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덕아웃 야유와 구태(舊態)

조회수 2020. 5. 19.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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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17일) 대전 경기다. 8회까지 홈 팀이 4-3이다. 9회를 지키려 세번째 투수를 올렸다. 김진영이다. 첫 타자 (6번) 딕슨 마차도는 유격수 땅볼이다. 아웃 2개 뿐인데 하위 타선만 남았다. 승부의 향방이 너무나 뻔해 보였다. 그러나 이후 상황은 급변의 연속이다.

7번 한동희 때 일이 생겼다. 카운트 1-1에 3구째다. 슬라이더(133㎞)가 가슴 높이로 왔다. 배트가 나왔지만 조금 늦었다. 약간 밀린 느낌? 그런데 타구가 죽질 않는다. 우익수(장진혁)가 열심히 따라붙었다. 하지만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펜스에 막혀서다. 하필이면 '○런볼' 광고 바로 위를 넘겼다.

극적인 동점 홈런이다. 중계화면에 김민우의 얼굴이 클로즈업 됐다. 희미한 해탈의 미소가 스친다. 반면 원정 팀 덕아웃은 난리가 났다. 온통 환호에 뒤덮였다. 함성과 박수, 헬멧 두드리기로 기세가 한껏 오른다.

왜 아니겠나. 다 진 줄 알았던 게임이다. 게다가 홈런의 주인공이 누군가. 초반 실책으로 내내 마음이 무겁던 21살짜리다. 그것 때문에 실점도 생겼다. 공교롭게도 동료 투수가 사고를 당한 것도 그 이닝이다. 이래저래 몸 둘 바를 몰랐을 터다. 오죽 마음이 쓰였으면 눈물까지 보였을까. 누군가 다가와 양쪽 입꼬리를 살며시 펴준다.

많은 스토리가 담긴 장면이다. 극적이고, 아름다운 광경이 가득했다. 하지만 와중에 옥의 티가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 시간으로 따지면 불과 3~4초 가량이다. 모습은 화면에 잡히지도 않았다. 다만 선명한 소리만 남았을 뿐이다.

마운드에 꽂히는 "에이스 공 좋네"

홈런 친 한동희가 금의환향했다. 덕아웃에는 온통 함성이 가득했다. 앞다퉈 환영 인사를 나눈다. 가슴 벅찬 세리머니가 끝날 무렵이다. 아주 잠깐. 그러나 분명한 음성이 오디오를 가득 채웠다. "와~. 에이스 공 좋네, 에이스, 공 좋아." 날카로운 한마디가 마운드를 향해 날아가 꽂혔다.

이후 온라인 상에는 격한 반응이 이어졌다. '누구냐, 상대 X무시한다' '인성 X레기다' '프로 자격없다'…. 댓글마다 거친 비난이 쏟아졌다. 조롱과 비아냥에 대한 강한 언짢음이다.

사실 티격태격은 앞선 8회부터다. 투수 박상원이 내는 소리 때문이다. 타자(전준우)와 감독(허문회)의 가벼운 항의가 있었다. 이후 롯데 쪽에서 "울어, 울어"라며 소리쳤다. 전준우가 "하지마, 하지마"라고 말리는 장면도 있었다.

비판의 소리들은 작년 한국시리즈를 떠올린다. 히어로즈 송성문의 사례다. 1차전 부터 상대(베어스)를 향해 거침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팔꿈치 인대, 햄스트링 수술, 최신식 자동문 같은 잔인한 어휘들이다. 덕분에 챔피언 결정전은 '송성문 시리즈'가 됐다. 승부는 둘째가 됐다. 찬란해야 할 가을의 고전은 막말 이슈로 온통 뒤덮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사례들

벤치의 야유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 역사는 깊고도, 넓다. 야구의 고장에서는 특히 그렇다. 세계적인 일화가 있다. 1940년대 보스턴 펜웨이파크에서의 일이다. 레드삭스가 화이트삭스를 맞았다. 원정 팀은 볼 판정에 불만이 많았다. 덕아웃에서는 궁시렁거림이 계속 됐다. 참다못한 심판이 감독을 불렀다.

"이거봐, 아무리 그래도 바보(meathead)는 너무 심하잖아." (구심)

"내가 그랬어? 왜 나한테 그래? 당신이 시작한 일인데." (화이트삭스 감독)

"뭐라고? 퇴장." (구심)

그러나 바보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누군지 범인도 모른다. 그래도 눈만 마주치면 "네가 그랬지? 퇴장"이다. 잠시 후 화이트삭스 덕아웃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무려 14명이 쫓겨나고 말았다. 스코어? 물어보나마나다. 원정 팀의 2-9 패배였다.

        1946년 화이트삭스 14명 퇴장 기사                                       MLB.com 스캇 린드블럼 트위터 캡처 


어디 미국 뿐이겠나. 비슷한 일은 한국에서도 있었다. 프로 초창기인 1983년 얘기다. 자이언츠의 광주 원정 경기 때다. 롯데 선수들은 스트라이크 판정이 못마땅했다. 구심 오춘삼 씨에게 심한 야유를 보냈다. 1차 경고 후에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12명 중 8명이 밖으로 쫓겨났다.

팀간의 감정 싸움에도 에피소드가 많다. 그 중 하나다. 공교롭게도 롯데-한화의 악연이다. 지난 2012년 일이다. 이글스 벤치에서 타석의 홍성흔을 건드렸다. 조경택 배터리 코치였다. 자기팀 포수를 향해 "야, 늦게 움직여"라고 거듭 외쳤다. 타자가 사인을 훔쳐볼 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홍성흔이 발끈했다. 구심에게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삼진을 먹었다(투수 류현진). 그리고 덕아웃에 돌아가 쓰레기통 하나를 박살냈다. 후에 롯데 팬 한 명이 대전 구장에 변상품을 택배로 부쳤다. '쓰레기통은 우리가 얼마든 지 물어내겠다'는 항의 표시였다.

개막 이전부터 우려됐던 문제들

처음부터 우려된 부분이다. 무관중으로 하면 소리가 더 잘 들릴 것이라는 걱정이다. 가뜩이나 이번 시즌부터는 마이크가 많아졌다. 심판, 주루 코치도 하나씩 찬다. 덕아웃은 언제 '온 에어'를 탈 지 모른다. 생생한 음향이 날 것 그대로 전달된다.

개막을 앞둔 시점이었다. 류중일 감독이 한마디했다. "무관중 경기라 덕아웃 소리가 더 잘 들린다. 우리끼리 격려하는 건 좋다. 그렇지만 상대 이름을 외치는 건 실례다. 가끔 상대 선수와 친하다고 야유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건 절대 하면 안된다."

사실 별 말 아닐 수 도 있다. "에이스 공 좋네." 그 정도 가지고 뭘…. 선배의 선배, 그 하늘 같은 선배 시절에도 늘 하던 것들이다. 그렇게 넘길 지 모른다.

하지만 아니다. 무관중이라 잘 들리기 때문에? 그것도 틀렸다. 전통, 문화와는 엄연히 다르다. 구태(舊態)는 사라져야한다. 잘 던지고, 잘 치는 게 전부는 아니다. 리그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들은 그외에도 많다. 일찍이 킹스맨이 알려줬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 maketh man)"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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