다는 의미여서 듣기 좋다.

이번 시즌 한화 좌타자 최초로 30홈런 100타점을 기록했다. 팀 내 베테랑으로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어떤 분들은 회춘했다고 말씀하시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뜻깊은 기록을 세운 것 같아 기쁘다. 35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인 만큼 부담도 있었지만, 서른 중반부터는 기량이 하락한다는 편견을 깰 수 있어 좋았다. 다른 선수들도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다’라는 마음을 갖길 바란다. 조금 더 나아가 지도자분들도 베테랑 선수들의 좋은 면을 많이 봐주시고 성적이 좋다면 계속 기용해주길 바란다.

후배 선수 중 포스트 이성열을 꼽는다면?

누군가를 지목하기가 쉽지 않다. (웃음) 혹시 싫어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최근 김민하 선수와 유독 같이 찍힌 사진이 많다. 늘 붙어 다니는 건가.

(김)민하는 한화로 오기 전부터 알던 동생이다. 워낙 착하고 성실하다. 말수가 적어 혹여나 잘 어울리지 못할까 걱정돼 더 챙겨주게 됐다. 먼저 온 사람이 챙겨주면 더 잘 적응할 거라고 생각했다.

주장의 말을 가장 잘 들어주는 선수는 누구인가?

이것 역시 지목할 수 없다. 다 너무 좋다. 누구 한 명을 꼽기 어렵다.

김태균과의 관계도 궁금하다. 4번 타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사이인데, 본인에게 그는 경쟁자인가 친구인가 혹은 그저 직장동료인가.

경쟁자도, 친구도, 직장동료도 될 수 없다. 선배로서 너무나 훌륭한 선수다. 우타자 중 300홈런, 2,000안타를 친 선수는 많지 않다. 내가 어떻게 감히 평가할 수 있나. 팀 내에서 정말 많이 배울 수 있는 선배다.



#야구선수 이성열

프로선수로 지명됐을 때가 기억나는가?

당시에는 프로선수의 꿈을 꾸지 못했다. 나는 시골에서 야구를 하던 평범한 소년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가는 줄로만 알았다. 좋다기보다는 얼떨떨했다.

순천 효천고 야구부에서 본인은 어떤 존재였나?

시골 테를 벗고 싶은 청년이었고, 그런 청년이 야구를 할 뿐이었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

많이도 말고 27, 28살 정도가 좋겠다. 너무 젊으면 선배들 눈치를 봐야 해서 힘들고, 그 정도 나이가 딱 좋은 것 같다. 지금 이 마음가짐으로 그 나이면 정말 행복하겠다. 안 된다면 30살도 좋다. (웃음)

그때와 지금의 마음가짐은 어떻게 다른가.

그때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같았다. 지금은 책임감이 생겼다. 지켜야 할 가정도 있고 나의 주변 환경도 많이 달라졌다.

풀스윙, 모 아니면 도, 홈런 혹은 삼진. 본인의 이런 타격 스타일은 언제부터 정립됐나.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그때는 공을 봐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다. 정확성보다 힘에 집중했다. 이후에 공을 보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타율도 좋아졌다.

거포 유망주였지만 정체기가 길었다. 혹자는 슬럼프라고도 표현한다. 16년 만에 처음으로 30홈런 고지를 밟았는데 달라진 비결이 있는가.

슬럼프나 정체기가 아니라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지 슬럼프 탓은 아니다.

원래 포지션이 포수였다. 야수로 전향한 데 만족하는지.

아쉬움은 있다. 포수를 계속했다면 또 다른 그림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포수는 정말 매력 있는 포지션이다. 포수를 하면 경기를 보는 시야도 넓어지고, 전체적인 수비에도 더 신경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등 번호 36번은 서울의 세 구단을 거치는 동안 한 번씩은 꼭 사용했다. 본인의 휴대전화 번호에도 두 번이나 들어간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처음엔 12번을 사용하고 싶었는데, 선배님들이 달고 계셔서 어쩔 수 없이 남는 번호를 선택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이승엽 선배와 같은 번호였다. 영어 이니셜도 ‘LEE S Y’로 같고, 같은 좌타자여서 더 의미 있는 번호가 됐다. 야구장에서 이승엽 선배를 만난 후로 이 번호를 계속 달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은 50번인데?) 두산 베어스에서 (김)현수가 달았던 번호다. 당시에 현수가 잘했기 때문에 그 기운을 받고 싶어서 50번을 달고 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아내에 대한 사랑이 극진하다. 천일 기념사진을 만들어 SNS에 올리기도 했던데.

내가 직접 했다. (아내 자랑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에게 잘 해주고, 육아도 아주 잘한다. 아내의 모든 것이 자랑이다. (아내를 도와 집안일도 하는 편인가?) 요리는 못하고 집안일은 많이 도와준다. 쉬는 날은 아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는 것이 내 임무다.

아들 바보로도 유명하다.

지금도 어린이집 보내고 쉬고 있다. 아들 때문에 산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

아들은 누구를 많이 닮았는가.

외모는 아내를 닮았다. 다행이다. (웃음) (이제 세 살인데 아주 크다.) 부모의 영향이 있는 것 같다. 내가 큰 편이라 아들도 크다. 또 내가 겁이 많은데, 그것도 닮았다.

아들이 야구를 하겠다고 하면 시킬 생각인지.

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시켜보고 싶다. 집에서도 야구공과 배트를 자주 갖고 논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시켜 볼 생각이다.

한때 야구를 그만두고 소를 키울까 고민했다는 일화 덕에 ‘소성열’이라는 별명도 있다. 그 생각은 아직도 유효한가.

이제 쉽지 않을 것 같다. (웃음) 부모님이 소를 키우시는데 야구를 그만두고 부모님을 따라 그 일을 크게 해볼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을 위해 야구에 전념할 생각이다.

아직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했다. 야구선수로서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가?

가장 큰 꿈은 또다시 가을야구에 가는 것이고, 이후 우승까지 하는 게 목표다. 나중에 내가 지도자가 된다면 그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싶은 마음도 있다.

마지막으로 함께 울고 웃어준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성적이 좋지 않을 때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응원해준 팬들이 있기에 한화가 가을야구에 갈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선수들도 더 노력할 수 있었다. 감동이었다. 모든 것이 팬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감사하다!


더그아웃 매거진 92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8년 92호(12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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