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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38세를 극복한 마무리 투수들

조회수 2020. 1. 29. 12: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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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노 리베라의 터닝 포인트

2007년 스프링캠프다. 양키스 분위기가 묘해졌다. 간판 스타 주변의 냉기 탓이다. 장본인은 샌드맨이다. 메탈리카와 동업하는 불세출의 마무리다. 계약 문제를 놓고 틀어졌다. 그 해 연봉 1050만 달러는 얘기가 끝났다. 자동적으로 실행된 옵션이었다.

문제는 1년 뒤다. 일찌감치 연장하자는 제안을 테이블에 올렸다. 구단이 고분고분할 리 없다. 당장 곤란한 표정이었다. 나이가 벌써 38세 아닌가. 게다가 팔꿈치도 성치않다. 1년에 한두번씩 병가를 냈다. 그러니 조심스러운 게 당연하다. 구단은 ‘서두를 필요없다’는 입장이었다.

샌드맨은 기분이 상했다. 캠프 내내 불편한 표정이었다. 급기야 엄포 하나가 발사됐다. “니들 자꾸 그러면 섭섭하다. 나 시즌 끝나면 그냥 FA 선언해버린다.” 그렇게 개막을 맞았다. 아니나 다를까. 출발이 좋을 리 없다. 세이브 2개를 연달아 날려먹었다. 충격은 오래 갔다. 4월 한달간 탈탈 털렸다. 9게임, 7.2이닝 동안 9실점했다. ERA는 무려 10.57로 치솟았다. 구단 프런트는 속이 터졌다. ‘저거, 일부러 저러는 거 아냐?’

하지만 그가 누군가. 독실한 신앙인 아닌가. 핍박과 시험은 길지 않았다. 5월부터는 곧바로 각성 모드였다. 남은 기간 32번의 세이브 기회에서 30번을 지켜냈다. 이 기간 ERA는 2.26였다. 믿음을 되찾는 데 충분한 수치였다. 뱉은 말이 있으니 FA는 선언했다. 하지만 줄무늬는 버릴 수 없었다. 결국 연장계약은 성공했다. 3년간 4500만달러의 메가 딜이었다. 당시 불펜 투수에게는 최고액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지점이 있다. 그의 38세 시즌은 결정적 터닝 포인트를 제공했다. 커터였다. 이전까지는 1:1로 섞었다. 포심과 커터의 비율이 엇비슷했다. 그런데 슬럼프 때 다 바꿨다. 10개 중 8개는 커터였다. 39세 시즌부터는 그걸로 버텼다. 은퇴한 43세까지 타자들 배트를 전기톱을 갈아버렸다.

                                                      사진제공 = 게티이미지 


우에하라 고지, 인생 최고의 순간

34살이었다. 은퇴 생각할 때다. 그 나이에 태평양을 건넜다. ‘가서 뭘 어쩌려고.’ 주변에는 말리는 사람뿐이다. 일본에서도 퇴물 취급이었다. 선발도, 불펜도 애매한 포지션이다. “그래도 난 꿈을 꾸겠다.” 비장하게 짐을 꾸렸다. 하지만 미국인들 별 다르겠나. 오라는 데 없이 싸늘했다. 그나마 볼티모어에 자리가 생겼다. 아시아 네트워크가 강한 곳이다. 대단치 않은 제안이 왔다. 2년짜리 계약서였다. 500만달러도 감지덕지다.

가시밭, 자갈밭. 4년간 고생길은 모두 겪었다. 선발은 커녕 소모용 불펜이었다. 그나마 처음에는 괜찮았다. 마무리 바로 앞의 (8회) 셋업맨이었다. 하지만 텍사스로 간 뒤 내리막을 탔다. 5회고, 6회고 부르면 나가야했다. 패전처리 추격조 신세가 됐다.

2012년 겨울. 텍사스를 뛰쳐나왔다. 나이 많은 약골의 선택은 보스턴이었다. 가장 춥고, 거친 땅이다. 기자들이 물었다. ‘왜 하필 거기냐’고.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프로가 된 뒤 딱 한가지만 생각하기로했다. 늘 이긴다는 마음이다. 그것도 가장 강한 곳에서, 가장 강한 상대라면 더욱 좋다. 만약 그런 오기가 사라진다면, 그 때는 내가 글러브를 벗을 때다.”

38살 투수에게 뭘 기대했겠나. 걸핏하면 부상에 시달리는 기교파에게 말이다. 그냥 6, 7회를 메워주면 다행이었다. 그럭저럭 잘 버텼다. 시간이 지나며 팀 사정이 급변했다. 덩치 큰 불펜들이 연거푸 부상에 쓰러졌다. 조엘 핼라한, 앤드류 베일리. 줄줄이 시즌 아웃을 선언했다. 그러다보니 벌써 6월이다. 이제 고민할 시간도 없다. 존 패럴 감독은 우에하라를 방으로 불렀다.

얼떨결에 9회를 맡게 됐다. 빅리그에서 90마일도 못 던지는 클로저는 세르지오 로모(SF)와 우에하라 뿐이었다. 스플리터의 현란함이 춤을 췄다. 순식간에 특급 마무리로 변신했다. 그 해 성적은 4승 1패 21세이브(13홀드), ERA 1.09였다.

진짜 빛난 건 가을이었다. 포스트시즌의 언터처블이었다. 챔피언시리즈 MVP가 됐다. 월드시리즈 최종전(6차전, 6-1승리) 세이브도 그의 몫이었다. 우승 순간 펜웨이 파크는 뒤집어졌다. 함성과 샴페인, 포옹과 하이 파이브가 가득했다. Fox TV가 마이크를 댔다. “지금 기분이 어떤가요.” 머뭇거리던 38살 약골의 소감이었다. “솔직히 토할 것 같아요.”

                                                 사진제공 = 게티이미지

임창용, 롱런의 길목

또 한번 팔꿈치를 열었다. 36살 때였다. 재활은 쉽지 않았다. 스왈로즈는 그를 포기했다. 늙고 병든 몸이다. 갈 곳이 막연하다. 자연히 국내 복귀가 점쳐졌다. 하지만 행선지는 뜻밖이었다. 그가 탄 비행기는 까마득히 먼 곳으로 향했다. 시카고였다. 좋은 대우를 받을 리 없다. 보장금액은 겨우 10만달러였다. 여러가지 단서 조항이 붙었다. 복잡한 스플릿 계약이었다.

사실 너무 조용히 떠났다. 일본에서도 크게 뉴스로 다뤄지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비슷했다. 그래도 궁금한 기자가 있었다. 한때 일본 최고였다는데, 구태여 왜 그 조건에 OK했는지. 그쪽 지역 매체에서 물었다. ‘시카고 컵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뭐냐’고. 대답이 명료했다. “저주?”

염소는 뱀이 탐탁치 않았다. 궁합이 별로였다. 쓴맛만 잔뜩 봤다. 9월에 빅리그 마운드를 밟아본 게 그나마 의미였다. 날개를 펴보지도 못했다. 도전을 접어야했다. 결국 남은 길은 하나 뿐이다. 컴백이었다. 마침 친정 팀에서 SOS가 왔다. 돌이 하나 빠졌다. 큰 구멍이 생긴 것이다. 빈자리는 그의 몫이 됐다.

“메이저리그 생활은 짧았다. 아쉬움도 있지만 잘 돌아와서 기쁘다. 팬 여러분께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복귀를 결정하게 됐다.” 38살 투수의 변(辨)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돌 치웠더니, 뱀 나왔네.’

2014년 개막을 코 앞에 둔 3월이었다. 당장 합류는 불가능했다. 감독(류중일)에게 열흘만 달라고했다. 마음 추스를 시간이 필요한 탓이다. 컴백 무대는 4월 중순에야 이뤄졌다. ‘역시’라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6번의 등판에 2승 3세이브를 올렸다. 실점은 제로였다.

그러나 5월 이후로 롤러코스터였다. 들쭉날쭉이 심했다. 블론세이브도 잦아졌다. 덕분에 별명도 많이 얻었다. 임작가, 창용블세…. 31세이브를 건졌지만, ERA는 5.84로 헐거웠다. 그래도 이듬해(33세이브, 2.83)부터 안정을 찾았다. 42세까지 마운드에서 버틸 자산을 얻은 셈이다.

그리고 또 한명의 38세…오승환

신년 초였다. 새해 설렘도 잠깐이다. 인천 공항에 커다란 짐 꾸러미가 등장했다. 수화물 주인은 훈련을 떠난다. 개인 캠프다. 남들보다 4주나 먼저 출발했다. 중간에 귀국도 없다. 1월 말에 현지에서 팀과 합류한다. 독한 눈빛이 선하다.

아직은 재활 중이다. 8월에 수술(팔꿈치 뼛조각 제거)을 받았다. 진도는 롱토스까지 나갔다. 시즌 준비는 큰 문제없다. 절차만 남은 상태다. 징계가 초반까지 이어진다. 일정대로라면 5월2일(대전 한화전)부터 1군 등록이 가능하다.

컴백에 대한 시선은 엇갈린다. 찬반은 그렇다치자. 얼마나 통할 것이냐도 마찬가지다. 분명 예전 같지는 않을 것이다. 반신반의, 의구심도 실재한다. 30대 초반의 돌직구는 아닐 것이다. 오랜 객지 생활로 피곤에 지쳤다. 여기저기 아픈 곳도 많다. 몸에 칼도 댔다. 우리 나이로 40을 바라본다. 저무는 시점이 분명하다.

지난 해 12월 한 매체와 인터뷰였다. 자신감을 보였다. 특히 구속에 대한 설명이 구체적이었다. 로키스 막판에 현저히 떨어졌던 수치였다. “직구 구속이 점점 떨어졌던 건 부상이나 수술 등 특별한 요인 때문이 아니었다. 공을 많이 던진 게 팔에 누적된 탓이다. 그런 문제는 수술과 재활로 이겨냈다. 신체적으로 아무 문제없다. 구속은 반드시 올라갈 것이다.”

게다가 다양성도 생겼다. “커브나 포크볼을 던질 것이다. 포크볼은 일본에서, 커브는 미국에서 배웠다. 두 구종 모두 실전에서 쓸만하다. 여러가지를 섞으니까 효과적이었다.”

물론 나이는 걱정거리다. 그걸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 특별한 레벨에서는 다를 수 있다. 숫자의 의미는 중요한 게 아닐 지도 모른다. 특히나 마무리라는 보직에서는 더 그렇다. 마리아노 리베라, 우에하라 고지, 임창용. 그런 대투수들이 이미 38세를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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