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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Interview] 이대형

조회수 2020. 6. 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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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대도’라 불리던 선수가 있다. 도루 감소세가 이어지는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누상에 나가기만 하면 뛰던 시절이 있었다. KBO리그 원년 도루왕 김일권, 1990년대를 풍미한 전준호와 이종범. 가깝게는 4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한 삼성 라이온즈 박해민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쟁쟁한 이름 속에서 빠지지 않는 선수가 한 명 있다. 4년 연속 도루왕, 통산 도루 3위. 화려한 성적과 이에 뒤지지 않는 외양으로 항상 팬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제는 새로운 길을 향해 달릴 준비를 하는 ‘슈퍼소닉’ 이대형이다.

Photographer 황미노 Photo KT 위즈 Editor 조예은 Location 플레이아데스

#스파이크를 벗은 슈퍼소닉

<더그아웃 매거진>과 4년 만이네요. (4월 28일 인터뷰)

아, 그때 박경수 선수랑 같이 했죠? 운동 전에 잠깐 했던 거라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나요. 그래도 최근에 자주 인터뷰를 했더니 이제 말하는 게 조금 편해졌어요. 뭐든 자주 하면 괜찮아지나 봐요.

2014년 1월호에 실린 화보는 아직도 회자할 만큼 ‘역대급’이었죠.

아, 그게 레전드예요? (웃음) 저는 몰랐어요.

요새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최근에는 어떻게 지낼지 고민하고 있어요. 이제 야구를 하지 않으니까 뭘 해야 할지도 고민해야 하고요. 제가 어떤 걸 잘할 수 있을지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은퇴 선언 후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많은 분이 알고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발표가 된 후 연락을 엄청 받았어요. 그리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겼고요. 현역 시절에는 경기 준비에 시간을 써야 해서 다른 여가를 즐기기 어렵거든요. (어떤 여가 생활을 하고 있나요) 지금은 하지 않아요. 코로나19 때문에 집에 주로 있죠.

은퇴는 어떻게 결정하게 됐나요?

제가 결정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야구를 더 하고 싶었는데, 현실적으로 못하게 된 거죠. 더 이상 할 수 있는 곳도 없었고요.

아직도 은퇴식을 원하는 팬이 많아요.

은퇴식에 대해 기사가 났더라고요. 여러 말도 나오고 하니 개인 인스타그램에 은퇴식을 할 정도의 선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글을 남겼어요. 일단 저는 그렇게 결정했어요. 마음이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번 결정한 일이니 은퇴식은 어렵지 않을까요?

절친인 심수창 해설위원처럼 방송계로 진출할 생각은 없나요?

말주변이 약해서 자신이 없네요. (웃음) 기회가 된다면 이것저것 해보고 싶어요. 누군가 불러주면 감사한 일이죠. 제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LG 트윈스는 선수를 얼굴 보고 뽑는다더라

이대형의 야구를 시작부터 돌아보니, 당연하다는 듯 육상 경력이 나와요. ‘대도 이대형’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육상을 전문적으로 한 건 아니에요. 학교에서 잘 달리는 사람 몇 뽑아서 경기에 나갔어요. 그리고 야구를 워낙 좋아했으니까 야구가 하고 싶었죠. 부모님에게 시켜달라고 떼를 썼던 기억이 나요.

2003년 LG에 입단해 만난 게 심수창, 우규민 선수예요.

같이 있던 세월이 한두 시간이 아니니까요. 운동을 하다 보면 팀 동료와 친해질 수밖에 없어요. 가족보다 더 오래 붙어 있잖아요. 매일 보고 또 보고… 물론 그 사이에서도 덜 친한 선수는 있죠. 저희는 친한 경우고요.

이 세 명이 ‘LG의 3대 꽃미남’으로 이름 날렸었어요.

그건 제 입으로 말하기가 좀… (웃음) 글쎄요. 그때 LG에 워낙 잘생긴 선수가 많아서 그런 이야기가 돌았어요. 그래도 제가 판단하기는 어렵겠죠?

그래서 그런지 ‘LG는 선수를 얼굴보고 뽑는다’라는 농담까지 나왔어요.

많이 있었죠. LG만의 이미지가 있어요. LG에 입단하면 좀 더 세련돼 보이는 효과? 서울팀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팀 특유의 분위기죠.

‘LG의 발야구 트리오’였던 이용규, 오태근 선수 중 가장 실링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그랬나요? 잘 모르겠네요. 그때 (이)용규가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됐잖아요. 당시에 셋 중 하나는 이적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일단 용규가 가게 된 거죠.


2007년부터 주전 외야수로 활약했어요. LG 외야진은 경쟁이 치열하기로 유명한데요.

2007시즌은 제게 소중한 시즌이에요. 주전으로 뛰게 된 첫 해라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어요. 당시에 주전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입단했을 때는 워낙 쟁쟁한 선배님들이 포진돼 있어서 제가 주전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어요. ‘대주자라도 할 수 있을까?’라며 고민했죠. 그런데 김재박 감독님이 저한테 뛸 기회를 주셨어요.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운이 좋았던 거죠.

주전이 된 첫 시즌부터 활약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요?

글쎄요. 그저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때는 멋모르고 야구를 할 때잖아요. 주전으로서의 마음가짐 같은 건 생각도 못했고 생각 자체가 없었어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개막전부터 경기에 출장했고, 그 뒤로는 그냥 잘 풀렸어요. 겁 없이, 생각 없이 했던 게 좋은 영향을 미쳤죠.

도루 53개를 기록하며 첫 도루왕에 올랐어요. 자신만의 비결이 있나요?

과감성이죠. 기술보다 무조건 과감히 뛰었어요. 물론 과감한 주루가 모두 성공으로 이어지진 않아요. 사실 과감하게 도루를 한다는 자체가 어렵긴 해요. 리드를 한 발 떼는 것부터 힘드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과감성을 일단 갖고 있었어요. 그게 자신감이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야 일단 뭐든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도루할 때 습관은 없었나요?

정말 없었어요. 그냥 마음먹은 대로 뛰었죠. ‘이번에는 언제 뛰어야지, 이때 뛰어야지’라고 마음을 먹으면 바로 행동으로 옮겼어요. (1루에서 그라운드를 파는 모습이 자주 잡혔어요.) 제가 좀 유난스럽게 팠어요. (웃음) 뒷다리를 고정시켜야 추진력을 얻을 수 있거든요. 그걸 중요하게 여겨서 한참을 팠어요.

2010시즌에는 김주찬 선수와의 막판 ‘도루왕 경쟁’도 대단했어요. 마지막 경기(9월 26일 삼성전) 첫 타석에서 바로 안타를 치고 누를 훔쳤어요.

마지막 경기를 제외하고도 도루왕을 놓고 매일 엎치락뒤치락했어요. 그런 기간이 꽤 길었어요. 스트레스도 받고 무척 힘들었죠. 특히 마지막 경기 때 몸이 너무 좋지 않았어요. 슬라이딩을 몰아서 하다 보니 허리가 좋지 않아 운동도 못 했거든요. 그래도 도루왕 하나는 무조건 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열심히 뛰었어요.

그 도루왕 타이틀로 이대호 선수의 타격 전관왕을 저지했어요.

그게 4번째 도루왕이었죠? 4년 연속으로 도루왕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큰 영광이에요. 건강함을 증명했다는 거잖아요. 정말 기뻤죠. 시상식에 갔더니, 타자들이 별로 없더라고요. 원래 타이틀 홀더들이 있어야 했는데, (이)대호 형이 거의 다 석권했으니까, 행사장이 조금 휑했죠.


#이적과 이적

2013시즌이 끝나고 FA를 신청했어요.

지금까지 뛰어온 시즌이 있기 때문에 이 자격을 얻게 된 거잖아요. 일단은 FA 신분이 됐으니 신청해야겠다고 판단했죠. 직전 두 시즌 정도 부진했지만, 이미 제 마음이 확고해서 결정하는 데 큰 고민은 없었어요.

그리고 KIA와 계약하게 됐어요.

솔직히 생각도 못 했어요. 신청하면서 걱정만 했지, 협상을 할 거라는 예상은 안 했거든요. 저는 ‘LG로 돌아가서 재협상을 하게 되겠구나’하고 있었죠. 그런데 KIA에서 빠르게 연락이 왔어요. 적극적이었죠. 덕분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엄청나게 신나고, 기쁘고, 또 설렜죠.

KIA로 이적하고 첫 시즌에 타격폼을 바꿨어요.

타격이 참 어려워요. 그렇게 연습을 해도 내 색깔에 맞지 않으면 안 되더라고요. 11년이나 해왔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팀을 옮기고 나선 좀 더 내게 맞는 편한 자세를 찾아보기 위해 고민했어요. 연습보다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자주 했던 것 같아요. 그랬더니 희한하게도 연습을 몇 번 하지도 않았는데 성적이 좋아지더라고요. (어떤 효과가 있었을까요?) 타석에서 불안함이 없어졌어요. 타격폼을 저한테 맞게 바꾸니 우선 자신감이 붙더라고요. 카운트가 몰려도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 하나가 매우 컸어요.

10년 넘게 해온 타격을 바꾸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아뇨,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일단은 기존에 성적이 좋지 않으니 어떻게든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바꿔볼까 계속 고민하다가 좀 우스꽝스럽지만 그 타격폼을 만들어냈죠.

타격폼을 따라한 선수도 있었나요?

연습할 때 많이 따라한다고 들었어요. 저와 비슷한 유형의 선수는 거의 다 해봤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선수는 이대형 선수만큼의 효과는 보지 못했군요.) 쉬운 폼이 아니니까요. 저도 그동안 해온 연습이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해온 게 없다면 변화도 아무 소용이 없었을 테니까요.


한 시즌 만에 KT 위즈로 이적해 신생팀의 고참 역할을 맡게 됐어요.

며칠 전부터 이야기는 들렸어요. 그래도 설마 했는데, KT로 가게 됐죠. 조금 예상하지 못한 이적이었어요. KT에는 베테랑이 몇 명 없어서 고참으로서 책임감이 더 크게 다가왔어요. 야구를 시작하고 처음 받는 느낌이었어요.

임시 주장도 맡았었는데 어땠나요?

저는 계속 못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조범현 감독님이 임명하셨죠. “너도 이런 걸 한번 해봐야 한다”라고 하셨어요. 감독님이 저를 좋게 봐주신 거죠. (신)명철이 형이 돌아올 때까지 한 달 정도 했는데, 부담감이 꽤 되더라고요. 대단한 건 아니지만 혼자 나름 신경을 썼어요.

2016시즌엔 192안타를 치면서 최다안타 3위로 타격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어요.

야구를 하다 보면 잘 풀리는 해가 있어요. 그 시즌은 다른 때보다 초반에 힘들었지만, 중반부터 잘 풀렸어요. 타격폼이나 기술에 변화를 준 건 없어요. 코치진이 저를 편하게 해준 덕분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승엽 위원으로부터 삼성 스마트 워치도 받았죠?

아, 한일 통산 597호 홈런이 수원 경기에서 나왔죠? 경기 전에 홈런공을 잡으면 경품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거 네가 주우면 나 줄래?”라고 코치님과 농담도 했어요. 홈런공은 외야수가 주울 수도 있으니까요. 정말 그림같이 타구가 날아가서 제게 오더라고요. 뭐 어떡해요. 그럼 제가 주운 거잖아요? (웃음) 그래서 다음 대구 원정 때 공식적으로 경품을 받았죠. (어떻게 했나요?) 아버지께 드렸어요.

2017년 십자인대 부상이 아쉬웠을 것 같아요.

어떤 선수든 부상은 힘들고 아쉬울 수밖에 없어요. 저는 다친 순간이 너무 중요한 시기여서 더 그랬어요.


#505도루, 1,603경기, 17시즌

지금까지 출전했던 1,603경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언제인가요?

2007시즌 처음으로 선발 출장했던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주전이 됐던 시즌이라 더 특별하죠. (그날의 기록도 기억나나요?) 4타수2안타를 쳤어요. 2루타도 하나 있던 거로 기억해요.

이대형 선수에게 도루란 무엇일까요?

제가 오랫동안 야구선수로서 있을 수 있게 해준 기술이죠. 제게는 참 특별한 것이었어요.

야구를 17시즌 동안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건강이 아니었나 싶어요. 다른 선수에 비해 건강하게 선수 생활을 했죠. 마지막에 큰 부상을 입긴 했지만 잔부상은 없었어요. 그래서 도루왕도 여러 번 할 수 있었고요. 선수 생활도 오래 할 수 있었고, 많이 뛰었어요. 부모님께 감사하죠.


이대형에게 야구란 무엇인가요?

제 인생이었죠.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시작한 사회생활도 야구였고, 지금까지도 해왔으니까요. 야구로 모든 게 시작된 셈이죠.

지금까지의 인생도, 앞으로의 인생도 응원해주는 팬에게 한마디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그동안 많은 응원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수 이대형은 은퇴했지만, 저는 앞으로도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자주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인터뷰의 시작은 가벼웠지만, 어느새 진지하게 답하는 이대형의 모습에 경험이 묻어나왔다. 답변이 너무 무겁지 않느냐는 너스레도 잊지 않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가장 잘하고, 많이 해왔던 야구를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금 그는 새로운 그라운드에서 흙을 파고 있다. 달리기 위해선 뒷다리를 고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그라운드는 지금껏 가보지 못한 길이겠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과감성과 자신감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그아웃 매거진 110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0년 110호(6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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