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홀로 벼랑 끝에 선 기분" 전남 역사 쓴 전경준, 이제야 웃었다

이현민 2021. 12. 12.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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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 이현민 기자= “고생하신 모든 분과 우승의 기쁨을 함께 했으면 좋았을 텐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기쁨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전남 드래곤즈 전경준(48) 감독이 숨 가빴던 FA컵 결승을 떠올렸다.

전남은 11일 DGB대구은행파크에서 열린 대구FC와 2021 하나은행 FA컵 결승 2차전에서 난타전 끝에 4-3 승리를 거뒀다. 홈에서 0-1로 패했지만 원정에서 극적인 승리를 챙기며 1, 2차전 합계 4-4,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007년 이후 14년 만에 FA컵 트로피를 되찾은 전남은 한국 축구의 새 역사를 썼다. K리그2(2부) 최초 FA컵 정상에 서며 다음 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진출권을 따냈다. K리그1 우승팀인 전북 현대와 ACL 조별리그 본선에 직행하게 됐다.

전경준 감독은 FA컵 결승을 앞두고 “이 경기로 인해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록 목표했던 K리그1 승격에 실패했지만, FA컵 우승은 향후 선수 구성, 모기업 지원, 전반적인 구단 운영까지 한 판에 미래를 좌우할, 그야말로 파이널 안에 파이널이었다.

이미 K리그1에서 3위를 차지한 대구는 ACL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확보한 상황이었지만 본선 직행, 안방에서 홈 팬들과 트로피를 들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전남은 우선순위였던 승격에 실패했고, 1차전 홈경기에 0-1 패배를 당했던 만큼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사생결단의 자세로 임했다.

지난달 24일 1차전이 끝난 후 전경준 감독은 코칭스태프와 밤낮으로 상대를 분석했고, 선수들 컨디션 유지에 만전을 기했다. 2차전에서 뚜껑을 열자 엎치락뒤치락하면서도 전남은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시즌 중 리그 일부 경기에서 드러났던 무기력함은 종적을 감췄다. 하나로 똘똘 뭉쳐 기적을 만들었다.

그는 “나도 이 정도의 경기력과 정신력이 나올 줄 상상도 못했다”고 운을 뗀 뒤, “준비했던 플랜에서 계속 벗어나는 양상이었다. 그래도 선수들이 흔들리지 않았다.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고 이제야 환히 웃었다.

특히 후반 추가시간 자기 진영 페널티박스 안에서 고태원이 에드가를 막다가 동시에 쓰러졌다. 애초 주심이 반칙을 선언했다. 전남 벤치에서는 탄식과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페널티킥 하나에 우승 향방이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주심이 온필드리뷰 후 노 파울을 선언했다. 남은 시간을 잘 버틴 전남이 기적을 만들었다.

전경준 감독은 “어휴... 진짜 미치는 줄 알았다. 이 장면 하나에 모든 게 날아갈 수 있었다. 만약에 잘못됐다면... 억울했을 거다. 상상도 하기 싫다. 다행히 페널티킥을 허용하지 않았다. 경기 내내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이 대견스럽고 고마울 따름”이라고 떠올렸다.

전남이 좋을 때나 안 좋을 때 전경준 감독은 “항상 선수들이 고생한다”며 독려했다. 과거 한국 대표팀에서 수석코치로 신태용 감독을 보좌했다. 브레인 역할을 하며 전술과 전략을 도맡았다.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한국이 독일을 격파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후 전남으로 건너왔다. 수석코치를 거친 후 본격적으로 팀을 맡았다. 대표팀 시절 경험을 토대로, 진정한 감독으로 그라운드 안팎을 아우르는 ‘매니저’ 역할까지 하며 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는 “대구와 2차전을 시작되기 전 경기장에서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혼자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랄까. 너무 힘들더라. 이 경기가 잘못되면 나도 선수들도, 참...”이라고 토로했다.

전남은 8강에서 포항 스틸러스, 4강에서 울산 현대를 꺾고 결승에 올랐다. 돌풍, 파란, 집념. 심지어 기적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과정이 아무리 좋더라도 결과를 내야 한다. 가장 높은 시상대에서 웃지 못하면 준우승팀, 2인자로 남는다. 우승팀만 기억된다.

전경준 감독도 알았다. “한 경기를 준비하면서 모든 상황을 생각하고 고민한다. 그렇지만, 패한다는 가정은 없었다. 나와 선수 모두 이긴다는 생각뿐이었다. 모든 구성원 그리고 팬들에게 감사하다. 아시아 무대에 간다는 자체로 기대된다. 나와 선수들의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지금은 가족과 쉴 생각이다. 그리고 시즌 준비를 할 것”이라고 했다.

사진=전남 드래곤즈,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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