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김광현의 미디어 프렌들리(media friendly)

조회수 2020. 2. 28. 15: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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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로의 한창 때다. 시애틀 초창기는 대단했다. 세이프코필드 첫 경기 때는 166명의 일본 기자가 몰렸다. 일거수 일투족이 뉴스였다. 어느 날 (일본 신문) 1면 톱기사가 흥미로웠다. 아내 유미코가 브렛 분에게 도시락을 싸줬다는 얘기였다.

하루는 어느 기자가 루 피넬라 감독에게 물었다. “이치로 상이 어제는 214번의 스윙을 했다. 그런데 오늘은 196번 밖에 안했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그와 (일본) 미디어의 관계는 특별했다. 거의 일방통행이었다. 클럽 하우스는 늘 열려있다. 하지만 접근은 엄두도 못냈다. 경기가 끝나면 기자들이 모인다. 공통 질문 몇 개를 뽑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루틴을 마치면 사인이 온다. 그제서야 대표 기자 한 명이 다가간다. 나머지는 멀찍이서 지켜볼 뿐이다.

이치로는 라커쪽으로 앉는다. 기자는 뒤에서 묻는다. 마주보는 일은 흔치 않다. 목소리 톤도 가지런해야한다. 대답은 짧다. 거의 단답형이다. 간혹 침묵하기도한다. 그렇다고 다시 물을 수 없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가 이 광경을 보도했다. 당시 어느 일본 기자의 절망적인 코멘트다. “우리가 하는 방식을 저널리즘으로 보기는 어렵다. 안타깝지만 현실이 그렇다.”

일화가 있다. 한번은 이치로의 반려견 얘기가 나왔다. 대표 기자가 조심스럽게 (강아지) 이름을 물었다.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 친구의 동의 없이는 공개할 수 없다.” (나중에 알려졌다. 잇큐一弓 라는 이름이었다. 이치로의 ‘一’ 부인 유미코의 ‘弓’에서 딴 것이다.)

사진제공 = 게티이미지

매덕스 코치의 칭찬 “KK의 활짝 웃는 모습이 좋다”

두번째 수능이었다. 첫번째 보다 좋아졌다. 아니, 그 이상이다. 사실 완벽에 가까웠다. 6타자를 깔끔하게 처리했다. 진루 허용은 없었다. 상대가 아무리 약팀이라도 그렇다. 1~6번까지는 주력 멤버다. 그런 타자들을 압도했다. 박수받아 마땅할 일이다. 선발 테스트의 가산점이 충분하다.

주목할 부분도 있다. 3명의 좌타자들이다. 3번 코리 디커슨, 5번 맷 조이스, 6번 이산 디아스를 막아냈다. 딱 하나 걸리는 게 있다. 디커슨을 상대할 때다. 마지막 공은 커브였다. 그런데 브레이크가 별로였다. 높게 걸리며, 타자의 눈에 들어왔다. 1루쪽 빠른 타구가 나왔다. 다행히 잡히긴 했다. 하지만 KK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덕아웃으로 돌아오며, 릴리스 포인트를 몇 번 체크했다.

2회는 더 좋아졌다. 두 좌타자 조이스와 디아스는 꼼짝 못했다. 빠른볼, 느린볼이 자유자재였다. 타이밍은 커녕 감도 못 찾았다. 배트는 허둥거릴 뿐이다. 유격수 뜬공, 헛스윙 삼진으로 처리했다.

의미있는 결과가 분명하다. 카디널스의 큰 고민이었다. 로테이션의 왼쪽이 허전하다는 약점이다. 특히나 NL 중부에서 버티려면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톱 클래스 좌타자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안 옐리치(밀워키), 앤서니 리조, 카일 슈와버(이상 시카고 컵스) 등이다. 작년 내내 세인트루이스를 고생시켰다.

마이크 매덕스 투수코치도 일찌감치 기대감을 보였다. “KK는 내가 바라는 여러가지를 갖춘 투수같다. 빠른 공와 변화구, 제구력이 모두 수준급이다. 우리 팀에 플러스 요인을 제공할 것으로 확신한다.”

남들은 꺼리는 얘기까지…솔직한 인터뷰

사실 진짜는 따로 있다. 매덕스 코치의 평가 말이다. KK를 향한 최고의 찬사는 웃음이었다. “우리는 그의 활짝 웃는 모습을 정말로 좋아한다.”

이날도 그랬다. 1회부터 싱글벙글이다. 초구를 던지기도 전이다. 마운드에서 뭐가 그리 좋은 지 모르겠다. 볼이 빠져도 웃고, 심판이 안 잡아줘도 마찬가지다. 미소가 연신 떠나질 않는다. 저 정도면 타자들도 헷갈린다. 가뜩이나 (저들이 보기에는) 특이한 투구폼 아닌가. 타이밍 잡기도 어려운데, 표정은 더 모르겠다. ‘뭐지? 왜 저러지?’ 그런 물음표가 타석에 한가득이다.

그의 웃음이 유난히 빛날 때가 있다. 미디어를 향할 때다. 거의 싹싹하고, 친절하다. 밝은 표정과 성심성의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게 있다. 솔직함이다. 대부분 선수들은 꺼리는 얘기들이다. 별로 좋지 못했던 점, 숨기고 싶은 것들까지 꺼내 놓는다. 좋았던 점, 자랑보다 늘 그게 먼저다. 2이닝 3K 후의 인터뷰 중에서 나온 내용들이다.

“선발이라서 아무래도 저번 경기보다는 긴장을 좀 더 한 것 같다.”

“(포수) 몰리나에게 내 폼이 무너지는 것 같으면 언제든 지 얘기해달라고 했다.”

“사실 초구, 2구에 공이 너무 안좋았다.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항상 1, 2회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볼로 시작하면서 공도 원치 않는 방향으로 많이 갔다. 몰리나가 잘 눌러주더라. 사람들이 괜히 몰리나, 몰리나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걸 느꼈다.”

“공인구는 조금씩 적응되고 있다. 그 탓을 하면 프로선수가 아니다. 앞으로도 잘 때도 껴안고 자도록 하겠다.”

미국 기자들을 열광시킨 멘트 “빠른 퇴근을 위해서”

현지 언론도 찬사 일색이다. 세인트루이스 포스트 디스패치가 대표적이다. “KK는 칠 수 없는 공을 던졌다. 94마일까지 나오는 빠르기와 날카로운 변화구가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 있다. 미국 기자들은 빠른 템포를 궁금해했다. 사인에 고개 한번 흔들지 않는다. 투구 중간에 군더더기도 없다. 쓸데없는 잡동작 하나 섞지않는다. 잡으면 던지고, 잡으면 던진다. 속전속결 모드에 대한 궁금증이다. 대답이 모범 답안이다.

“오늘 날씨가 습하고, 덥더라. 야수들이 힘들까봐 빨리빨리 하고 싶었다. 그래야 상대 타자들도 생각할 시간이 줄어들 것 아니냐.”

여기서 끝났으면 재미없다. 기자들을 감동(?)시킨 멘트가 있었다. “메이저리그 커미셔너가 빠른 속도의 경기를 원한다. 기자 여러분에게도 빠른 퇴근을 선물하고 싶었다.” mlb.com은 즉각적인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SNS를 통해 “KK가 기자들을 위해 빠른 투구를 했다고 한다. 매우 옳은 태도다.”

캠프가 벌써 2주째다. 느끼는 게 많은 것 같다. “여기는 팬들과 만나는 시간도 많은 것 같다. 사실 한국에서는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다. 덕아웃으로 들어가서 주차장으로 바로 나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에 오니까 다르다. 팬들이랑 커뮤니케이션할 기회가 많다. 메이저리그가 인기 있는 비결인 것 같다. (기자들에게) 라커룸을 오픈한다든 지 그런 모습들도 한국 야구에도 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토미 라소다는 장수 감독이다. 다저스에서만 20년을 했다. 그의 유명한 지론이 있다. “우리한테 동업자가 둘 있다. 하나님과 미디어다.” 하나님은 날씨 때문이다. 아무리 잘하면 뭐하나. 비 오고, 쌀쌀하면 관중이 없다. 미디어는 창구다. 팬과 소통하는 통로다. 이기든 지든 기자들 앞에 서야한다. 그걸 어기면 제재가 내려진다. 팬 없는 야구는 프로 스포츠가 아니다.

KK는 미디어 친화적(media friendly)이다. 캐릭터 자체가 그렇다. 잘 웃고, 솔직하다. 팬들과 스킨십을 중요시한다. 어쩌면 메이저리그와 가장 부합하는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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