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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김광현과 미끄러운 공

백종인 입력 2020.02.21. 06:46 수정 2020.02.2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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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불펜 피칭이 끝났다. 애써 밝은 표정이다. 그런데 뭔가 찜찜하다. 공 받아준 포수와 3자 대면이다. 통역을 통해 몇 마디가 오갔다. 꽤 진지한 분위기였다. 나중에 취재진들이 물었다. ‘무슨 얘기였냐.’ 돌아온 대답이었다. “공 회전수 때문이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투수 자신의 느낌이 별로였다. 그래서 불펜 포수에게 물었다. ‘공이 어떤 거 같냐.’ 돌아온 감상평은 냉정했다. ‘회전이 덜 먹는 것 같다.’ 뭔가 날카로움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우리 식으로는 ‘볼끝이 무디다’는 표현과 비슷하다. 던진 사람도 마찬가지다. 석연치 않았다. 손 끝에 걸리는 감각이 문제였다.

그리고 며칠 뒤다. 그 때도 비슷했다. 첫 라이브 피칭 날이다. 실제 타자를 상대하는 투구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 우르르. 기자들이 몰렸다. 구단 고위층도 집결했다. 존 모젤리악 사장, 마이크 거쉬 단장이 선글라스 너머로 지켜봤다.

타자 리스트는 3명이다. 폴 골드슈미트, 야디어 몰리나, 맷 카펜터 같은 간판들이다. 25개를 던졌고, 대체로 무난했다. 하지만 장타도 허용했다. 물론 홈런의 주인공 골디(골드슈미트)는 칭찬을 앞세웠다. “처음 상대했는데 투구폼이 아주 부드럽다. 직구와 슬라이더가 돋보였다.”

그러나 당사자는 심드렁한 표정이다. 역시나 기자들 앞에서는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타자들의 힘이 달랐다. 공을 보는 눈들도 좋은 것 같다. 스트라이크를 더 던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쉽다.” 그러면서 걱정거리 하나를 꺼냈다. 공에 대한 얘기였다.

“아직 메이저리그 공인구에 적응을 못해서 그런 것 같다. 회전이 덜 먹는 것 같다. 내 공은 내가 가장 많이 보지 않았겠나. 보는 것보다 브레이킹이 덜 된다. 꺾이는 속도나 무브먼트가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다. 그게 공의 문제인지, 내 몸상태가 올라오지 않아서인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천체물리학 박사가 쓴 기사

비슷하다. 아시아 투수들은 미국에서 변화를 만난다. 특히나 몇가지는 환경적인 요인이다. 극복해야 할 큰 장애 요소들이다. 장거리 이동과 시차, 5일 로테이션, 딱딱한 마운드, 그리고 공의 문제다.

한국이나 일본 공은 투수 친화적이다. 표면이 촉촉하고, 실밥이 도드라졌다. 손에 착착 감기고, 끝에 채는 감이 우월하다. 던지기 편하고, 회전수를 먹이는 데 유리하다. 반면 메이저리그 다르다. 악명높은 공인구를 가졌다. 표면이 미끄럽고, 실밥이 무던하다. 상대적으로 걸리는 느낌이 적다. KK가 고개를 갸웃거릴만하다.

게다가 최근의 추이도 무시할 수 없다. 플라이볼 혁명과 연관성이다. 홈런의 폭발적 증가에 대한 연구다. 전문가들은 꾸준히 공의 문제를 지적했다. 반면 리그 사무국은 이를 부인했다. 심지어 ‘홈런위원회’라는 조사 기구도 만들었다.

관련해 흥미로운 기사가 있었다. <디 애슬레틱>의 작년 6월 보도다. ‘올해 공인구는 예전 것과 다르다. 4가지 변화가 있었다. 크기는 비슷했다. 반면 실밥의 높이가 낮아졌고, 실의 굵기도 가늘어졌다. 가죽이 더 미끄럽고, 공은 더 완전한 동그라미 형태가 됐다. 이런 것들이 폭발적으로 홈런을 늘린 요인들이다.’ 글을 쓴 사람은 메레디스 윌리스다. 천체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스포츠 데이터 전문가다.

투수들은 불만이다. 공은 다루기 힘들어졌다. 타구의 출구속도가 같아도 비거리는 증가하게 됐다. 홈런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더구나 태평양을 건넌 루키 투수에게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휴스턴의 에이스 콜과 벌랜더…회전수에 대한 의심

요즘 우주인들(애스트로스)이 동네북이다. 휴스턴의 연관 검색어는 휴지통이 됐다. 여기서 채이고, 저기서 까인다. 세상 욕은 모두 그들 차지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2년 전에도 사건이 하나 있었다. 구설수에 오른 건 투수들이다. 에이스 게릿 콜, 그리고 저스틴 벌랜더였다.

누군가 SNS에서 한 마디했다. 카일 버디라는 세이버매트리션이다. ‘콜이 휴스턴 가서 좋아진 이유가 날씨 때문이라고? 천만에 내가 말해줄까? 그건 파인 타르(pine tar) 때문이야.’ 끈적이는 송진을 이용했다는 말이다.

버디의 추종자가 있었다. 인디언스의 투수 트레버 바우어다. 게릿 콜과는 UCLA를 함께 다녔다. 그가 댓글을 달았다. “내 공의 분당 회전수(RPM)는 2250 정도다. 그런데 파인 타르를 쓰면 훨씬 좋아진다. 한 400rpm 정도 늘어나는 것 같다.” 콜과 벌랜더는 갑자기 회전수가 증가했다. 공교롭게도 휴스턴으로 이적한 이후다. 바우어가 한 마디 보탠다. “스테로이드? 파인 타르가 훨씬 효과적이야.”

메이저리그 공은 그냥 쓰지 못한다. 미끄러움 때문이다. 경기전 일일이 진흙을 발라준다. 각 팀마다 전문가가 고용됐다. 러빙 머드라는 특별한 흙을 적당히 문지른다. 아무데서나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뉴저지 남부 델러웨어강에서 채취한다. 상류 어디라고만 알려졌다. 정확한 위치와 채굴 방법은 제조사의 1급 기밀이다.

물론 그걸로 충분치 않다. 대부분 투수들은 첨가제(?)를 쓴다. 아시다시피 파인 타르는 규정 위반이다. 적발되면 퇴장과 징계를 받는다. 그 외에 다른 걸 구해야한다. 보통은 침과 땀, 로진을 섞는다. 그걸로 적당한 끈적임을 얻는다. 선크림(자외선 차단제)도 활용된다. 이런 방법은 주로 선수들간에 구전된다.

몬스터도 초기에 겪은 고충

몬스터의 이적 초기다. 그러니까 2013년 이맘 때다. 애리조나의 다저스 캠프는 썩 밝지 않았다. 담배와 달리기, 몸무게. 그런 것들로 수군거림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 고민은 따로 있었다. 역시나 공이었다. “미끄러워요. 힘들어요” 그런 멘트가 미디어를 통해 전해졌다.

첫 시범 경기에서 홈런을 맞았다. 체인지업을 통타당했다. 2이닝 4안타에 2실점이었다. mlb.com은 이 부분을 지적했다. 당시 보도 내용이다. ‘Ryu가 체인지업을 마음먹고 던졌다. 하지만 정확하게 맞는 그립을 쥐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본인도 비슷한 멘트를 남겼다. “실밥 모양이 많이 달라 공이 더 미끄럽다.”

한 매체는 용품사 전문가의 말도 인용했다. “(KBO리그에서 쓰는) 한국산 공은 실밥이 표면에서 1mm 정도 솟아있다. 반면 미국 공은 0.6mm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낙관적인 KK

작년 5월이다. 시애틀 투수 한 명이 구설수에 올랐다. 양키스전 중계 카메라에 잡힌 장면 때문이다. 클로즈업 화면에 커다란 얼룩이 보였다. 모자 챙 안쪽이었다. 투구 직전 손이 자꾸 가는 곳이다. 사람들은 그걸 파인 타르의 흔적이라고 의심했다. 용의자는 일본인 투수 기쿠치 유세이였다.

혹자는 포크볼을 많이 던지는 투수가 더 불리하다고 한다. 커브나 체인지업, 슬라이더 같은 변화구 구사가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이라고 봐야 옳다. 패스트볼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어쨌든 마찰력과 실밥의 역할은 마지막 공을 채는(또는 때리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공인구 문제는 분명 고민이다. 하지만 KK는 베테랑이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다. WBC, 올림픽 등 각종 국제대회 때마다 부딪힌 일들이다. 먼저 낙관론을 앞세운다. “우선은 몸 상태가 너무 좋다. 팔이 괜찮아서 투구 밸런스만 잡으면 된다. 공 문제는 적응될 것이다. 계속 캐치볼을 하면서 감각을 익히고 있다. 이곳 선수들에게 도움도 받는다. 로진백을 어떻게 만져야하고,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지 알아보고 있다.”

특유의 해맑은 모습이다. “이맘 때는 늘 그렇다. 근심이 많은 시기다. 문제를 찾아내서 고치고 보완하는 일반적인 과정이다. 큰 걱정은 하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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