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컨닝이 다저스 패배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조회수 2020. 1. 18.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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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 = 게티이미지

추운 겨울이다. 요즘 메이저리그가 특히 그렇다. 매서운 칼바람이 분다. 사방이 꽁꽁 얼어붙었다. 사인훔치기 탓이다. 그들은 치팅 스캔들(cheating scandal)이라고 부른다. 치팅은 곧 컨닝이다. 시험 때 슬쩍 엿보는 ‘기술’ 말이다.

이번 사건에는 여럿이 등장한다. 핵심 인물들은 조치됐다. 모두 현직에서 물러났다. 감독 3명에 단장 1명이다. 사무국의 징계도 받았다. 또는 곧 받을 예정이다.

그 중에서 인상 깊은 인물이 있다. 애스트로스의 (전) 감독 AJ 힌치다. 자리에서 물러나며 이런 얘기를 남겼다. “나는 감독으로서 선수들과 스태프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책임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후회스럽고 죄송한 마음 뿐이다. 실수에 사죄한다. 이번 일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쿨하게 인정하고 퇴장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놀라운 반전이 있다. 정작 그 자신은 컨닝을 역겨워했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은 명확하다. 다름 아닌 사무국의 사건 조사 보고서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런 대목이 나온다. ‘어느 날이었다. 힌치가 배트를 들고 덕아웃 뒤로 달려갔다. 거기서 설치된 (사인훔치기용) 모니터 2개를 박살내버렸다. 몹시 화가 나고, 못마땅한 짓이라는 신호였다.’

그런데도 부정 행위는 계속됐다. 벤치코치(알렉스 코라)와 선수들은 멈추지 않았다. 힌치는 이 부분을 후회했다. “내가 관여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보고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걸 막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커미셔너의 징계 사유도 이 점이다. 최소한 단장, 사장에게로 이 문제를 가져갔어야했다는 지적이다.

                                         사진제공 = 게티이미지

치팅 스캔들의 양면 - 피해자의 억울함

치팅 스캔들은 양면을 가졌다. 한 쪽 면은 ‘잘못’이다. 가해자는 비열했다. 거기에 대한 비난과 비판은 마땅하다. 그런가 하면 반대편도 존재한다. ‘억울함’이다. 이건 피해자의 몫이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2년을 내리 당했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가정법은 많은 상상을 제공한다. 혈압이 오르고, 울화가 치민다. 뒷목을 잡아야 간신히 버틴다.

야구는 타이밍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시의원이 등판했다. LA에 지역구를 둔 길 세디요라는 사람이다. 그가 결의안을 상정하겠다고 밝혔다. 내용이 다소 급진적이다. ‘로스앤젤레스 시의회가 MLB 사무국에 2017년과 2018년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다저스에 시상할 것을 촉구하도록 하자.’ 그러니까 의회가 나서서 빼앗긴 챔피언 반지를 되찾아 오자는 말이다.

세디요 의원은 단숨에 주목받았다. 여러 매체가 마이크를 들이댔다. “이건 정의와 공정성의 문제다. 2017년, 2018년 최고의 팀은 어딘가. 바로 다저스였다. 그들은 속임수를 쓴 팀에게 당했다. 타이틀은 다저스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결의안 통과를 확신하는 표정이다.

찬성과 제청의 박수도 있다. 하지만 싸늘한 여론도 못지않다. 야후스포츠는 냉소적이었다. “이해는 되지만 현실성이 너무 떨어진다. 비현실적인 제안일 뿐이다. 사인 훔치기가 없었다면 다저스가 우승했을 것이라는 얘기는 논리적이지 않다. 불가능하고 의미없는 결의안이다.” 게다가 한 마디를 보탰다. “몇 년 지난 (우승) 티셔츠와 모자를 쓰고 퍼레이드를 한다는 게 즐거운 일인가? 그런 식으로 한을 풀고 싶겠나? 상상해보라.”

반론 : 사인 훔치기는 극복할 수 없는 게 아니다

이번 스캔들은 2건이다. 용의자도 둘이다. 애스트로스와 레드삭스다. 범행 내용은 거의 일치한다. 절도다. 훔친 것은 사인이다. 도루, 스퀴즈, 픽오프…. 야구에는 무수한 수신호가 있다. 그 중에 투수의 구질을 컨닝했다. 딱 2분법이었다. ‘빠른 볼이냐, 변화구냐.’

일반적인 인식은 그렇다. 매우 결정적이라고 여긴다. ‘무슨 공인줄 알고 치면 얼마나 쉽겠냐.’ 물론 맞는 말이다. 훨씬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아니, 힌트 정도일 지 모른다. 그래도 약간의 차이가 상당한 효과로 나타날 수 있다. 특히나 월드시리즈 같은 중요한 게임에서는 더 그럴 것이다.

그러나 <…구라다>는 반론한다. 늘 그렇지는 않다. 경우에 따라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몇가지 사례를 제시한다. (여기서 강조할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이번 사인훔치기가 대단치 않은 일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꼭 전자기기를 이용한 컨닝만 있는 게 아니다. 투구폼의 차이를 체크하기도 한다. 티핑(tipping)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 경우는 불법이 아니다. 유명한 사례가 있다. 옥타비오 도텔의 케이스다. 그는 특이한 습관을 가졌다. 슬라이더를 던질 때면 혀를 내민다.

양키스 타자들은 이걸 모두 알고 있었다. 처음 발견한 데릭 지터가 가르쳐준 덕이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다. 상대 전적은 비참할 지경이다. 통산 13타수 1안타였다. 삼진을 5개나 당했다. 힌트를 받은 마쓰이 히데키도 고개를 흔든다. “오히려 안좋을 때도 있어요. 타석에서 혀만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괜히 집중력만 떨어지죠.”

샌디 쿠팩스도 그랬다. 슬라이더를 거의 사이드암처럼 던졌다. 랜디 존슨도 비슷하다. 글러브 벌리는 각도로 짐작이 가능했다. 그럼 뭐하나. 아무도 못쳤다.

                                사진제공 = 게티이미지

훔치기는 스스로 중단됐다 - 효과가 별로여서

작년 월드시리즈 때다. 워싱턴(2승3패)은 막판에 몰렸다. 6차전 선발은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였다. 그런데 1회부터 흔들렸다. 2점 홈런(알렉스 브레그먼)을 맞고 휘청했다. 이닝이 끝나고 투수 코치가 호출했다. 폴 멘하트 코치는 한가지를 지시했다. “넌 손이 커서 문제야. 슬라이더 잡을 때 글러브가 보통 때보다 많이 움직여.”

스트라스버그는 2회부터 달라졌다. 공을 잡을 때마다 글러브를 흔들었다. 티핑을 혼란시키려는 의도적인 동작이었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이후 7.1이닝을 3안타 무실점으로 막았다. 승리투수가 되면서 시리즈를 7차전으로 안내했다.

반대의 예가 있다. 2017년 다저스의 다르빗슈 유다. 그는 월드시리즈에서 KO됐다. 7차전에는 2회까지 5점을 주며 탈탈 털렸다. 스트라스버그나 다르빗슈가 상대한 팀은 같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였다. 컨닝 사건의 용의자다.

MLB 사무국의 조사 보고서 중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휴스턴이 어느 시점부터 훔치기를 멈췄다는 대목이다. 2018년 시즌 중반 쯤이다. 이유가 중요하다. 타자들 사이에서 회의론이 일었던 탓이다. 그만큼 효과가 대단치 않았다는 얘기다. 이후로는 쓰레기통이 평화를 찾았다. 그리고는 위반 사항이 없었다는 게 보고서의 내용이다.

2018년 경우도 그렇다. 레드삭스가 혐의를 받는 방법은 훨씬 소극적이다. 주자가 2루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월드시리즈에 사용했다치더라도 효과는 훨씬 제한적이었다. 무엇보다 당시는 두 팀의 전력 차이가 크게 두드러졌다.

                  사진제공 = 게티이미지

물론 맞다. 부정한 방법으로 사인을 훔치는 건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그걸 두둔할 이유는 전혀 없다. 다만, 그걸로 인한 차이가 극복할 수 없는 문제는 아니라는 의미다. 전략적으로 충분히 준비하고, 대비해야한다. 어느 리그라도 마찬가지다. 챔피언십을 가리는 경기를 앞둔 팀이라면 당연하다. 훨씬 철저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다. 투포수간 사인도 이닝마다 바꾸기도 한다. 이런 류의 일들이 역사적으로 워낙 많기 때문이다. 우승 반지를 끼려면 의당해야 할 일이다.

“속았다.” “당했다.” 그런 푸념은 프로의 일이 아니다. 패배의 변명이 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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