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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훈기의 스페셜야구] 양키즈 여성 타격 코치 레이첼 발코벡

민훈기 입력 2020.01.29. 10:55 수정 2020.01.29.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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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라는 험로에 도전하는 그들의 도전에 쏟아지는 관심과 아직도 머나먼 길

지난 칼럼에서는 이달 중순 MLB 최초의 여성 풀타임 코치로 임명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앨리사 낵킨 코치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앞선 작년 11월 또 다른 여성이 뉴욕 양키즈의 마이너리그 타격 코치에 임명됐습니다. 여성이 프로야구 팀의 풀타임 타격 코치가 된 것 역시 역대 최초의 기념비적인 일이었습니다. 레이첼 발코벡(33)이 그 주인공입니다.

남녀를 떠나 메이저리그 산하 프로야구 팀 타격 코치가 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물며 프로 야구선수 생활을 한 적도 없는 여성이 프로 팀 타격 코치가 된다? 그 여정이 얼마나 힘겨웠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어느 정도였는지는 겪어본 당사자가 아니라면 그저 짐작만 할 뿐입니다. 레이첼의 프로야구 팀과의 인연은 2012년에 시작됐습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로우 싱글A 존슨시티 팀의 ‘임시직’ 체력, 컨디셔닝 코치로 그녀를 고용한 것입니다.


 레이첼 발코벡은 여성 최초의 타격 코치로 뉴욕 양키즈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서 올 시즌 선수들을 지도하게 됩니다. @Balkovec SNS  


‘고작 임시직 코치?’라고 반응할 수도 있지만 레이첼에게는 거기까지 가는 길도 멀고도 험하기만 했습니다.

미국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에서 태어나 자란 레이첼은 스쿠트고교 시절 소프트볼 팀 스타이자 축구, 농구도 학교 대표로 뛴 만능 스포츠 소녀였습니다. 클레이턴대학 소프트볼 팀 포수로 야구 장학금을 받고 진학한 그녀는 텍사스대학으로 편입해 역시 포수로 활약했습니다. 운동학을 전공한 레이첼은 2009년 졸업 후 루이지애나 주립대 대학원에서 운동학 석사를 받았습니다. 열심히 선수 생활을 하고 최선을 다해 공부도 했지만 숙원이던 프로야구팀 코치 취직의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대학이나 학원 스포츠도 ‘여성 레이첼 발코벡’의 야구팀 코치직 지원에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습니다.

2013년 피닉스에서 낮에는 의류점에서, 저녁에는 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레이첼은 MLB를 포함해 15개 팀에 이력서를 보냈습니다. 답은 한 군데서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력서의 이름을 레이첼이 아니라 ‘레이’로 바꾸고, 대학 1부리그 여자 소프트볼 포수라는 이력에서 ‘여자’를 뺐습니다. 그리고 다시 여러 곳에 이력서를 보내자 이번에는 그녀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전화 목소리를 듣고는 일부에서는 여자팀 코치 자리 인터뷰를 해보라고 하는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자기 팀에서는 여자 코치를 고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회의 문을 두들겼고, 마침내 2012년 그 문이 임시로나마 열렸습니다.

프로야구의 가장 낮은 레벨에 가까웠지만 카디널스 로우싱글A 존슨시티에서 그녀는 열심히 커디셔닝 코치직을 수행했을 뿐 아니라, 이 팀이 속한 아팔라치안리그의 ‘올해의 컨디셔닝 코치’상을 받았습니다. 풀타임 코치도 아닌데 이 상을 받았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임은 물론이고, 그녀의 노력과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2014년 그녀는 마침내 그 팀의 정식 컨디셔닝 코치가 됐습니다. 이제 그녀의 이름 앞에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프로야구에서 풀타임 여성 컨디셔닝 코치가 임명된 것은 그것이 사상 처음이었습니다.

2016년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발코벡에게 라틴아메리칸 선수 전담 체력, 컨디셔닝 코디네이터 직을 제안했습니다. 그녀는 아직 서툴던 스페인어를 갈고 닦으며 새로운 영역을 넓혀 나갔습니다. 메이저리그 레벨에서 여성이 그 직책을 맡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2018년에는 휴스턴 더블A 코퍼스 크리스티훅스의 정식 컨디셔닝 코치로 승진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코치직까지 이제 단 두 단계만 남았습니다. 휴스턴 구단에서의 경험은 남달랐습니다. 다양한 데이터와 통계 그리고 과학의 조합으로 새로운 야구의 풍토를 가장 빠르게 받아들이고 발전시킨 팀이었습니다. 그 시스템에서 컨디셔닝 코치로 일하면서 발코벡은 습자지처럼 새로운 지식을 빨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만난 인연이 결국은 양키즈 취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인생에서 능력만큼이나 인연과 타이밍도 중요함은 분명합니다. 카디널스에서 그녀를 임시직으로 고용한 것도 인턴 시절의 노력이 어느 정도 작용했습니다.)

그런데 더블A 코치 후 레이첼은 돌연 네덜란드 행을 선택합니다.

프레예 대학원에서 ‘휴먼 무브먼트 과학’ 대학원 코스에서 자신의 두 번째 석사 공부를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녀가 공부한 분야는 타자의 시선 추격과 투수의 골반 움직임이었습니다. 투수의 지엽적인 움직임에 구애받지 않고 중심적인 움직임에 주목하면서 공의 궤적을 더 잘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몰두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네덜란드 국가대표 야구팀과 소프트볼 팀의 보조 타격 코치로 일하면서 이론을 실전에 도입할 기회도 얻었습니다. 학위를 따고 미국으로 돌아간 레이첼은 시애틀 인근의 드라이브인 베이스볼 연구소에서 자신이 했던 공부의 실전 도입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작년 가을 그녀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습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하나는 뉴욕 양키즈였고, 다른 하나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였습니다. 자이언츠는 그녀를 퀄리티 컨트롤 코치로 고용할 뜻을 밝히며 인터뷰를 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양키즈는 타격 코치 자리를 제안했습니다. 양쪽 모두 인터뷰를 거쳤고, 발코벡은 마이너리그지만 양키즈의 타격 코치직을 선택했습니다. 휴스턴 시절 상사이던 딜런 로슨이 양키즈 타격 코디네이터로 옮겼는데 그의 강력한 추천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레이첼은 2월초 양키즈의 스프링 캠프가 열리는 탬파 훈련장에 합류해 코치직을 수행하게 됩니다. 캠프를 마치면 마이너리그 어떤 리그의 팀에서 타격 코치를 맡을지 결정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녀의 부단한 노력과 다양한 경험과 꾸준히 쌓아온 실력이 오늘의 레이첼 발코벡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여성이라는 젠더가 존재하지 않던 분야에 뛰어들 때마다 차음에는 호기심이나 의혹의 눈길이 쏟아진 것도 분명합니다. 그러나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 업무를 맡은 ‘인간 발코벡’이 보여주는 종합적인 자질은 여성, 남성을 떠나 믿을만한 뛰어난 동료라는 인식을 심어주곤 했습니다. 그 이면에는 굴하지 않는 그녀의 의지가 단단한 버팀돌이 됐습니다. 그녀의 시애틀 아파트 벽에는 ‘이 지구상에서 내게 주어진 업무는 과연 무엇인가?’로 시작하는 격언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노력의 산물인 경험과 지식을 통해 메이저리그의 타격 코치가 되는 것을 소명으로 쉴 새 없이 자신을 단련하고 있습니다.

2019년 11월 8일 양키즈의 타격 코치로 임명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그녀에게 쏟아지는 엄청난 관심에 대해 레이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막 2학년을 마쳤는데 주변에서 성대한 졸업 파티를 열어주는 느낌이다. 이건 종착역이 아니라 거쳐 가는 중간역일 뿐이다. 앞으로 배워야 하고, 이뤄야 할 일이 아주 아주 많다.”


이 기사는 minkiza.com, ESPN.com, MLB.com, nytimes.com, seattletimes.com, Wikipedia 기록 등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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