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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훈기의 스페셜야구]에이스의 책임감과 평정심 사이

민훈기 입력 2020.02.20.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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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전 에이스로 텍사스 이적 후 부상에 고생했던 선배 박찬호를 떠올리며 무리하지 않게 준비를

미국 플로리다 주 더니든(Dunedin)의 미국시간 19일 낮 최고 기온은 섭씨 26도, 전날은 28도였습니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스프링 캠프가 열리고 있는 이곳 캠프장의 열기도 30도에 육박하는 기온에 못지않습니다. 겨울 동안 새롭게 변신한 팀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대단합니다. 그 열기는 더니든에서 북쪽으로 약 2250km 떨어진, 이날 최저 기온이 섭씨 영하 7도까지 내려간 캐나다의 토론토에서도 그대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캠프에 운집한 토론토 스포츠 언론은 연일 희망적인 소식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거금 8000만 달러를 투자해 4년간 에이스로 영입한 류현진(33)이 있습니다.


불펜 피칭을 마친 류현진이 워커 투수코치와 밝헤 웃으며 걸어가고 있습니다. 토론토의 에이스로 자리를 잡고 있는 류현진은 차근차근 무리하지 말고 시즌을 준비하면 됩니다.  @TOR SNS


지난겨울 FA 시장에서 블루제이스가 류현진을 영입했을 때만해도 긍정적인 기대와 함께 부정적인 시선도 거의 반반씩 공존했습니다.

류현진의 피칭을 실제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토론토 지역 일부 언론은 그의 선수 경력을 기록과 부상 전력으로 따져가며, ‘건강하면 효과적이지만’이라는 단서에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류현진을 살펴온 토론토 구단은 작년에 보여준 평균자책점 MLB 전체 1위라는 압도적인 기록과 함께 건강해진 그의 강건한 신체에 신뢰를 보내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비록 FA 시장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기는 했지만, 투수의 훈장 중 하나인 속구의 평균 구속만 보면 거의 하위권인 이 거구의 왼손 투수 ‘코리안 몬스터’를 그들의 에이스로 모셔가기로 결정했습니다. 힘이 지배하는 MLB에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달릴 수 있는 결정이지만, 블루제이스 수뇌부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과 그리고 스프링 캠프의 시작을 지켜보면서 지난 2002년의 겨울과 봄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똑같이 한국 출신의 두 투수가, 똑같이 LA 다저스에서 거물로 성장해, 똑같이 FA 시장의 대어로 떠올랐고, 그리고 똑같이 에이스 대우를 받으며 NL에서 AL로 거액의 장기 계약을 맺고 이적을 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 박찬호(47)는 폭발적인 강속구를 구사하는 우완 투수였고, 현재 류현진은 기교파 투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좌완 투수라는 점 정도.


그러나 두 대단한 투수의 정작 큰 차이는 시대적인 야구 환경과 개인 성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박찬호는 모든 것을 개척해야 하는 선구자의 입장이었습니다. 모든 것에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그리고 IMF의 어려운 시절 국민에게 큰 희망을 주던 아이콘이 되면서 그의 어깨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이라는, 영광스럽지만 동시에 아주 부담스런 견장이 늘 붙어 다녔습니다. ‘퍼스트 코리안 빅리거’라는 자랑스러운 자리였지만, 누구도 가본적이 없는 길을 스스로 개척하고 뚫고 이겨나가야 한다는 어려움이 늘 상존했습니다. 워낙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박찬호였기에 그 난관들을 잘 이겨냈지만, 텍사스 이적 후 첫 스프링 캠프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격까지 어우러진 것이 결국 패착으로 귀결되고 말았습니다. 부상 관리에 대해 전혀 경험이 없었던 그는 다소 무리했던 2001년 시즌 후 새로운 팀의 캠프에서도 강도 높은 훈련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캠프 막판 미네소타와의 시범 경기에 최종 조율을 위해 등판했다가 허벅지 통증이 왔습니다.


거의 20년 전인 그때와 요즘의 야구 환경은 많이 다릅니다.

당시까지 플로리다 주 포트 샬롯에서 캠프를 하던 텍사스 레인저스는 거액을 들여 새로 영입한 에이스가 허벅지 통증으로 교체됐지만 코칭스태프도, 트레이닝 파트도 큰 위기감은 없었습니다. 야구 초창기처럼 선발로 나서면 무조건 완투하던 시절은 오래전에 지났고, 선발 4인 로테이션도 1970년대 후반부터 점차 5인 로테이션으로 바뀌었지만 2000년대 초반에도 여전히 선발 투수는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이닝 이터’였습니다.

박찬호는 2000년에 226이닝을, 2001년에는 234이닝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2002년 캠프 마지막 경기에서 햄스트링 부상이 왔지만 불과 5일 후 오클랜드와의 시즌 개막전 원정 등판을 강행했습니다. 결국 부상이 크게 도지며 조기 강판했고, 길고 힘겨운 텍사스에서 고행의 길이 그렇게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거액을 받은 에이스의 책임감에다가 생소한 부상에 대한 대처 경험이 없던 박찬호는 개막전 등판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고, 트레이너나 감독도 그저 선수의 의지를 받아들였습니다. 돌이켜보면 박찬호의 MLB 커리어에서 그때 부상 대처가 적절히 이루어졌더라면 200승은 문제없이 돌파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습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부상에 대한 대처나 접근법이 요즘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최근 더니든에서 들려오는 에이스 류현진 관련 소식은 하나 같이 밝고 희망적이고 즐겁습니다.

구단은 에이스 대우를 당연시하고 있습니다. 주차부터 불펜 피칭 위치까지, 그리고 클럽하우스 자리와 훈련 일정 등이 투수조는 류현진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찰리 몬토요 감독과 피트 워커 투수 코치는 칭찬 일색이고, 운동 일정 등도 베테랑 류현진에게 전임하고 있습니다. 젊은 블루제이스 투수들은 앞 다퉈 류현진에게 다가와 커터와 체인지업의 그립과 투구 동작을 물어보며 절정의 기교파 투수의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 다툼입니다. 류현진도 아낌없이 자신의 야구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포수와 동료 야수들도 류현진의 피칭에 이미 매료됐다는 표현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런 와중에 개막전 선발은 아직 미정이라고 몬토요 감독은 연막을 치고 있지만 한국 시간 3월 27일 오전 5시37분에 열리는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홈 개막전 선발 투수는 류현진이 확정적입니다.


다만 개막전 선발로 나서기 위한 전제 조건은 건강하게 최고의 컨디션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류현진이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동료들이 모두 퇴근한 후에도 웨이트 트레이닝 등 개인 훈련에 몰두하고 있다는 소식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소댕[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심정이 잠시 든 것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과거 책임감에 무리했던 박찬호의 아픔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물론, 김병곤 트레이너의 철저한 프로그램 속에 꼭 필요한 훈련을 체계적으로 실시하는 것이지만, 스프링 캠프 초반 훈련치고는 강도가 세다는 느낌은 듭니다.


류현진이 가장 잘하는 것 중의 하나는 ‘경기 전까지는 하던 대로 한다. 그리고 경기에 나서면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대처한다.’입니다. 어찌 보면 상대에게 허허실실의 절묘한 전략도 이런 그의 강점에 기인합니다. 하지만 ‘하던 대로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특히 8000만 달러의 거액을 받고 4년 장기 계약을 맺은 투수로서 에이스의 책임감과 토론토 팀과 팬을 위해서 시즌을 훌륭히 치러야 한다는 의무감이 드는 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완전한 재기 확률 10%가 안 되는 심각한 어깨 수술을 딛고 일어선, 그 힘든 과정을 겪어낸 경험이 있는 류현진으로서는 시즌을 앞두고 무리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한 그는 새로운 리그, 새로운 팀의 새로운 타자들에 대한 철저한 공부와 적절한 체력과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차근차근 시즌을 준비하면 됩니다. 어깨와 팔의 근력은 시범 경기 등판을 거듭하면서 점점 쌓아가고 투구 수와 이닝도 차근차근 늘려 가면 됩니다.


사실 류현진의 대범함이나 또 훈련과 준비의 철저함을 생각하면 전혀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과거에도 몸이 약간 안 좋았을 때 스톱 사인을 스스로 보내면서 큰 부상을 방지하고 복귀를 앞당기는 현명함을 보인 류현진입니다.

다만 쓸데없는 기우인줄 알면서도 절대 무리한 훈련 과정을 가져가진 않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팀의 에이스가 됐다고 해서 류현진이 투구 패턴을 바꿀 것도 아니고, 훈련을 과도하게 한다고 구속이 갑자기 훌쩍 증가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류현진은 그만의 유연한 스타일로 오히려 강인한 AL 동부죠 강팀의 강타선을 능수능란하게 요리하면서 팬들에게 짜릿함을 선물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3월27일에 맞춰 최고의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추면 됩니다. 그러면 ‘코리안 몬스터’의 걸작들을 팬들은 곧 자주 보게 될 것입니다.




이 기사는 minkiza.com, ESPN.com, MLB.com, baseballreference.com 기록 등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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