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8점차 대패, 그래도 양현종은 덕아웃을 지켰다

조회수 2020. 6. 1.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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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초. 원정팀 트윈스가 활활 타올랐다. 볼넷 1개, 안타 5개를 몰아쳤다. 이닝 보드에 ‘5’가 새겨진다. 스코어 8-4는 금세 13-4가 됐다. 4점차도 숨 찼는데, 9점이라니. 사실상 승부는 여기서 끝이다. 양팀 라인업이 우수수 바뀐다. 대타, 대주자, 대수비들의 시간이다.

지고 있는 팀도 비슷하다. 굳이 아둥바둥할 필요없다. 힘을 아껴 후일을 도모하는 게 현명하다. 곧이은 7회말 반격 때다. 핵심 타자 (3번) 프레스턴 터커를 뺐다. 흔히 말해서 수건 던진 거다. 대타 문선재가 배트를 잡았다. 마침 무료했던 SBS Sports 중계팀이다.

“좌투수에게 강점이 있는 문선재 타자예요.” (이순철)

“양현종 선수를 상대로 강점을 가졌던 건 유명한 사실이잖아요. 홈런도 있고.” (정우영)

“그렇죠.” (이순철)

“KIA 타이거즈로 이적을 하면서 양현종 선수가 굉장히 환하게 웃기도 했는데.” (정우영)

그러자 큐 사인이 바뀐다. 카메라가 홈팀 덕아웃을 비춘다. 마침 화제의 주인공이 화면에 잡힌다. 후드 차림의 에이스가 클로즈업된다. 9점차에 표정이 밝을 리 있나. 담담한 얼굴로 그라운드를 주시하고 있다. <…구라다>가 어제(31일) 경기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장면이다.

SBS Sports 중계화면

파격적인 주장 임명 

2월 캠프 때다. 뜻밖의 발표가 있었다. 타이거즈의 인사 발령이었다. 주장에 양현종을 임명했다. 웬만하면 야수가 하는 게 보통이다. 투수는 흔치 않다. 훈련 루틴이 달라, 팀과 독립적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선발, 그것도 에이스에게 맡기는 경우는 더 드물다. 타이거즈만 해도 1998년 이강철 이후 22년 만이다.

방식도 남다르다. 요즘은 민주화 시대 아닌가. 선수들 의견을 모아 정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번엔 아니다. 맷 윌리엄스 감독이 친히 나섰다. 역시 아메리칸 스타일이다. 트럼프 시대의 ‘톱 다운(Top Down)’ 방식 말이다. 인사권자의 설명이 단호하다.

“양현종은 모든 면에서 프로페셔널 하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훌륭한 리더십을 갖춘 선수다. 본인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팀의 승리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선수다. 가장 이상적인 캡틴이다.”

역시 메이저리그 올해의 감독 출신이다. 천부적인 눈썰미다. 그러고 보니 맞다. 팀 합류 며칠 만에 김선빈의 열외를 알아채지 않았나. “Where is 선빈?” 이름까지 정확하게 말이다.

“젊은 선수들이 꼭 배웠으면 좋겠다. 양현종의 공격적인 경기 운영과 템포 조절 같은 것은 최상위 레벨이다. 경기 외적으로도 보고, 느끼는 게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긴 뭐. 다른 팀에서도 그런다. 요즘 가장 잘 나간다는 구창모(다이노스)의 코멘트다. “양현종 선배님의 경기는 꼭 챙겨본다.” 어디 공 던지는 것만 보겠다. 마운드에서의 태도 하나하나가 체크 포인트다. 이를테면 롤 모델인 셈이다.  

첫 완봉 때 떠올린 이름 호세 리마

그게 벌써 10년 전이다. 2010년 6월 2일이었다. 22살 투수가 완봉승을 거뒀다. 생애 처음 올린 개가다. 인터뷰 중 이런 질문이 나왔다.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생각나는 사람이 누군가.’ 잠시 머뭇거리던 대답에 스탠드가 숙연해졌다. “호세 리마”라는 이름이 나온 탓이다. 며칠 전(5월22일) 심장마비로 떠난 옛 동료다.

(양현종) “오늘 운이 참 많이 따랐다. 아마도 리마가 하늘에서 도와줘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울먹이며 꺼낸 얘기였다. 그리고 5년뒤 134구 승리 때도, 7년뒤 100승 때도…. 인터뷰에서 어김없이 그의 이름을 거론됐다.

둘의 만남은 2008년이다. 당시 팬들이 ‘불현종’이라고 부를 때다. 불펜 투수로 나가 불쇼를 담당한 탓이다.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그런 혹독한 시절 살뜰히 챙겨준 게 리마였다. “난 성적도 나쁜 용병인데, 이렇게 웃으며 지낸다. 내가 불안하면 모두가 불안하다. 성적이 안 나더라도 항상 밝게 지내야한다.” 한때 메이저리그 20승 투수다. 그런 커리어로 투수 수업을 몸소 보여줬다.

결국 그는 시즌 중간에 퇴출됐다. 방출 통보에 본인보다 슬퍼한 게 (리마의 호칭) ‘베이비’였다. 클럽 하우스 빈자리를 보며 눈물을 보였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커쇼와 오버랩 되는 리더십

리마와 베이비의 우정에 오버랩 되는 에피소드가 있다. 클레이튼 커쇼와 구로다 히로키의 사연이다.

둘은 다저스 시절 유명한 절친이다(13살 차이). 어린 커쇼가 히로시마 출신의 많은 것을 배웠다. 야구를 대하는 진지하고, 겸허한 태도. 그리고 오늘날의 그 복잡하고, 엄격한 루틴도 모두 구로다의 영향으로 알려졌다.

구로다의 LA 마지막 경기 때다(2011년). 그러니까 다저 스타디움 고별전을 앞두고다. 당시 커쇼는 이닝 제한이 걸린 상태였다. 시즌 동안 233이닝이나 던진 탓이다. 감독, 의료 스태프로부터 절대 공을 만지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날이 날이다. 절친의 고별전을 앞두고 캐치볼 상대를 자청했다. 왜냐하면 늘 하던 일이니까. 주변에서 펄쩍 뛰었다. ‘어깨 조심해야지. 공 만지지 말라니까.’ 하지만 아랑곳 없었다. “히로(구로다)의 마지막 경기다. 내가 해주는 게 당연하다.” (커쇼)

떠난 사람의 회고다. “커쇼가 끝까지 가지말라고 붙잡았다. 구단에도, 선수단 미팅 때도 계속 그렇게 얘기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떠나야했다. 너무 마음이 아파 클럽하우스에 혼자 남아서 울기도 했다.”

출처 = 존 수 후의 LA 다저스 사진 블로그

비단 동료와의 각별한 유대만이 아니다. 양현종에서 커쇼의 오버랩은 또 있다. 다저스 중계 때면 자주 느끼는 점이다. 바로 커쇼의 존재감이다. 그는 자신의 경기가 아니더라도 늘 덕아웃을 지킨다. 편하고, 조용하고, 쾌적한 곳도 많을텐데. 언제나 맨 앞, 그라운드 가까운 곳은 그의 자리다. 마치 그 곳의 리더임을 인증하는 것 같다.

어제(5월 31일) 챔피언스 필드도 그랬다. 마지막 수비를 마칠 때 스코어는 4-13이었다. 완전한 파장 분위기였다. 그러나 양현종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8회를 맡은 후배(문경찬)의 등을 다독여줄 때까지. 흐트러짐 없는 진중함이 가득했다. 바로 리더의 모습이었다.

SBS Sports 중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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