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F워드 10번, 마차도와 세일이 만난다

조회수 2018. 10. 22. 11:0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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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늘 그렇다. 7차전은 칼날이다. 조금만 삐끗하면 돌이킬 수 없다. 깊은 상처가 폐부를 찌른다.

홈 팀이 1-0으로 기세를 올렸다. 원정 팀은 잔뜩 풀이 죽었다. 그렇게 맞은 2회 초였다. 선두 타자의 카운트는 3-2가 됐다. 밀러 파크에는 여전히 경멸과 노여움이 가득했다. ‘우~. 우~.’ 4만 명의 밀워키 부어스(Booers, 야유하는 사람)는 엄청난 질타를 퍼부었다. 곳곳에서 ‘매니 삽질(Manny sucks)’이라는 비아냥이 터져 나왔다.

어수선한 틈을 노렸다. 마운드의 투수가 꼼수를 썼다. 이른바 퀵 피치였다. 보통 때보다 한 템포 빠른 동작으로 허를 찔렀다. 타자의 타이밍을 뺐기 위해서다. 그런데 아뿔사. 타자가 한 수 위다. 한 술 더 뜨는 변칙을 발휘했다. 갑자기 번트 모션을 쓴다. 숨죽인 타구는 3루 쪽으로 얌전히 굴렀다.

기습의 주인공은 1루를 향해 전력 질주했다. 스탯캐스트는 달리기 속도를 1초당 29피트로 측정했다. 100미터를 11초50에 끊을 수 있는 주력이다. 그의 올시즌 평균 달리기는 1초당 26.3피트였다(메이저리그 평균 27.0피트). 2013년에 왼쪽, 2014년에 오른쪽 무릎을 수술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초능력을 발휘한 셈이다.

그 기발함도 기록적이다. 카운트 3-2에서 나온 번트는 2014년 5월 29일 이후 처음이다. 일본인 아오키 노리치카(캔자스시티)가 한 번 성공했을 뿐이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상상을 초월한 기습이었다. 3루수는 공을 던져보지도 못했다. ‘매니 삽질’은 여유있는 표정으로 1루를 점령했다. 이윽고 다음 타자 코디 벨린저는 우중간 펜스를 넘겨버렸다. 0-1의 열세가 한 순간에 2-1의 우세로 뒤집어졌다. 7차전의 운명이 바뀌는 장면이었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밀러 파크보다 훨씬 거칠고 사나운 펜웨이 파크

이틀 내내 지독한 야유가 계속됐다. 그렇다고 기죽을 멘탈이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관중들을 부추겼다. 두 손을 위로 올리며 ‘어디, 더 해보라’는 동작으로 자극했다. 위축되기는 커녕 오히려 창의력을 발휘했다. 2회의 기습 번트는 특별한 플레이가 분명했다.

그러나 강철 멘탈은 더 큰 도전에 직면해야 한다. 어쩌면 커다란 위험이라고 하는 게 맞을 지 모른다. 밀러 파크보다 몇 배나 더 드센 펜웨이 파크 팬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다저스와 빨간 양말의 대결은 역대 최고의 매치업이다. 흥행 면에서는 최상의 조합이 분명하다. 한쪽은 할리우드의 달달함이 뚝뚝 떨어지는 인기 구단이다. 반대쪽은 거칠고 남성다운 강력함을 내세우는 전통의 명문 구단이다. 2년 연속 진출팀과 시즌 최고 승률팀의 대결. 둘이 월드시리즈에서 만난 것은 무려 102년 만이다. (1916년 다저스가 브루클린 로빈스 시절, 보스턴이 4승 1패.)

세기의 대결이다. 그만큼 다채로운 스토리 라인이 깔려 있다. 그 중에 하나의 주인공이 바로 ‘그 친구’다. 밀러 파크에서 미운 털이 단단히 박혀 ‘매니 삽질’로 불렸던 그 친구 말이다.

사실 밀워키 팬들을 분노케 한 행동은 애교에 가깝다. 기껏해야 유격수 무릎 좀 어루만지고, 1루수 발에 먼지 좀 묻힌 정도다. 그걸 가지고 크리스티안 옐리치는 “더러운 플레이였다. 절대 존중할 수 없는 선수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심한 걸 당한 팀이 있다. 바로 이번에 상대하게 될 빨간양말들이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쓰러진 페드로이아, 분노하는 빨간 양말들

작년 시즌 초반이었다. 개막한 지 한달도 안된 4월이었다. 오리올스의 캠든 야드에서는 레드삭스전이 한창이었다.

홈 팀의 8회 말 공격. 유격수 쪽 땅볼이 나왔다. 6-4-3. 병살을 위한 연결 플레이가 시작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사고 지점은 2루였다. 베이스인 했던 2루수가 주자에게 일격을 당했다. 블랙 박스, 아니 느린 화면을 재생했다. 완벽한 아웃 타이밍이었다. 문제는 발의 높이였다. 슬라이딩 하던 주자의 오른발이 2루수의 왼쪽 무릎 부근을 내리찍었다.

180㎝이 안되는 유난히 작은 체구다. 2루수가 그라운드에 나뒹굴었다. 더스틴 페드로이아였다. 가해자는 190㎝이 넘는다. 20대 중반의 젊은 덩치다. 매니 마차도였다.

마차도는 순간적으로 페디(페드로이아의 애칭)를 일으켜세웠다. ‘아차’ 싶은, 굉장히 미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돼 버렸다. 34세의 노장 2루수는 더 이상 플레이가 어려웠다. 트레이너의 부축이 필요했다. 그리고는 덕아웃 뒤로 사라졌다.

이 장면은 2년 전 강정호 케이스를 상기시켰다. 또 한번 슬라이딩에 대한 논란에 불을 지폈다. 눈길을 끈 것은 피해 당사자의 반응이었다. 아량이 태평양이었다. “나는 지난 11년간 이 리그에서 최고의 병살 수비를 했다고 자부한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규정 따위는 필요없다. 푸트워크가 별로인 애들을 위해서나 필요한 룰이다.” 가해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매니는 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한 것 뿐이다. 모두 경기의 일부분이다. 비난하지마라. 그는 내가 좋아하는 플레이어 중 한 명이다.”

그러나 동료들은 달랐다. 당시 감독이던 존 페럴은 “너무 늦은 슬라이딩이었다”는 얘기를 몇차례나 강조했다. 비디오 판독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브라이언 버터필드 3루 코치는 거칠게 항의하다가 3루심에게 퇴장당했다.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지역 매체들이 전한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몇몇 코치와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고도 퇴근하지 않았다. 클럽하우스에서 몇 차례나 이 장면을 리플레이시켰다. 분통을 터트리며 누군가를 지켜봤다. 주차장으로 빠져나가는 가해자의 모습이었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보복과 응징, 전쟁터가 된 보스턴-볼티모어전

페디는 이후 3경기를 결장했다. 마차도는 미안하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다고 사태가 진정될 리 없다. 아시다시피 그는 동료들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받던 클럽하우스의 리더였다.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순혈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이후로는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볼티모어의 3루수는 빨간 양말들의 표적이 됐다. 사건 이틀 뒤였다. 맷 반스가 1차 저격을 시도했다. 머리 쪽으로 날아가는 살벌한 위협구였다. TV 중계 화면에 페드로이아가 잡혔다. 그는 타자를 향해 뭔가를 외쳤다. “내가 한 게 아니야(Not me).” 입 모양은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한 번으로 끝날 리 없다. 같은 알(AL) 동부 소속 아닌가. 몇 주 뒤 4연전 시리즈에서 맞붙었다. 복수와 응징이 이어졌다. 경고와 퇴장, 징계가 속출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벌써 마운드로 쳐들어갔을 것이다. 아니면 배트라도 집어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상대 아닌가. 불만투성이 표정으로 화를 삭여야했다. 애꿎은 기자들이 분풀이의 대상이 됐다.

“내가 일부러 다치게 한 건 아니다. 그런데도 저들은 계속 위험한 공을 던진다. 다리로, 머리로, 어디로도 날아온다. 이건 말도 안된다. 맞힐테면 맞혀봐라.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 그들은 100마일짜리로 내 머리를 노리고 있다. 나는 배트를 들고 있다. 원하면 달려가서 그걸로 해결하겠다. 물론 난 1년간 정지를 먹을 거다.” 몇 마디를 하는 와중에 ‘F 워드’가 정확하게 10번이나 튀어나왔다.

결국 MLB 사무국이 나서야했다.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긴급 화상회의를 열었다. 양팀 감독과 단장이 참석했다. 사태를 진정시키지 않으면 강력하게 조치하겠다고 엄중하게 경고했다.


1차전 선발 투수 VS 4번 타자

사태는 가까스로 진정됐다. 그러나 페드로이아의 무릎은 낫지 않았다. 이후 고질이 됐다. 8월에 한 번, 9월에 한 번 10일짜리 DL이 필요했다. 손목 부상까지 겹쳤다. 덕분에 2017년은 겨우 105경기 출장에 그쳤다.

시즌을 마친 뒤 수술대에 올랐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 2018년을 부상자 명단으로 출발했다. 5월말에 잠시 콜업됐지만 단 3경기 뿐이었다. 이후 다시 말소됐다. 시즌 아웃이었다. 수술과 재활을 반복했지만 재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클럽하우스의 리더다. 로스터에는 없지만 늘 빨간양말들과 함께 한다. 특히 포스트시즌은 원정까지 동행한다. 부진한 선수들을 격려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데이비드 프라이스는 챔피언시리즈 최종전 승리투수가 된 뒤 페드로이아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휴스턴 구장에서 열린 우승 축하 파티에도 언제나 리더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펜웨이 파크는 모두 보고 있었을 것이다. 밀러 파크의 팬들이 왜 그랬는지. 어떻게 했는지. 그러면서 문득 그들의 15번이 빠진 자리를 떠올릴 것이다.

앞서 얘기한 사건이다. 마차도가 극도의 흥분 속에 F워드를 10차례나 내뱉은 일 말이다. 작년 5월 2일이었다. 당시 선발이던 크리스 세일의 100마일짜리 패스트볼이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는 폭발한 것이다. “맞힐테면 맞혀봐. 나도 쫓아가서 배트로 다 쪼개버릴 것이다.”

둘은 다시 만난다. 세일은 1차전(한국시간 24일) 선발 투수다. 그리고 마차도는 아마도 4번 타자로 타석에 설 것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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