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마늘 소녀들 '컬링 마술' 세계 쓸러 나간다

박린 입력 2018. 2. 1. 06:48 수정 2018. 2. 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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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메달 다가선 여자 대표팀
취미로 스톤에 빠진 김씨네 딸들
최근 세계 최강 캐나다팀 물리쳐
등록 선수 200만 컬링나라 상대
인구 5만 시골 출신들 환상의 샷
"친구들이 개천에서 용 났데요"
군민, 마늘처럼 다부진 활약 기원
여자대표팀 김경애(오른쪽)가 던진 스톤 앞에서 친언니인 김영미 선수가 빙판을 닦고 있다. 한국대표인 ‘팀 킴’ 선수들은 모두 의성 출신에 김씨다. 의성 마늘처럼 단단한 팀워크를 갖추고 있다. [중앙포토]
“의성은 작은 시골이에요. 시장에 가면 누구 딸인지 다 알고, 택시 타면 알아서 동네에 내려주세요. 개천에서 용 났대요.”

30일 경북 의성컬링센터에서 만난 한국여자컬링대표팀 김영미(27)가 웃으며 말했다.

한국은 지난 21일 캐나다에서 열린 ‘메리디안 캐나다 오픈 그랜드슬램 오브 컬링’ 플레이오프 8강에서 ‘팀 호먼(캐나다)’을 7-4로 꺾었다. 팀 호먼은 지난해 세계여자컬링선수권에서 13전 전승으로 우승한 현 세계챔피언이다. 캐나다 대표로 평창올림픽에 출전한다.

캐나다는 등록선수만 150만~200만 명에 달하는 ‘컬링의 나라’다. 한국 컬링 등록선수는 700~800명에 불과하다.
세계최강 캐나다 호먼팀을 꺾는 이변을 연출한 한국여자컬링대표팀. 이들은 2006년 경북 의성에서 취미로 컬링을 시작했다. 가운데 김민정 감독을 중심으로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영미·선영·은정·경애·초희. 영미와 경애는 자매고 영미-은정, 경애-선영은 의성여고 동기동창이다. [중앙포토]
한국여자대표팀은 의성 여·중고 출신들로 구성됐다. 김영미는 경상도 사투리로 “놀 게 마땅치 않은 의성에 2006년 국내 최초 컬링전용경기장이 생겼다. 고1 때 친구 (김)은정(28)이와 방과 후 활동으로 컬링을 시작했다”며 “동생 (김)경애(24)는 컬링장에 물건을 건네주러 왔다가 얼떨결에 따라하게 됐다. 경애가 학교 칠판에 ‘컬링할 사람 모집’이라고 적었는데, 경애 친구 김선영(25)이 자원했다”고 전했다.

취미로 컬링을 시작한 ‘의성 시골소녀’들이 ‘세계 최강’ 캐나다를 꺾은 것이다. 의성군 인구는 5만3474명이다.

한국은 스킵 김은정·리드 김영미·세컨드 김선영·서드 김경애·후보 김초희(22)로 구성됐다. 컬링은 보통 스킵(주장)의 성(姓)을 따서 팀명을 붙인다. 한국은 김은정의 성을 따서 ‘팀 킴’, 캐나다는 레이첼호먼(29)의 성을 따서 ‘팀 호먼’이다.
2012년 ‘팀 킴’은 ‘팀 호먼’과 첫 맞대결에서 무참히 깨졌다. 김민정(37) 감독은 “6엔드에 기권했다. 손 한 번 못 써보고 졌다”고 회상했다.
한국여자컬링대표팀 김경애 [중앙포토]
캐나다에는 키 1m80cm가 넘는 선수도 있지만 한국 선수들 키는 1m60cm 정도다. 김선영은 “캐나다는 체격도 좋고 힘도 좋아 한번에 2~3점을 딴다. 그러나 우리가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몸싸움을 하는 종목도 아니니 아기자기하게 하면 된다. 2014년 ‘팀 호먼’을 처음 이겼고 상대전적은 3승4패”라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컬링은 빙판 위에서 스톤(돌)을 던져 브룸(브러시)으로 빙면을 닦아 하우스 중앙에 가깝게 붙이는 팀이 이기는 경기다. 팀당 4명씩 출전해 엔드당 스톤 8개씩을 던져 10엔드로 승부를 가린다.
이번 맞대결 6엔드에서는 김은정이 오밀조밀 모인 상대의 4개 가드 사이로 스톤을 딜리버리해 한번에 3득점에 성공했다. 김민정 감독은 “캐나다 TSN방송이 손톱 하나 차이로 통과한 ‘핫 샷’이었다면서 이주의 화제영상으로 선정했다”고 전했다. 김은정은 “몇 주 전 라이언 프라이(캐나다)와 연습 도중 시도했던 샷이다. 땡큐 라이언”이라고 말했다. 대표팀은 2014년 소치올림픽 남자 금메달리스트 프라이를 한 달간 초빙해 특별과외를 받았다.

‘팀 킴’은 2014년 대표선발전에서 탈락해 소치올림픽에 나서지 못했다. 김은정은 “당시 컬링을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선수들과 감독님 집에 틀어박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건담 로보트를 조립하며 마음을 달랬다”고 회상했다. 김민정 감독은 “선수들과 그림 치료를 받으며 멘털을 키웠다”고 말했다.

한국은 다음 달 15일 평창올림픽 예선 첫 경기에서 캐나다(팀 호먼)와 맞붙는다. 컬링은 홈 어드밴티지가 중요한 종목인데 강릉컬링센터 개·보수 작업 때문에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 지금도 의성에서 훈련 중이다.

한국여자컬링대표팀 김선영(왼쪽)과 김영미가 브룸으로 빙면을 닦고 있다. [중앙포토]
김선영은 “의성 인구는 5만 명인데 올림픽 개막식을 전 세계 10억명이 TV로 지켜본다고 들었다. 어마어마한 숫자라 실감이 안 난다”며 “예선 9경기에서 6~7승을 해야 4강 플레이오프에 오를 수 있다. 평소처럼 스톤 하나하나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의성에서 특산물 마늘만큼 유명인사 아니냐’는 질문에 김은정은 “의성 마늘과 싸워야 하나요. 저희가 평창에서 마늘보다 유명해질 수 있을까요”라며 웃었다.

물론 ‘팀 킴’과 의성 마늘이 경쟁자는 아니다. 금메달을 딴다면 ‘팀 킴’은 작지만 맵고 단단한 의성 마늘처럼 다부진 팀으로 세계에 알려질 것이다. 의성 군민들은 간절히 ‘팀 킴’의 활약을 기원하고 있다.

의성=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컬링 김은정의 빅샷 장면 http://www.sportsnet.ca/curling/kim-nails-shot-narrow-port-score-three-h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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