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오승환 복귀설에 대한 해석적 추론

조회수 2018. 11. 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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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면 뭐하나. 공부 하나 하자. 언어 영역이다.

잠행(潛行) : 남들이 모르게 숨어서 오고 감. 물 속에 잠기거나 땅속으로 들어감. 남들이 모르게 행함.

시즌이 끝났다. 돌부처도 잠시 수련을 멈췄다. 험준한 로키산에서 속세로 나왔다. 행선지는 인천. 한국으로 돌아와 깊은 명상에 잠긴 듯하다. 그야말로 ‘잠행’ 중이다.

예전과는 조금 다른 행보다. 보통 비시즌에는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스타일이었다. 대중들과 스킨십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방송이나 미디어 노출에도 크게 거부감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다. 벌써 2주가 지났지만 드러나는 일이 없다.

물론 백 번 이해한다. 휴식기 아닌가. 누구보다, 어느 때보다, 힘겨운 시즌이었다. 딴 생각 말고 푹 쉬는 게 맞다.

그런데 딱 하나가 걸린다. 인천공항 입국장에서의 인터뷰다. 뜬금없이 ‘복귀’를 언급했다. 돌발적인 발언은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한국은 물론 콜로라도 쪽도 시끄러웠다. 그렇게 물음표만 잔뜩 남겨놓고는 물 속으로 사라졌다. 깊숙한 잠수, 잠행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첫 반응

그의 발언을 놓고 몇가지 반응들이 보도됐다. 각각의 관련자들은 원론적인 답변에 충실했다. 라이온즈는 언감생심이다. 그렇게만 되면 ‘땡큐’다. 그러나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이다. “직접 복귀 의사를 내비친 적이 없다. 거취에 대한 언급도 조심스럽다.” 지극히 건조한 반응뿐이다.

로키스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제프 브리디치 단장이 연락두절이었다. 현지 담당 기자들의 문의가 쇄도했다. 며칠 뒤에야 답을 들었다. “그의 말은 2019년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싶다는 것에 더 가깝다. 우리는 그가 현재의 계약을 준수하려는 의도를 지녔다고 이해하고 있다.”

에이전시 측은 더 분명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이미 내년도 (콜로라도와) 옵션이 실행됐다. 계약상 돌아오기는 어렵다.”

의구심

1차 반응들을 종합해 보면 해프닝에 불과하다. 우발적인 발언일 뿐이다. 왜? 객지 생활이 힘들어서….

과연 이걸로 일이 일단락 된 것일까. 그럴 리가. 의구심은 멈추지 않는다. 혹시 다른 뭔가의 개연성은 없는 것일까.

여전히 미심쩍다. <…구라다>는 그 부분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려 한다. 하지만 명심하시라. 늘 그렇듯이 추정이고, 상상일 뿐이다. 그럴듯함을 가장한 ‘구라’다. 그냥 즐기시라.

캐릭터

일단 몇 가지 이해가 필요하다. 사건을 파악하는 데 중요하다.

우선은 당사자의 캐릭터다. 가볍고, 즉흥적인 인물인가? 아니다. 전혀 반대다. 신중하고, 사려 깊은 쪽이다. 프로 생활만 10년이 훨씬 넘었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다 겪었다. 미디어 대응 요령은 충분히 훈련된 상태다. 가히 베테랑급이다. <라디오스타> 진행자들도 쥐락펴락할 수준이다. 어떤 말을 해도 되는 지, 가려야 될 말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안다. 이런 발언이 어떤 파급력을 지녔는 지 모를 리 없다.

상황과 현장

상황은 어땠나. 당시를 따져보자. 공항 입국장이었다. 넓고, 짧게, 그리고 가볍게 기자들과 만나는 자리다. 스포츠를 전문으로 취재하는 곳 뿐만 아니다. 방송을 비롯해 다양한 매체들이 모였다. 그렇게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할 분위기도 아니다. 캐주얼한 질문과 대답으로도 충분하다. ‘올 시즌 회고’ ‘포스트시즌에 대한 감상’ ‘귀국 후 계획’ 등등이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복귀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그것도 제법 구체적이고, 반복적이었다. 관련된 멘트들을 나열하면 이렇다.

“사실 나는 한국에 복귀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힘이 다 떨어져서 오는 것보다 힘이 남아 있을 때 오고 싶다.”

“스스로 진지하게 생각한다고 되는 문제는 아니다. 에이전트가 잘 진행하실 것이다.”

“많이 지쳐있는 건 사실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

어떤 (함정이 있는) 질문에 덜컥 걸린 것도 아니다. 말꼬리를 잡힌 것도 없었다. 그냥 순순히 본인이 자술하다시피 얘기를 꺼내고, 설명했다.

막힌 벽

즉흥적인 멘트일 리 없다. 엄청나게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다. 아무 생각없이 툭 뱉을 이슈가 아니다. 그 정도로 막무가내, 철부지는 아니다.

본인도 처지에 대한 이해가 또렷하다. 일방적으로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점을 분명히 알고 있다. 풀어야 할 문제가 있고, 누군가 해줘야 한다는 점도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도 얘기를 꺼냈다. 앞뒤 설명까지 보태가면서 말이다. 이건 꽤 오래 전부터 가졌던 생각이라고 봐야한다. 숙고와 고민을 거친 것이다. 이미 정리된 마음이라고 읽힌다.

하지만 딱 막히는 부분이 있다. 실현 가능성이라는 문제다. 너무나도 단단한 벽이 있다. 계약이다. 자신의 사인이 돼 있는 서류다.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걸까.

해법

걸림돌은 크게 두 가지다. ① 로키스의 동의 ② 국내 복귀 시 징계다.

단순화 시켜보자. ②는 간단하다. 72게임 출장 정지를 감수하면 된다. 물론 작지 않다. 하지만 어차피 거쳐야 할 절차다. 전반기는 몸을 다듬고, 후반기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전략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더우기 2~3년간 계획이라고 보면 감당못할 것도 없다.

문제는 ①이다. 조금 복잡하다. 일감은 현금으로 보상하는 트레이드 형식이다.

로키스가 뭐하러

보통의 예상은 비관적이다. ‘턱도 없는 소리’로 보는 게 맞다. 미국도 투수난이다. 그만한 값에, 그런 불펜 투수 구하기 쉽지 않다. 가성비를 따지면 A급이 틀림없다.

하지만 ‘굳이~’라는 부사를 활용해보자. 과연 꼭 지켜고 싶은 자산일까?

냉정하게 얘기하면 로키스 불펜에서 그의 입지는 4~5번째 정도다. 웨이드 데이비스, 아담 오타비노, 스캇 오버그 등이 우선 순위다. 물론 오타비노는 FA가 된다. 그렇다해도 보스의 위치가 나아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시즌 막판 승부처에서 여러 차례 그런 대목이 있었다. 그가 나와야 할 장면이었다. 그런데 정작 캐스팅은 다른 투수였다. (아마 이런 점도 그가 피로감을 느낀 원인 중 하나일 것으로 추측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더라. 많이 건조하고, 공의 회전이나 이런 것이 기존에 다른 구장에서 했던 것과 비교해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많이 있었다.” (공항 기자회견 중에서)

이미 마음이 어지러워진 투수다. 좋은 모양새로 길을 열어준다면, 로키스도 박수 받을 일이 분명하다.

“지쳤다” … “힘들다”

복귀설이 유통될 때 오버랩되는 키워드가 있었다. ‘지쳤다’ 또는 ‘힘들다’였다. 오랜 외국 생활에 그럴 법하다. 여기에 사람들은 내년 연봉을 결부시킨다.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낄만한 액수다. 두 가지를 결부시키면 이런 문장이 완성된다. ‘그 돈 받고 고생하느니, 차라리 돌아오는 게 낫겠다.’

물론 영 틀린 해석은 아니다. 하지만 깔끔한 답은 아니다. 뭔가 찜찜한 구석도 보인다.

아무리 그래도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다. 그 정도 수준에서 그를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대의명분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무척 중요한 구상이고, 계획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의 해석이 걸맞는다.

“힘이 남아 있을 때”

관련해서 중요한 부분이 있다. 인천공항 인터뷰에서 나온 말이다.

“힘이 다 떨어져서 오는 것보다, 힘이 남아 있을 때 오고 싶다.”

<…구라다>는 이 부분을 주목한다. 복귀론은 철저히 이 워딩에 입각해서 해석해야 한다. 그래야 모든 문제들이 이해된다. 아울러 해법도 여기서 나온다고 믿는다.

즉 문제를 풀려면 상당한 희생, 또는 투자가 필요하다. 당사자는 어느 정도 금전적/커리어적인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반면 라이온즈에게도 상당한 모험이다. 물론 메이저리그 불펜 투수를 데려오기 위한 것이라면 다른 얘기겠지만.

공항에서는 이 부분을 다시 한번 부연했다. “좋은 모습이어야 팀에 도움이 된다. 미국에서 하다가 나이가 들어서 오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일찍 오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구로다 히로키

구로다 히로키는 2014년이 끝나고 양키스로부터 1500만 달러를 제시받았다. 레드삭스는 그보다 많이 불렀다. 하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귀국하겠다”고 했다. 친정팀 히로시마 카프가 준 연봉은 4억엔, 약 400만 달러였다.

7년 전. 그가 처음 태평양을 건널 때였다. “설레는 마음 따위는 없다. 전쟁터로 가는 기분이다. 모든 것을 태우겠다. 그리고 반드시 돌아오겠다.” 물론 그 나름의 엄격한 조건을 달았다. “선수 생활의 멋진 마무리? 아니다.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 있을 때, 히로시마를 위해서 던질 수 있을 때, 돌아오겠다.”

일본 복귀 후 2년 연속 두 자리 승리를 올렸다. 그리고 깔끔하게 은퇴했다.

5년전 약속

2005년 2월. 오키나와였다. 이제 막 입단한 신출내기 투수가 볼펜 한 자루와 A4 용지를 꺼냈다. 그리고 이름을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배영수, 전병호, 박석진…. 금새 12명이 꽉 찼다. 1군 엔트리 어디에도 자기 이름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신출내기는 그 해 신인왕이 됐다. 10승, 16세이브를 올렸다. “기억에 남는 경기요? 느낄 겨를이 없었어요. 살아남는 게 목표였죠. 그냥 1군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어요.”

2013년 겨울이었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삼성은 5000만엔 이적료 외엔 조건 없이 날 보내줬다. 역시 삼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정들었던 팬들, 선수들, 프런트 형들…. 이별을 감당하는 건 힘겹다. 그러나 다시 만날 분들이기에 아파하지 않을 것이다. 삼성은 나의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으로 남을 것이다. 내 심장에는 라이온즈의 뜨거운 피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구라다>는 그렇게 믿는다. 그의 복귀 프로젝트는 이미 가동을 시작했다고.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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