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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32세 루키를 향한 몰리나의 쓰담쓰담

조회수 2020. 2. 24.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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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공식 경기 데뷔전..한국시리즈처럼 던졌다

스코어 1-0이다. 꽤 빡빡하다. 아무리 시범경기라도 그렇다. 지고 싶은 사람 아무도 없다. 첫 경기 아닌가. 게다가 홈 게임이다. 관중도 제법 모였다. 자칫하면 낭패본다.

분위기는 한창 달아오른다. 5회 초가 시작됐다. 홈 팀의 마운드가 바뀐다. 벌써 세번째 투수다. 그런데 낯선 얼굴이다. 새롭게 합류한 루키다. 긴장한 티가 난다. 그럴 수 밖에. 공식 경기는 처음 아닌가. 경기 상황도 그렇고, 여건들이 만만치않다.

초구부터 삐끗했다. 내딛는 발이 살짝 미끄러졌다. 공이 제대로 들어갈 리 없다. 존에서 빠졌다. 볼이었다. 아마 스트라이크를 던지고 싶었으리라. 살짝 실망한 표정이다. (미끄러진 부분) 마운드 흙을 고른다. 마음도 추스린다.

다행이다. 금세 카운트를 만회했다. 슬라이더로 첫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파울. 1-2로 유리한 상황이 됐다. 4구째는 승부구다. 회심의 샷이 들어갈 찰라다. 갑자기 돌풍이 분다. 강한 먼지 바람이다. 느닷없는 소나기도 쏟아진다. 변덕이 심한 플로리다 날씨다. 백스톱 뒤가 어수선하다. 관중들이 우르르 움직인 탓이다. 서둘러 비 피할 곳을 찾는다.

그라운드에도 영향을 준다. 산만해지기 십상이다. 잠시 멈추는 게 나을 듯 싶다. 그런데 아니다. 투수는 아랑곳 않는다. 머뭇거림 없이 직진이다. 4구째를 쏟아냈다. 예리한 슬라이더(84.7마일, 136㎞)였다. 존에서 살짝 가라앉는다. 타자는 허둥거린다. 방망이가 허공을 가른다. 기록지에 ‘K’ 하나가 새겨졌다.

성공적인 첫 등판...본인은 여전히 불만

괜찮은 첫 등판이 분명하다. 정작 본인은 불만이다. “투수 코치님이 초구 스트라이크가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그걸 잡지 못했다. 투구 내내 그 부분이 아쉬워서 계속 스트라이크를 잡으려고 노력했다.”

볼넷 1개도 흠이다. 그것 때문에 소모가 많았다. “1이닝인데 19개나 던졌다. 투구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 부분을 줄여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4구째 볼은 애매했다. (구심이) 잡아줘도 괜찮았다. 마이크 실트 감독의 불만이었다. 본인은 “(감독이) 기 죽지 말라고 좋은 얘기해주신 것 같다”고 넘겼다.

공에 대한 적응은 미완성이다. 표면이 미끄럽고, 실밥이 잘 걸리지 않는 문제다. “조금 나아지긴했다. 하지만 아직 만족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준비할 시간이 있으니 괜찮아질 거라고 믿는다.” 며칠 새 약간 진전이 있었던 같다.

또 다른 과제도 남겼다. 카운트 싸움에 대한 전략이다. “KBO 리그 때는 스트라이크 잡는 방법이 많았다. 그런데 여기 타자들은 다르다. 파워나 적극성이 뛰어나다. 그래서 어떻게 던져야 할 지 연구해봐야겠다. 그 부분이 해결돼야한다. 그래야 불리한 카운트나, 결정구에 대한 답이 나올 것 같다.”

FOX 해설자 “크고 긴 스트라이드가 인상적”

주위 평가도 나쁘지 않다. 실트 감독은 합격점을 줬다. “보기 좋은 공들이었다. 특히 슬라이더가 괜찮았다. 수준 높은 투구였다. 아주 잘한 게임이었다.” 승진에 대한 언질도 포함됐다. “4일 뒤에는 선발로 나가서 2이닝을 던지게 될 것이다.”

포수도 칭찬 일색이다. 앤드류 키즈너다. “스트라이크 존을 잘 쓰더라. 여러 구종을 가지고 타자와 상대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타자들이 슬라이더에 전혀 대처를 못하더라. 그래서 계속 사인을 냈다. 오늘처럼 던지면 충분히 성공할 것이다.”

에이스 잭 플래허티는 이날 선발이었다. 나중에 mlb.com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불펜 피칭은 몇 번 구경했다. 제대로 던지는 건 오늘 처음 봤다. 역시 분위기가 다르더라. 다른 팀 타자 잡는 걸 보니 좋았다.” 괜찮다는 얘기를 참 어렵게 한다.

이 경기는 FOX 스포츠가 중계했다. 그 곳 해설자는 짐 에드먼즈다. 2000년대 초반 카디널스의 중견수였다. 골드글러브(8회) 올스타(4회) 단골이었다. 이날은 KK의 투구폼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깔끔한 임팩트를 가졌다. 크고 긴 스트라이드도 무척 좋다. 중부지구에서 꼭 필요한 좌완 투수임이 틀림없다.”

캐스터(댄 맥놀린)는 스카우트 과정을 소개했다. “카디널스가 오래 전 WBC 때 처음 발견했다. 이후로 10년간 레이더망에 있었다. 스카우트 팀에서 굉장히 상세한 리포트를 갖고 있었다. 그걸 바탕으로 존 모젤리악(사장)이 일을 성사시켰다.”

느림보 주자에 견제구…역력한 긴장감

그래봐야 시범경기다. 그것도 겨우 1이닝이다. 시즌 오픈은 한참 남았다. 상대한 타자들도 대단치않다. 삼진 2명의 주인공만 봐도 그렇다. 라이언 코델(첫 타자)은 마이너 계약으로 영입했다. 2년간 타율이 0.205다. 두번째 제이크 해거는 아예 빅리그 경력이 없다. 둘 다 로스터 진입을 노리는 마이너리거들이다.

11년 경력의 르네 리베라에게는 볼넷이었다. 통산 타율 0.221의 수비형 포수다. 마지막 타자만 ‘급’이 있다. 주전 유격수 아메드 로사리오다. 지난해 0.287, 15홈런을 기록했다. 이날도 3루쪽에 강한 타구를 만들었다.

긴장 탓에 당황스러운 장면도 있었다. 볼넷 이후다. 1루 주자는 리베라다. 발이 느린 포수다. 11년간 도루가 1개(2006년) 뿐이다. 뛸 마음도, 뛸 리도 만무하다. 리드폭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견제구가 날아갔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인데. 평소의 KK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날은 한국 팬들도 제법 있었다. 멀리서 찾아온 교민들이다. 한글 이름의 와이번스 유니폼이 곳곳에 보였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몰랐다. “포수 미트 밖에 안보였다. 아무 소리도 안들리더라. 내가 하는 혼잣말만 들렸다.”

몰리나, 하이파이브 후에 정겨운 쓰담쓰담

꼭 1년 전이다. 작년 첫 등판도 2월 23일이었다. 장소도 플로리다(베로비치)다. 와이번스의 자체 청백전이다. 그 때도 1이닝 2K였다. 한동훈의 홈런으로 실점이 있었다. 최고 구속은 145㎞(90마일)였다. 어제는 그 보다 빨랐다. 148㎞(92마일)였다. 무려 2마일이나 좋아졌다. 이 시기에 그 정도는 약간 오버페이스일 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물론 잘 준비한 덕이다. 겨우내 착실히 훈련했다. 해외로 나가 개인 캠프도 차렸다. 몸 상태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절실함이 달랐다. 어제는 맘 먹고 던졌다. 첫 등판에서 밀리면 안된다.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첫 경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던질 수 있는 건 다 던져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오늘은 사실 팔에 힘이 많이 들어간 것 같다.” 그럼에도 녹록치 않았다. 상대가 누구냐. 그건 다음 문제다. 상황이 절실하고, 절박했다.

평생의 목표였다. 순탄치 않은 과정, 주변의 커다란 배려가 필요했다. 책임감, 부담감. 그런 것들이 한 가득이다. 그래서 온 몸을 쥐어짜야했다. 혹시라도 그르치면 볼 낯이 없다. 겨우 시범경기 1이닝을, 마치 한국시리즈 처럼 던져야했다.

선수는 선수가 아는 법. 벤치의 동료들도 모두 느낀다. 살 떨리는 데뷔전이었다. 무사히 마친 새내기에게는 하이파이브가 쏟아졌다. 그 가운데 특별한 퍼포먼스가 있었다. 야디어 몰리나(38)였다. 32살 먹은 루키의 머리를 쓰담쓰담한다. 거기에는 그런 얘기가 담긴 것 같다.

“그래. 몇 년 전에도 비슷한 친구가 하나 있었어. 너도 그렇게 잘 해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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