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최지만의 연관검색어 '군대'

조회수 2018. 9. 1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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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오늘도 토미 팸이 등장한다. 역시나 단역이다.

어쩌면 이틀 전과 흡사하다. 마치 리플레이 화면을 돌려놓은 것 같다. 그날 9회였던 게, 이날은 1회라는 차이 뿐이다.

2사 후. 팸이 3루수를 강습했다. 내야 안타다. 끝나야 할 1회가 이어졌다. 묘한 분위기 속에 4번 타자가 등장했다. 인디언들에게는 징글징글한 존재다. 만만하게 봤다가 큰 코 다친 기억 때문이다.

배터리의 볼배합이 조심스럽다. 포수는 바깥쪽 낮게 달라는 요구였다. 잔뜩 웅크린 채 미트를 내밀엇다. 그런데 ‘아차’ 싶었다. 16승 투수 칼로스 카라스코의 영점 조준이 잘못됐다. 91마일짜리가 한복판으로 향했다.

‘징글징글’은 용서가 없다. 감히 실수라니. 가차 없는 스윙으로 응징했다. 맞는 순간 답은 뻔했다. 중견수 그렉 앨런이 따라가 봤지만 소용없다. 공은 담장 너머 아득한 곳으로 사라졌다. 2-0. 초저녁 한 방으로 이날 승부는 사실상 끝나고 말았다. (최종 스코어 3-1)

백미는 이제부터다. 홈런과 함께 갈라쇼가 시작됐다. 무대는 홈 팀 덕아웃이다. 오프닝은 칼로스 고메스의 차지다. 피가 뜨거운 친구다. 삼진 먹고 음료수통 때려부수는 영상으로 유명하다. 그는 벤치 앞에서 흉내를 낸다. 양 손을 펴고 앙증맞게 달리는 1초 싸이의 모습이다.

최지만의 홈런에 그의 달리기를 흉내내는 팀 동료들의 동작이 웃음거리다.                     mlb.tv 화면 

이윽고 주인공이 덕아웃에 입장했다. 하늘을 향해 활을 쏘는 세리머니가 이어진다. 너도 나도 따라한다. 웃음과 활기, 생기가 한가득이다.

역시 다르다. 마이너리그에서 수년간 갈고 닦은 내공이다. 거기서 우러나는 퍼포먼스다. KBO, NPB 출신들은 감히 흉내도 내기 어렵다. 흥과 끼가 넘친다. 완벽한 현지 스타일이다.

1초 싸이의 예능감은 엊그제가 절정이었다. 9회 말 퇴근 홈런 때였다. 그라운드를 도는 자태가 압권이었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담담하지만 카리스마 넘친다. 마치 끝내기를 밥 먹듯이 치는 달인같다. 시크함이 뚝뚝 떨어진다.

물론 그게 다가 아니다. 모드의 강약 조절도 기가 막히다. 1루를 돌기 직전에 한 번. 그리고 홈을 밟기 전에 한 번. 화려한 퍼포먼스를 시전했다. 관중, 동료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절정의 순간이었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홈런 동영상에 달리는 놀라운 댓글들

언제 뜨나 싶었다. 그런 날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 때가 왔다. 진짜로 현실이 됐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들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바야흐로 G맨(Ji-Man Choi)의 전성시대다.

5게임에서 3발이 터졌다. 하나는 역전 끝내기, 또 하나는 결승 홈런이다. 한결같이 알토란 같은 것들이다. OPS가 0.9를 넘겼다. 진작에 템파로 갈걸…. 그런 말이 허투로 들리지 않는다.

바닥부터 고생한 흔적이다. 시간을 버텨낸 공력이다. 덕아웃에서, 클럽하우스에서. 동료들과 섞이는 모습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현지화에 성공한 퍼포먼스가 요즘 대세다. ‘세리머니 구경왔습니다.’ 홈런 순간보다, 뒤풀이 장면을 흥겨워하는 팬들이 늘고 있다. 몇 번이나 돌려봐도 흥미롭다. 조심하시라. 중독성이 강력하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박수 받아 마땅하다. 축하 세례도 당연하다. 그러나 마냥 즐거울 수 없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잔뜩 찌푸린 먹구름이 뻔히 보이는 탓이다.

그의 이름에는 몇 가지 연관 검색어가 따라다닌다. 끝내기 홈런, 연봉, 세리머니, 동산고, 메타다이에논…. 그리고 눈에 밟히는 단어가 하나 있다. ‘국적’ 그리고 ‘군대’다.

어제(한국시간 13일) 결승 홈런 동영상에 붙은 댓글들이 주목된다. <다음스포츠>의 ID 매XX라는 이용자가 남긴 멘션이다. ‘군면제 해주자 아시안 금메달 딴거보다 최지만 홈런이 더 즐겁고 행복하다.’ 이 반응은 꽤 많은 엄지를 얻었다. youxx라는 유저는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나저나 어줍잖은 국대 군면제는 다 받았는데 진짜 국위선양하고 달러 벌어오는 선수들은 군에 가야하네 지만아 어쩌누.’

또 다른 포털에서도 비슷하다. 아이디 Pentxxxx는 무척 과감한 댓글을 남겼다. ‘지만이 마이너서 그렇게 고생했는데, 아쉽지만 국적포기하고 너의 삶을 개척하길 바란다. 드디어 메이저에서 빛을 보려는데 포기하고 돌아오기에는 너무 아쉽지 않냐. 국적 포기해도 끝까지 응원한다.’ 이 반응은 뜻밖에도 베스트댓글이 됐다. 공감 비율도 압도적이었다.

현실적인 방법은 모두 막혔다

현실을 따져보자. 본래부터 그에게는 가능성이 없었다. 태극 마크에 대한 기대는 무리였다. 1루수 또는 왼쪽 지명타자 자리는 쟁쟁한 경쟁자들이 수두룩하다.

만에 하나 뽑힌다치자. WBC 같은 대회는 병역과 관계없다. 유효한 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뿐이다. 그나마 아시안게임은 이번 홍역으로 프로 선수의 참가가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KBO도 이제는 리그 중단을 고려하지 않겠다고 했다. 가장 가까운 것도 2022년이다. 어차피 혜택을 볼 수 없는 시기다.

유일한 게 내후년 도쿄 올림픽이다. 하지만 한창 리그 기간에 열리는 이벤트다. 일본이야 주최국이니 일찌감치 리그 중단을 발표했다. 하지만 어느 ML 구단도 차출을 허락할 리 없다. (핵심 전력이라면 더 그럴 거다.)

제도에 대한 비판 여론도 뜨겁다. 정치권에서는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다. 지금의 로또식 보다는, 누적 점수제로 특례자를 선정하자는 법안이 제출될 것이란다. 한 번으로 주어지는 혜택은 피하자는 뜻이다.

여러가지를 감안하면 어렵다. 그에게 특례자 지정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입대해야 한다. 그의 경우는 상무나 경찰청 입대 자격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역 또는 공익요원으로 복무해야 한다. 메이저리그 커리어는 물론이고, 야구라는 운동 자체를 2년 가량 중단해야 한다는 뜻이다.

남은 길은 연기다. 미국 영주권을 받게 되면 일정한 자격이 생긴다. ‘해외체류자 병역 연기’에 대한 지침을 적용받는다. 국민들이 자유롭게 국외에서 학문을 연마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된 제도다. 37세까지 여유가 생긴다. 이후는 고령으로 인한 면제 사유가 발생한다.

그러나 이 경우는 논란거리가 될 여지가 많다. 축구의 박주영이 한차례 홍역을 앓았다. 야구에서도 유명한 사건이 있다. 백차승 케이스다. 그는 미국 국적의 여성과 결혼한 뒤 국적을 포기했다. 실질적인 법 처벌은 없었다. 하지만 따가운 여론의 질타를 받아야 했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해피 엔딩이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런 논의 자체가 적절치 않다. 국방의 의무는 당연한 것이다. 개인의 목표 때문에 돌아가고, 피해 갈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많은 팬들이 상처를 받았다. 그로 인한 반감에 나라 전체가 들끓는다. 최지만에 대한 동정은 그래서 생긴 역설이다.

(만약에라도) 실제 그가 어떤 편법으로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이어간다면 어떨까. 지금처럼 우호적인 여론이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결코 없을 것이다.

묘수는 안 보인다. 사방이 꽉 막혔다. 눈 앞에는 가시밭 길 뿐이다. 그래서 이 눈부신 활약의 한 켠은 늘 매케한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품는다. 해피 엔딩에 대한 기대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합리적이고, 현명한 방법을 찾기 바랄 뿐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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