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최고의 국책사업 전문가 정대현

조회수 2020. 4. 6. 05:1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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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우커슝 야구장이다. 금메달을 놓고 한국과 쿠바가 만났다. 결승전 열기가 날씨만큼 뜨겁다. 9회 말, 3-2 한 점차. 선발 투수는 지친 기색이다. 그러나 벤치는 움직이지 않았다. (김경문 감독) "아직 괜찮다고 봤다. 결승전 완투승의 영예를 에이스에게 안겨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뾰족한 대안도 없었다. 불펜도 피로가 극심했다.

아니나 다를까. 21살 류현진에게 위기가 닥쳤다. 첫 타자에 안타, 보내기 번트로 1사 2루가 됐다. 더 괴로운 건 구심과의 싸움이었다. (존에) 걸치는 공 몇 개가 외면당했다. 볼넷, 또 볼넷. 안방의 강민호가 폭발했다. 판정에 대한 불만이었다. 퇴장. 포수 미트를 백스톱에 팽개쳤다.

1사 만루의 위기다. 외야 플라이만 나와도 동점이다. 쿠바 벤치는 난리다. 마치 역전이라도 시킨 분위기다. "여기서 지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경문 감독의 회고다. 바꿀 포수도 마땅치 않았다. 이택근과 진갑용 정도다. 이택근은 마스크 벗은 지 몇 년이 지났다. 진갑용은 대회 기간 중 부상을 입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주섬주섬 장비를 찼다.

투수도 바꿨다. 불펜에는 두 명이 대기했다. 윤석민과 정대현이다. "처음에는 윤석민을 생각했다." 김 감독은 주관이 센 편이다. 보통이면 자신의 판단을 믿었을 거다. 그런데 어쩐 일로 진갑용의 의견을 물었다. "불펜에서 받아봤지? 누가 낫겠나?" 조심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정)대현이가 괜찮은 것 같던데요."

말을 뱉은 진갑용은 '아차' 싶었다. "내가 왜 그런 얘기를 했나 싶었다. 나중에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교체돼 나가는 데 꼭 사형대 끌려나가는 기분이었다."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김 감독은 공을 넘겨주러 마운드로 갔다. "대현이와 몇 마디했는데, 전혀 긴장하지 않더라. 조금 안심이 됐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궁내 체고의 싱카볼 투수"

포수의 회고다. "그때 생각은 딱 하나였다. 절대 직구는 주지 말자. 오직 변화구만 쓰자." 투수의 생각도 똑같았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었다. 이런 상황을 수도 없이 헤처나왔다. 특히나 미국, 중남미 선수들에게는 공포의 존재다.

정대현의 기억이다. "마운드로 가면서 생각했다. 외야 플라이도 맞으면 안된다. 머리 속에 딱 하나만 있었다. 슬라이더였다. 그 동안 경험으로 내 슬라이더가 저쪽 선수들에게 잘 통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무조건 그것만 던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날 중계는 MBC였다. 유명한 멘트가 작렬했다. "궁내 체고의 싱카볼 투순데…." (허구연 해설) "예, 오다가 정말 직각으로 하나 떨어져주면 좋은데요." (한광섭 캐스터)

이 순간은 카운트 싸움이 전부다. 불리해지면 끝이다. 초구가 높은 존을 통했다. 2구째도 슬라이더였다. 115㎞짜리가 한 가운데로 몰렸다. 아찔한 실투였다. 그런데 타자도 긴장했다. 배트가 꿈쩍도 못했다. 카운트 0-2가 됐다. (지금 애스트로스의 중심 타자인 율리에스키 구리엘이다.)

"투 스트라이크가 되니까 자신이 생겼다. 3구째는 바깥쪽으로 유인했다. 역시 슬라이더였다. 타자가 끌려나왔고, 타구가 오른쪽으로 굴러가는 걸 봤다. 그 다음부터는 마치 엄청 느린 화면 같았다. 한 컷, 한 컷이 끊어지는듯 눈 앞에 펼쳐졌다. (박)진만이 형이 공을 잡아서, (고)영민이를 거쳐, (이)승엽이 형까지 완벽하게 연결됐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정대현)

이 순간 허구연 씨는 해설이 아니었다. 외마디 비명만 몇 개 남겼다. "아~, 아~" "더블 플레이, 더블 플레이." "아~, 아~." 2008년 8월 23일. 이날은 한국에서 '야구의 날'이 됐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시드니 올림픽 유일한 대학생 멤버

처음 국책사업에 뛰어든 건 경희대 3학년 때다. 호주에서 열린 대륙간컵 대회(1999년)였다. 네델란드를 8.2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막았다. 안타 3개만 내주고, 삼진은 9개나 뽑았다.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이듬해다.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됐다. 드림팀3는 프로 올스타들로 구성됐다. 대학생은 그가 유일했다. 역할은 미국팀 전담 마크였다. 예선전과 준결승전에 두 번 모두 등판했다. 겨우 110∼130㎞의 공으로 우승 후보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예선서는 7이닝 6안타 무실점(5K). 이어 등판한 진필중이 만루홈런을 맞고 패전투수가 됐다. 다음 경기는 엿새 뒤 준결승이었다. 또다시 선발을 맡았다. 맞상대는 유명한 로이 오스왈트다. 당시 마이너리그의 손꼽히는 유망주였다.

6회까지는 한국의 우세였다. 잠수함의 위력은 여전했다. 미국 타자들은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2-1의 리드가 계속됐다. 7회. 우리 팬들의 분노가 시작됐다. 심판이 거푸 이상한 판정을 내렸다. 두 번의 아웃이 세이프로 번복됐다. 1사 1, 3루에서 희생플라이로 동점을 허용했다. 결국 9회말 박석진이 끝내기 홈런을 맞고 말았다. 국책사업자의 성적은 6.1이닝 2실점이었다(3안타, 6K).

미국의 한국전 2승은 모두 1루수 덕이다. 예선전 만루홈런과 준결승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은 덕 민트케이비치였다. 나중에 미네소타의 중심 타자로 성장했다. (한국은 다음날 일본전에서 승리,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우승에 감격하는 라소다 감독.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정대현 때문에 켄 그리피 주니어, 치퍼 존스가 준비하고 있다"

미국은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결승전은 싱거웠다. 쿠바에 4-0으로 완승했다. 벤 시츠의 완봉 호투였다. (훗날 밀워키의 에이스다. 4차례 올스타에도 선발됐다.)

우승 후 토미 라소다 감독은 눈물을 흘렸다. 월드시리즈 때보다도 감격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잊을 수 없는 고비가 있었다. 간담이 서늘했던 두 번의 한국전이다. 도대체 정체 모를 투수의 정체 모를 공이었다. 당시 ESPN 해설자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벅 마르티네스다.

그는 토론토 블루제이스 감독을 거쳐 6년 뒤 미국 대표팀을 맡았다. 2006년 1회 WBC 때다. 애너하임에서 본선 2라운드를 앞두고다. 한국 기자들을 만나자 블러핑을 쳤다. "난 정대현을 잘 알고 있다. 그가 혹시 선발 아니냐. 그럴까봐 우린 좋은 좌타자들을 많이 준비했다. 한국전에는 켄 그리피 주니어, 치퍼 존스가 나갈 것이다."

당시 미국은 초호화 멤버였다. 데릭 지터, A 로드, 마크 테셰이라, 맷 할러데이. 기라성 같은 라인업을 짰다. 한국과는 20배 이상 몸값의 주인공들이다. 여기에 맞선 투수는 손민한이었다. 결과는 아시다시피. 7-3 승리였다. 이승엽이 첫 타석에서 돈트렐 윌리스의 타구를 담장 밖으로 날려버렸다.

국책 사업자의 마지막 서비스

그의 별명은 여왕벌이다. 와이번스 시절 얘기다. 야신이 펼치는 벌떼 야구의 중심이었다. 인천에 우승 반지 3개를 안겼다. 왕조 시대의 주역이다.

하지만 진가는 특별한 시기에 나타난다. 태극 마크를 달았을 때다. 최근 기억은 2015년이다. 프리미어12에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그 해 컨디션은 영 아니었다. 20이닝도 못 던졌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은 굳이 그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고비에 일을 맡겼다.

준결승 때다. 홈 팀 일본과 만났다. 8회까지는 0-3이었다. 숨 한번 못 쉰 채 끌려갔다. 9회 초. 봇물이 터졌다. 순식간에 4-3으로 뒤집었다.

극적인 역전 다음의 수비다. 9회말. 도쿄돔 마운드에 오른 건 역시 '국책사업 전문가'였다. 첫 상대는 3번 야마다 테쓰토. (홈런ㆍ도루 1위, 타격 2위) 센트럴리그 최고의 타자다. 그러나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다음은 좌타자다. 쓰쓰고 요시토모마저 1루 땅볼로 처리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이현승에게 넘겼다. 가장 어려운 아웃 2개를 책임진 셈이다.

이 경기는 도쿄 대첩으로 불렸다. 역대 한일전 최고의 명승부 중 하나다. 국책 사업자의 마지막 서비스였다. SBS 중계팀의 엔딩곡이 특별했다. 마야의 진달래꽃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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