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김광현과 캐치볼 파트너

조회수 2020. 3. 30.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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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수상 소감이 많다. 그 중 하나다. 2014년 연말 시상식이었다. 샌디 쿠팩스가 수상자를 무대로 불렀다. 24살의 클레이튼 커쇼였다. 21승 3패, ERA 1.77을 기록했던 시즌이다. 사이영상과 MVP를 함께 받았다.

마이크에 몇몇 이름들이 언급됐다. 보통이라면 사장, 감독, 코치 등등이었으리라. 하지만 커쇼 아닌가. 그는 다르다. 가장 먼저 나온 건 구단 스태프들이다. 우리 같으면 현장 직원이다. "그들은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죠. 여러분 덕분에 우리가 게임에 전념할 수 있는 겁니다. 큰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전력분석팀, 트레이닝팀에게도 감사함이 이어졌다.

잠시 소감이 멈췄다. 눈물 때문이다. "사실은 제가 어제 아빠가 됐거든요. (아내) 엘렌은 이 모든 것을 가치있게 만들어준 사람입니다." 계속된 고마움은 뜻밖에도 카디널스를 향해서였다. "그들 덕분에 겸손함을 잃지 않게 됐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죠." 그 해 가을에도 2패를 안겨준 팀이다.

하나하나 주옥같은 대사들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구라다>의 기억에 남는 게 있다. 동료 투수 댄 해런에 대한 감사다. "댄, 당신과의 캐치볼은 언제나 즐거웠어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죠. 그걸 통해 당신이 얼마나 좋은 투수인 지 깨달았어요."

해런은 그 무렵 곤란한 처지였다. 다저스에서 갑자기 말린스로 트레이드 됐기 때문이다. 한때 여기에 반발해 은퇴할 거라는 얘기도 나왔다. 커쇼의 소감에는 그런 안타까움도 묻어 있었다. 캐치볼 파트너를 향한 애잔함이다.

보루키의 깨달음

요즘은 (스포츠) 뉴스가 궁하다. 어디 야구 뿐인가. 온 세상 스포츠가 멈춘 것 같다. 미국의 어느 신문은 섹션 첫 페이지를 백지로 발행했다. 한 경기도 없었다는 슬픔을 담았다. 그러던 차다. 뭔가 움직임이 포착됐다. 플로리다 모처의 캠프다.

mlb.com의 보도였다. 블루제이스의 '영건' 라이언 보루키 소식이다. 그는 캠프 초반에 투구를 중단했다. 팔꿈치 통증 탓이다. 휴식을 취한 뒤 상태가 좋아졌다. 이제 롱토스가 가능하다. 며칠 전이다. 훈련장에 나갔다. 캐치볼을 위해서다. 그의 상대는 '코리안 에이스'였다.

어느 정도 거리에서, 얼마나 오래 했다는 내용은 없다. 다만 보루키는 여기서 깨달음을 얻었다. mlb.com이 전한 코멘트다. "정말 흥미로운 걸 느꼈어요. '이렇게 멋지고, 편안하게 캐치볼을 할 수도 있구나' 하는 거죠. 이제껏 내 방식은 너무 과했던 것 같아요. 통증에도 영향이 있었겠죠. 그는 80% 정도의 힘만 쓰더라구요. 나도 이제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예요."

기사에는 꽤 많은 반응이 있었다. 개중에 용감 발랄한 댓글러도 등판했다. '사실은 강력하게 한건데...물론 니가 힘빼고 던졌다 생각하니...그렇다치자'.

대부분 미국식은 공격적이다. 마치 실전 투구처럼 맹렬하다. 온 몸의 힘을 실어 던진다. 그래서 에이스급 투수들의 캐치볼은 장관을 이루기도한다. 동양 스타일은 반대다. 과하지 않게, 밸런스를 잡는 정도에서 이뤄진다.

김광현…정우람…김태훈

# 2015년 봄이다. 일본 오키나와에 와이번스 캠프가 열렸다. KK가 27살 때다. 좌완 에이스는 탐구열이 높았다. 그 무렵 연구 대상은 체인지업이다. 가정 교사가 붙었다. 룸메이트였던 정우람이다. 캠프 내내 캐치볼 파트너가 돼줬다.

"우람이 형하고 연습하니까 너무 좋다. 항상 잘 가르쳐준다. 캠프에선 불펜 피칭보다 캐치볼을 더 많이 한다. 불펜 피칭 200~300개 정도하면, 캐치볼은 1000~2000개씩 던진다. 그러다 보니 공부도 많이 된다. 가볍게 던지는 데 우람이 형이 이것저것 많이 도와줬다."

# 2년 뒤다. 2017년 와이번스의 가을 캠프다. 재활 중이던 KK도 참가했다. 후배 하나가 따라붙었다. 김태훈이다. 이제 막 꽃 피우기 직전이다. "형, 저랑 캐치볼해주세요." 당돌하게도 선배를 찜했다. 그리고는 한달 내내 파트너로 따라다녔다. 후배의 코멘트다.

"슬라이더를 배우기 위해 광현이형에게 파트너 해달라고 졸랐다. 나도 원래 슬라이더를 던지던 투수라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형의 조언대로 하니까 습득이 훨씬 빨랐다. 결국 그게 신의 한 수가 됐다. 그런데도 광현이 형은 생색 한번 안냈다."

선배와 후배가 짝이 된다. 가르침과 배움이 오간다. 회전과 각도를 느끼고, 익힌다. 주고 받는 건 공만이 아니다. 서로의 마음과 정서의 교감이다. 팀이고, 동료라는 유대감이다.

새로운 캐치볼 파트너를 기다리며

홀로 남겨졌다. 낯선 땅이다. 갑갑한 것 투성이다. 무진 애를 썼지만 남은 게 없다. 혼신을 다한 훈련이었다. 덕분에 쾌조의 출발이었다. 하지만 이젠 부질없다. 개막이 멀어지며 상황은 불리해졌다. 급기야 우울함 한 보따리가 폭발했다. 본인 SNS를 통해서다.

“나한테만 불행한 것 같은 시기. 이 또한 지나 가리라 수없이 되뇌어도 위로가 되질 않는다. (중략) 내가 다른 사람보다 많은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떠한 시련이있어도 잘 참고 견뎌낼 줄 알았다. 힘들다."

다행히 결론에는 다짐과 희망을 섞었다. “자만 할 수 있었던 나에게 채찍을, 나의 멘탈을 조금 더 강하게 키우는 기회인 것 같다. 앞으로 다가올 더 큰 행복과 행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 맞이 할 준비를 하려고 한다. 지금은 그게 전부인것 같다.”

                              사진=김광현 인스타그램 캡처

그럼에도 안타까움은 어쩔 수 없다. 며칠 전 올린 사진 한 장 때문이다. 배경은 텅 빈 그라운드다. 어딘가로 향해 힘껏 공을 던진다. 상대는 보이지도 않는다. 선수들은 거의 모두 철수했다. 얼마 전부터는 감독, 코치들도 나오질 않는다. 캐치볼 상대조차 난감해진 셈이다. 자조적으로 "벽치기나 해야겠나"는 말까지 할 정도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제 플로리다를 떠난다. 홈 구장이 있는 세인트루이스로 간다. 더 이상 외롭지 않아도 된다. 곧 가족들도 만날 것이다. 안식처에서 차분하게 개막을 맞을 것이다. 새로운 캐치볼 파트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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