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비리포트] '투구수 제한' 고교야구, 보완 조치도 시급해

조회수 2018. 4. 30. 12: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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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야구 리포트] 투구 수 제한, 아직 갈 길이 멀다
2007년 대통령배 당시 서울고 이형종  (출처: KBS 영상)

광주일고와 서울고가 맞붙었던 2007년 제 41회 대통령배 결승전은 고교야구의 진수를 보여준 명경기로 1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회자되고 있다. 이 경기가 화제가 되었었던 것은 단순히 경기 내용이 극적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날까지 20이닝 동안 330여 개의 공을 던진 지친 어깨를 이끌고 결승 당일 또 다시 마운드에 올라 팀을 승리 직전까지 이끌었지만, 아웃카운트 마지막 한 개를 버티지 못하고 동점을 허용하자 마운드 위에서 눈물을 흘리며 투구를 한 당시 서울고 투수 이형종(28, 현 LG트윈스) 때문이었다. 

마운드 위의 투수가 울면서 공을 던지는 것도,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오열 하는 것도 이례적인 광경이라 이 경기는 혹사, 간절함, 드라마, 감독의 선수 기용에 대해 여러 이야깃거리를 낳으며 지금까지도 야구팬들에게 회자되곤 한다.

2007년 대통령배 당시 서울고 이형종 

그러나 앞으로는 더 이상 이런 장면이 연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부터 초중고 야구에서 ‘투구 수 제한’ 규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투구 수 만 제한이 되는 것이 아니라 WBC와 같이 투구 수에 따른 강제휴식일도 함께 지정 된다. ‘투구 수 제한 및 강제 휴식일 지정 규칙’은 고교야구 창설 이래 가장 큰 변화라고 칭할만하다.


1. 2018 고교야구 대 변혁 - 혹사 방지 위한 투구 수 제한 본격 시행

 사실 고교야구에서 혹사는 그에 대한 비판이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인 고질적인 문제였다. 적폐(積弊)의 사전적 정의는 오랜 시간 동안 켜켜이 쌓여 고질화된 폐단이다. 고교야구계에서 혹사는 숱한 비판 속에서도 절대 근절되지 않았던 구조적 적폐 다름 아니었다.

 ‘혹사 근절’이라는 구호가 한낱 잔소리로 전락한 데에는 복잡한 이유가 있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을 뿐 아니라 구조적 요인도 상당부분 갖고 있다. 일단 전국대회의 성적에는 프로 입단과 대학 입학이 걸려있다. 

혹사를 당하는 선수 뿐만 아니라 그 외의 다른 선수들의 대학 입학도 같이 굴비처럼 줄줄이 엮여있다. 고교생들에게 프로 입단과 대학교 진학은 향후 인생이 달린 문제다.

#지난해 혹사 논란의 중심에 섰던 충암고 김재균

 

프로나 대학 관계자들에게 능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전국대회다. 우승이라도 하면 영원히 이름이 남는다. 학교의 명예도 걸려있다. 본 지면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히긴 어렵지만 우승을 하게 되면 얻게되는  혜택도 있다.

선수들 또한 일생에 몇 번 올 지 모를 영예이다 보니 진통주사를 맞아가면서 까지 던진다. 이렇듯 학생들의 미래와 감독, 코치들의 생존이 걸려있는 문제다 보니 '혹사 근절' 이라는 비판은  공허한 메아리로 맴돌 뿐이었다.

고름이 되어버린 병폐를 제거하고자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강력한 메스를 가했다.

이제 투수들은 한 경기 105개를 넘어서는 투구를 하지 못한다. 30개 이하의 투구에서만 연투가 가능한데 경기수가 적은 고교야구에서는 몇몇팀을 제외하곤 큰 의미가 없다.

#투구수 제한 규정 

또한 제구력이 프로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고교야구에서 105개 이하의 투구수로 완투는 콜드게임이 아닌 이상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한다.  사실상 완투도 금지되고 연투도 금지된다. 76개 이상을 던지면 무조건 4일 이상은 쉬어야 한다. 

일례로 전국대회 8강에서 76개를 던지면 그 대회는 더이상 등판이 불가하다. 이제 고교야구에서 혹사라는 단어는 영원히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투구수 제한 규정의 도입은 더 미룰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문제 부터 해결하지 않고는 시대의 흐름에 맞는 변화를 유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엘리트 중심의 학생 스포츠는 수업권 보장, 합숙 금지 등 클럽스포츠의 형태로 변모해가고 있다. 

과거처럼 훈육을 빙자한 폭력이 용인되는 시대가 아니다. 1등이 되지 못하면 잉여인력으로 전락해버리는 승자독식주의 또한 청산해야 할 유산이다. 설령 1등이 되지 못하더라도 제2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교육과 운동을 병행하는 클럽형 학원 스포츠 시스템은 고교야구가 가야 할 시대적 당위이다.

2. 투구 수 제한의 이면- 학교 간 전력 불균형

다만 투구 수 제한 규정 도입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이 규정으로 인해 새로 발생하게 되는 문제들도 있다. 우선 학교 간 전력 불균형 현상을 피할 수 없다.

 스포츠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은 ‘동등한 조건’ 아래서이다. 이는 종목 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스포츠에 적용된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최대한 동등한 조건이 형성되도록 힘쓸 의무가 리그를 관장하는 협회에는 있다.

서울고교의 주말리그 경기 모습(출처 : 대한야구소프트볼 협회) 

일례로 자율형사립고(이하 자사고)와 일반고는 선수층이 2배에서 많게는 3배까지 차이가 난다. 올해 선수등록인원수로 으뜸을 차지한 팀은 배명고로 무려 77명이다. 그 다음으로 서울고(73명), 성남고(62명) 덕수고(58명)순이다. 

위 학교들은 경기를 할 때 저학년 선수들이 동행하지 않는다. 덕아웃에 모두 들어갈 수도 없지만 따로 저학년 연습경기를 소화해야하기 때문이다. 

투수만 한 학년에 20명 가까이 된다.  프로야구단급 규모다. 이처럼 고교야구 선수단이 프로구단 만큼 커진 것은 일반 고교는 인원수 제한이 없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남은 선수들을 ‘임의배정’으로 모두 받아주기 때문이다.

반면 자사고는 학교에서 지원을 받기 때문에 최대 30명으로 제한된다. 신일고, 휘문고, 배재고 등이 서울권의 대표적인 자사고다. 

투구 수 제한을 실행하면 경기에 투입할 수 있는 투수 숫자가 곧 팀 전력이다. 토너먼트에서는 그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학교가 동등한 양의 선수들 보유하고 시합을 한다면 모르겠지만 현 입시제도는 그렇지 못하다.

신일고 정재권 감독 

취재 중 인터뷰에 응한 신일고 정재권 감독 또한 그런 점을 우려했다.

“어떤 학교는 한 학년에 투수가 20명 이상이다.  우리는 전 학년 합쳐서 고작 7명이다.  입시에서의 포지션•총인원 제한이 있기 때문에 투수를 더 뽑기도 힘들다.
 
현 규정에서는 투수숫자=전력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선수 층이 두터운 학교가 유리할 수 밖에 없다. 리그는 어떻게든 꾸려가겠지만 토너먼트는 방법이 없다” 라며 한숨을 쉬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몇 해 전 이런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서 팀 당 등록선수를 50명으로 제한하는 규정을 만들었었으나 지금은 학교 및 학부모 측의 반발로 없어진 상태다.

3. 서울권과 지방간 격차 심화

그나마 신일고는 사정이 매우 나은 편이다. 동문회가 워낙 탄탄해서 지원을 많이 받을 수 있고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지방학교들은 사정이 매우 심각하다. 지방은 야구 명문고들 조차 선수단 규모가 작아져 많은 경기 소화가 어려운 상태다. 다른 스포츠도 그렇지만 야구는 유독 서울 집중화 현상이 심하다.

충암고와 중앙고의 경기 장면(출처 :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지난해(2017년) 고교야구 73개 팀의 총 선수인원은 2764명이었다. 평균 37.8명. 하지만 서울 및 수도권의 경우는 인원차 가 거의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2018년도 등록 선수 수만 봐도 강원고(22명), 광천고(21명), 글로벌선진학교(11명), 진영고(15명), 상우고(15명), 설악고(20명), 성지고(13명), 효천고(25명), 제주고(24명), 화순고(19명) 등이다. 이들 팀들은 주말리그는 어떻게든 치룰 수 있지만 전국대회 성적은 사실상 기대할 수 없다.

투구 수 제한이 없었던 작년에도 전국대회 우승은 거의 서울권 팀들(야탑고만 성남에 위치)이 독식했다. 황금사자기(덕수고), 대통령배(서울고), 청룡기(배명고), 봉황기(야탑고)가 그 주인공이다. 

올해는 전국대회 우승팀을 조망하거나 프로야구 상위 지명 선수들을 살펴보는데 서울 16개교만 살펴보면 된다는 반농담이 돌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서울권에서 뛰어난 성적을 내고 있는 A 중학교 감독은 “주전으로 뛰기 어려운 선수의 학부모님들께 ‘뛸 수 있는 팀으로 가세요. 지방으로 전학을 가셔서 고교 1학년 때부터 실력을 키우게 하세요’ 라고 말을 해도 전혀 듣지 않으신다. 막무가내로 전부 서울로 원서를 써달라고 하신다” 라고 토로하기도 한다

서울로 몰리는 중학교 유망주들 

서울권 중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지방의 우수한 선수들도 전부 서울팀으로 전학한다. 이러한 현상은 팀들 간의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켜 몇몇 강 팀들만 살아남고 대다수의 팀들은 성적 부진 →  팀 운영 이유 상실 → 팀 해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져 고교 야구의 급격한 위축을 부를 수 있다. 

4. 경기력 하락에 대한 대비책 필요

필연적으로 발생할  경기력 하락에 대한 보완책도  시급하다. 

실전에서 기용할 수 있는 투수들의 숫자가 곧 전력이고 그 전력차이가 학교별로 크다. 당연히 전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팀은 버리는 경기와 잡는 경기가 명확해진다.  전력의 핵심인 투수를 함부로 소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투수를 자주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경기 시간도 길어지게 된다. 프로야구와  같이 ‘원 포인트 릴리프’들도 자주 등장할 것이고 굳이 이길 의지가 없는 경기들은 투수를 아낀다는 명분하에 몇 점을 내주던 완전히 버리게 된다.

4월 7일 개막해서 이제 4주차가 진행된 주말리그에서도 이런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야탑고 vs 상우고(16:0), 휘문고 vs 배재고(23:0), 충암고 vs 성지고(15:1), 안산공고 vs 인창고(21:5) 등의 경기에서 보여지듯  핸드볼 스코어가 속출하고 있다. 7~10점차 정도는 일상적이라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무승부가 패배와 같았던 2009시즌 프로야구에서  연장 12회 말에 3루수 였던 최정이 투수로 등장해서 끝내기 폭투 허용했던 것과 비슷하게 투수가 아닌 야수가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지는 장면이 자주 보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동계연습경기 금지’ 규정이 올해 말부터 본격 시행되기 때문에 경기력 저하에 대한 불만은 더욱 크게 터져나올 것이다.

이러한 제도적 약점을 고쳐나가기 위해서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현장과 좀더 유기적으로 대화해야 한다.  토너먼트 대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팀 간 전력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과거에 시행했다가 지금은 폐지된 한 팀의 등록 선수를 제한하는 방안 등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2017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지도자 간담회(출처 :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프로구단의 관심과 실질적을 투자를 이끌어 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 제도의 근간에는 유망주들이 건강한 상태에서 프로 무대에 서야한다는 명분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KBO리그에서도 일정이상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KBO육성팀에서 새로 창단된 아마야구팀에게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KBO, 현장,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상생의 길을 찾아야만 이 제도를 올바른 방향으로 정착시킬 수 있다. 단순히 혹사 문제만 근절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5. 고교야구 정상화, 갈 길이 멀다

대한민국의 시대흐름은 적폐 청산과 개혁이다.  그에 걸맞은 움직임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개혁은 단순히 ‘바꾸고자’ 하는데 목적을 두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건강한 고교야구’를 위함이라는 절대 명제가 뒷받침 되어야만 한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김용균 사무처장은 “투구수 제한 규정은 지난해 수많은 토론과 고교 간담회 및 지도자 공청회 등 많은 논의를 거쳐서 올해부터 시행된 규칙이다. 협회도 여러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미흡한 점이 있다면 수정-보완할 것이다. 현재는 유망주들의 건강이 최우선의 가치”라고 밝히고 있다.

취지는 훌륭하고 반드시 가야할 길이다.

하지만 ‘투구수 제한 규칙’은 이제 갓 도입된 미완의 규정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직 환호할 때가 아니다. “혹사가 사라진다”라며 섣불리 축배를 들기에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 둘이 아니다.

[기록 출처 및 참고 : 야구기록실 KBReport.com, 한국고교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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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상일 아마야구 전문기자  감수 및 편집: 김정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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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제공: 야구기록실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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