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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훈기의 스페셜야구]KBO야구로 이어진 댄 커츠와 고국의 인연

민훈기 입력 2020.05.22. 12:05 수정 2020.05.28.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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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간 이어진 인연과 사랑으로 KBO리그 전도사가 된 사나이

댄 커츠(40• Dan Kurtz)는 1999년에 대한민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습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밀러스빌 대학에 진학한 댄은 입양아 고국방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처음으로 서울과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당시부터 19년 전 이땅에서 태어난 지 4개월 만에 미국으로 떠났으니, 한국을 떠난 것이 자신의 의지 뭐 이런 표현조차 의미가 없었습니다. 태어나기만 했지 ‘KOREA’라는 나라는 그에게는 마냥 생소했습니다. 그때 단체로 버스를 타고 (나중에 자주 드나들게 될) 잠실야구장을 지나면서 안내자가 저기가 야구장이라는 설명을 들은 댄은 ‘아, 코리아에서도 야구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한국 살던 시절 큰아들 랜던과 함께 잠실 구장을 찾은 댄 커츠

댄을 처음 만난 것은 몇 년 전 잠실야구장이었습니다.

지금은 9살이 된 첫째 아들 랜던과 야구장을 찾았던 그는 마침 그날 경기 해설을 마치고 나오던 기자와 만나 담소를 나눴고, 당시 4살이던 랜던과 사진도 찍었습니다. MyKBO라는 인터넷 사이트와 SNS를 운영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2014년부터 서울 생활을 하던 댄과 그의 가족은 2016년 다시 미국으로 이주를 했습니다.

그후 SNS에서 가끔씩이나 소통하는 그런 사이였던 댄이 올해 태어나서 가장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코로나19의 어려운 시절에도 대한민국의 방역이 효과적인 결과를 나으면서 프로야구가 5월5일 개막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스포츠 유선방송인 ESPN에서 KBO리그 경기를 매일 중계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20년 가까이 KBO리그를 영어로 소개해온 댄 커츠는 어느 날 자고 깨니 미국의 모든 언론과 야구팬이 찾는 ‘한국 야구 전문가’가 된 것입니다. 전혀 의도치 않았고 상상도 한 적이 없지만, 단지 KBO리그와 한국 야구가 좋아서 꾸준히 운영해왔던 인터넷 사이트와 SNS 사이트가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기 시작했고, 연일 미국 주류 언론과의 인터뷰도 이어졌습니다.

댄은 21일 전화 인터뷰에서 “믿을 수 없는 꿈같은 일이 발생했다. 나는 단지 한국 프로야구가 좋았고, 영어로 알리고 싶은 마음에 꾸준히 사이트를 운영하고, SNS도 해왔다. 돈을 벌려고 한 적도 없고, 이익을 취할 생각도 전혀 없다. 그러나 이제 이렇게 미국 안방에서 ESPN를 통해 KBO리그 경기를 보게 되고, 많은 미국 팬들이 한국 프로야구에 큰 관심을 갖고, 또 미국 언론 등에서 나를 찾고 인터뷰를 요청하고 하는 것이 전부 꿈만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도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 한국 야구를 미국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너무 어려서 미국 가정으로 입양된 댄은 한국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나 친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등을 마음에 담고 살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정말 가정적이고 좋은 부모님의 커츠 가정에 입양이 된 것이 그가 태어난지 4개월 때였습니다. 위로는 형이 둘, 누나가 하나 있었고 엘살바도르에서 입양한 여동생까지 5남매가 함께 자랐습니다. 어려서부터 형들과 축구, 야구 등 스포츠를 즐겼는데, 선수가 될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가족들과는 어려서부터 함께 스키 여행을 즐겨 다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가족 중에서도 유독 댄만이 모든 스포츠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부모님과 형들도 스포츠를 좋아했지만 학교 스포츠를 응원하는 정도였는데, 댄은 가족 중 유일하게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열렬히 응원했고 특히 전설의 강타자 마이크 슈미트의 열성팬이었습니다. 필라델피아 76ers 농구팀도 빠지지 않고 응원했습니다.

미국 서부 시간으로는 새벽 2시30분에 주로 시작되는 KBO리그지만 눈을 떼지 못합니다.

1999년의 생애 첫 한국 방문은 그에게 강한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어디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친밀감과 사람들과의 유대감, 또 인연들 등에 매료된 댄은 2000년 교환학생으로 연세대학교에서 방송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의 젊은 학창 시절을 만끽하던 그에게 하루는 친구가 야구를 보러가자고 했습니다.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그 경기에서 댄은 타이론 우즈가 홈런을 터뜨리며 두산 베어스가 승리하는 장면들을 관전했습니다. 그날로 우즈와 베어스의 팬이 됐고, KBO리그 야구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1년간의 교환학생 기간이 지나고 미국으로 돌아가 대학을 졸업한 댄은 2002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강남의 학원과 초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일을 하면서 프로야구에 더욱 빠져들게 됐습니다. 스포츠를 워낙 좋아하는 그는 2002년 월드컵 수원에서 열린 미국 경기를 직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KBO리그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영어로 KBO리그를 소개하는 사이트 등이 전혀 없었습니다.

가끔 영자신문에 실리는 KBO리그 경기나 선수 기사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댄은 영어게시판을 만들어 KBO리그 정보를 원하는 외국인들에게 경기 시간이나 장소 등을 알려주는 일을 시작합니다. 단순히 취미이자 야구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교환학생 시절 만난 여자 친구와 결혼해서 가정도 꾸리게 됐습니다. 한국 이름이 신믿음, 영어 이름이 마리아인 부인은 한국 엄마와 필리핀 아빠 사이에서 한국에서 태어났고, 댄과 마리아는 이제 두 아들과 막내딸까지 세 아이를 가진 다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미군에 복무 중인 마리아가 2014년부터 한국에서 근무해 댄의 가족은 3년간 다시 한국에서 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가 댄이 아들 랜던과 함께 잠실야구장을 가장 자주 찾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요즘 댄은 미국 최고의 KBO리그 홍보대사입니다.

평소 하루 수십 명 정도가 찾던 그의 MyKBO.net 사이트는 2~3만 명이 폭주하는 탓에 서버가 다운되기 일쑤입니다. SNS 사이트도 수많은 미국 야구팬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요즘 살짝 줄기는 했지만 하루에도 ESPN, 월스트리저널, fangraphs.com 등 수많은 미디어에서 인터뷰 요청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ESPN의 KBO리그 중계에도 출연했고, 라디오 스포츠 뉴스나 프로그램 등에도 수차례 나갔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려움도 많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두 아들 랜던과 줄리안이 학교에 가지 못하니 하루 종일 홈스쿨로 아이들의 공부를 지도합니다. 3살 된 막내딸 캠런도 돌봐야 합니다. 그래도 요즘은 장모님이 한국에서 방문하셔서 한국 음식도 해주시고 육아에 도움을 많이 주신다고 합니다. 이런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KBO리그를 소개하는 일은 열심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국 팬들의 끝없이 밀려드는 질문에도 가능하면 모두 답을 해주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한국 야구팀, 팀 관련 상품 구입, KBO리그 통계 사이트 등 질문은 갈수록 다양하집니다. 특히 요즘에는 스포츠 토토와 유사한 미국의 베팅 사이트를 애용하는 사람들의 문의가 빗발치는데, 그런 질문은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MyKBO.net 서버가 다운되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여파로 경제적으로 쉽지 않은 요즘 상당한 돈을 들여 사이트 용량을 확장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던 와중에 희소식이 전해졌습니다.

KBO리그를 미국에서 알리는데 큰 공을 세워온 댄이 어려움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은 KBO 정운찬 커미셔너는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자는 지시를 했습니다. 그래서 KBO 사무국에서 서버 확장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댄은 “주변에서 사이트 확장이 절실하다며 모금 운동을 하라는 권유를 많이 받아 내키지 않았지만 모금 시작을 했었다. 그러나 아직 필요한 만큼의 액수가 모이지는 않고 있는데 마침 KBO 사무국에서 도움을 주겠다는 연락을 받아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KBO 류대환 사무총장은 “총재님 지시에 따라 내부 회의를 거쳐 KBO에서 당연히 지원을 해야 할 부분이라고 판단해 결정했고, 앞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지원하겠다.”라고 했습니다.

댄은 “이 사이트를 운영하며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전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한국 야구를 궁금해 하고 좋아하는 외국 팬들에게 계속 정보를 전해줄 것이다. KBO의 지원과 모금으로 모인 돈으로 사이트를 확충하고 만약 남는 액수가 있다면 전액 한국에 인연이 있는 고아원에 기부할 것이다. 아직도 많은 고아들이 있고 18세가 넘으면 지원을 못 받아 어려움이 많다.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2000년 처음 관전한 잠실구장 경기에서 베어스의 승리를 직관한 이래 두산 팬이 되었다는 댄. 이제는 미국에서 KBO리그의 전도사입니다. <이상 사진 댄 커츠 제공>

너무 어려서 떠난 한국이고 어린 시절 입양 가정에서 행복한 삶을 지냈기에 사실 조국이나 친부모님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댄 커츠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1999년을 계기로 대한민국과 인연이 이어졌고 당연히 친 부모님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된 것은 인지상정. 홀츠아동복지회의 정책이 바뀌어 정보를 얻을 수 있게됐고 자신의 서류상 한국 이름이 김인철이었다는 것과 친 부모님에 대한 정보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인 1979년 11월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기록이고, 어머니는 1959년생 이명숙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경찰에서도 더 이상의 정보가 없어 신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댄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홀로 자기를 키울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만약 친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지금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고, 미국의 가족들과도 늘 연락하고 왕래하며 잘 지내고 있어 원망이나 후회는 전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야구가 이어준 고국과의 인연에는 정말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MyKBO라는 이름을 어떻게 지었느냐고 묻자 “처음 이름을 지을 때 나만큼 KBO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고 자부했다. 그래서 ‘나의 KBO’라고 이름을 지었다”라며 웃었습니다. 적어도 영어권의 인물로 그만큼 KBO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큰 사람은 없었다는 그의 말에 공감이 갑니다. 그리고 20년 가까이 그 사랑이 유지되고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도 직접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도 아이들을 재우고 새벽에 KBO 경기를 봅니다.

‘어제 이대은의 불론 세이브에도 미국 팬들은 그 선수를 좋아한다. 두산 베어스가 막판 그렇게 무너질 줄은 정말 몰랐다. 미국 친구들이 왜 ESPN에서 롯데 경기를 안 보여주느냐고 성화다. 이학주의 그 멋진 수비를 봤나? 지금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팀은 NC 다이노스다......’ 그와 얘기를 나누다보면 KBO리그의 모든 순간들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있음에 놀라고, 또 그 말속의 KBO리그에 대한 뜨거운 열정에 나의 가슴도 함께 뜨거워집니다.

“처음엔 빠던이나 미국야구와 다른 문화에 눈길을 주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 미국 팬들도 포기하지 않고 극적인 승부가 많은 KBO리그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나와 대한민국의 인연을 더욱 밀접하게 만들어준 KBO리그 때문에 늘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미국 서부 워싱턴 주에 사는 댄은 오늘도 새벽에 방송되는 ESPN의 KBO 야구경기를 놓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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